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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함을 유대로, 사랑에 빠지기 - 정신장애인 인권증진을 위한 토론회 후기

공감이 하는 일/자원활동가 이야기

by 공감이 2012.10.29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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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빠지면 우리는 그 사람의 발소리, 그 사람이 재채기를 하고 멋쩍게 웃는 방식이 그 누구와도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만을 위한 사소한 범주를 하나 둘 만들어나가는 과정인지도 모릅니다. 그/녀가 남다를 것 없는 '여자', '남자'라는 이름 아래 뭉뚱그려지는 순간 사랑은 설 곳을 잃으니까요.
  

시선을 돌려 '정신장애인'에 대해 내가 가진 범주가 얼마나 되는지 가늠해봅니다. '무능력한' 혹은 '위험한' 존재. 그 뭉뚝한 편견에 한 사람 한 사람을 밀어 넣었던 무의식 틈에서 자신의 삶을 구획하고 꿈을 꿀 권리마저 부정당했던 정신장애인들이 있습니다. 지난 10월 11일, 국가인권위원회가 개최한 '정신장애인 인권 증진을 위한 토론회'는 정신장애인의 법적 제한과 사회참여 문제에 대해 개선방안을 논하고 정신장애인 당사자의 목소리를 듣고자 마련된 자리입니다.
  
이날 발제자와 토론자들은 구체적인 기준 없이 사회생활에서 정신장애인을 일괄적으로 배제하는 법적 제한에 대해 한목소리로 지적했습니다.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신권철 교수는 정신장애인이 질병 자체만으로 자격 대부분과 직업 선택권이 박탈되는 실태를 거론하며, 정신장애와 업무 사이의 연관성이나 수행 가능성이 고려될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정신장애인들이 어떤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지 판정하는 절차와 주체도 명확히 규정되지 않았다는 것은 ‘정신병·인격장애·알코올 및 약물중독, 기타 비정신병적 정신장애’라는 광범한 딱지를 붙이고 ‘내가 감히 할 수 없는 것들’을 내면화할 것을 강요하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사랑밭 용호중 원장은 정신보건법을 통해 정신장애인의 정의와 개념을 구체화하는 과정이 또 다른 편리한 범주화에 그치지 말아야 함을 당부했습니다. 궁극적으로 정신장애인과 그의 경험 하나하나를 개별화하여 바라보려는 노력이 없다면, 이러한 제도적 개선이 자칫 정신장애인을 증상에 따라 선별하고 위계화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고도 어려운 문제입니다.
 


 
 
한편 정신장애인을 다른 신체장애인보다 불리한 사회적 제약에 놓이게 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위험한 존재라는 딱지입니다. 단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강석훈 교수는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2004년 유영철 연쇄살인 사건, 2008년 숭례문 화재가 모두 언론에 의해 '정신장애인'의 범행으로 간주되었으나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고 지적했습니다. 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김정환 교수 역시 통계학적으로 정신장애인이 강력 범죄를 저지르는 경향이 비정신장애인의 그것보다 현저히 떨어진다는 점을 짚었습니다. 

 

미디어에 의해 정신장애인의 위험성에 대한 과장된 인식이 조장되는 것은 정신장애인이 지역 사회 내에서 삶을 꾸려나가는 데 커다란 장벽으로 작용합니다. 그 이면에는 흉악 범죄나 자살 사건 보도 말미에서 "그는 정신 질환을 앓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서야 안도하는 우리 모두의 얼굴이 있습니다.
 
미셸 푸코는 권력은 개인의 내면에 '비정상성'에 대한 두려움을 유발하는 감시의 시선을 심어놓는다고 했습니다. 정당한 이유 없이 누군가에게 극심한 분노를 느끼면서 그가 이 세상에서 사라져버렸으면 하는 마음을 품어보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우리는 바로 내 안에 은밀하지만 분명하게 자리한 비정상성, 범죄성, 위험성을 지독하게 외면하고 억압하고자, ‘정신 질환’이라는 대척점을 만들고 ‘광인’을 타자화하며 나와는 접점을 가질 수 없는 존재로 구분했던 것일지 모릅니다. 정신장애인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낳는 미디어 관행에 대해 모든 토론자가 한목소리로 지적했지만, 스스로 만든 ‘정상’ 범주에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며 안도하는 각자에 대해 돌아보지 않는다면 이러한 관행이 쉽게 변화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날 토론회는 ‘정신장애인 인권’에 대한 사고와 감수성의 피상성에 대해 돌아보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주었습니다. 공익변호사 그룹 공감의 염형국 변호사는 경기도 한 아파트에 살던 정신장애인 가족이 입주민들로부터 집단따돌림을 받은 일화를 들어, “모든 사람이 정신장애인의 인권도 소중하다고 하지만, 자기와는 무관한 사람, 자기 주변에서 절대 가까이해서는 안 되는 사람으로 인식한다”고 짚었습니다.


 

 

마음샘정신재활센터에서 근무하는 최은혜 씨와 정신장애인 당사자가 지적한 장애등급재심사의 문제점 역시 정신장애인 인권에 대한 피상적인 이해와 지원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정신장애인이 지지취업을 통해 직장생활을 원만하게 유지하고 있다는 이유로 장애인 복지카드에서 탈락하여 일을 그만둬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는 정신장애인이 취업 중에도 극심한 불안감을 안거나, 직업재활활동이 중단된 뒤 삶의 희망을 잃어 다시 질환이 심화되게 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정신장애인을 지원하기 위한 명목으로 마련된 지지취업이 정신장애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와 결부되지 않아 발생하는 문제입니다.
 
정신장애인의 인권에 대해 당위적인 지지 이상을 보내고 있는가의 문제는 토론회에 있는 나 자신에게서 끊임없는 불편감으로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정신장애인 인권 증진’을 위한 토론장임에도, 정작 정신장애인 당사자의 질문과 발언이 토론의 주제와 엇나가거나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될 때면 어서 말씀이 정리되기를 바라는 자신을 보며 혼란스러웠습니다. 토론회장에서 오가는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면서도, 귀갓길의 인적 드문 지하철에서 다른 승객이 혼잣말을 하거나 어눌한 말씨로 말을 걸어온다면 괜한 위협감을 느끼며 자리를 옮기지는 않을지 자신이 없었습니다. 일상 속에서 “너 미쳤니?”와 같은 말을 아무런 위화감 없이 내뱉으며 내가 살아가는 주변을 정신장애와는 당연하게 단절된 공간으로 만들어갔던 언어습관을 쉽게 바꿔나갈 수 있을지 의심스럽기도 했습니다.
 

일본의 한 정신장애인 공동체 ‘베델의 집’을 다룬 사이토 미치오의 책,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에서는 다음과 같은 글귀를 찾을 수 있습니다.
 

“정신장애인이란 누구보다도 정밀도가 높은 센서를 가진 사람들인지도 모른다. 한편 정상인이라는 사람들은 (…) 감도가 낮아 인간관계를 애매하게 하고 얼버무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병에 걸릴 수 없는 사람들은, 겉과 속마음을 약삭빠르게 구분해서 대응하고 타인에 대해 가면을 쓰며 어느새 갑옷을 걸치고 있다. 정신장애인은 그런 요령 좋은 생활 방식이 불가능한 사람들이다.”
 

저자는 이 공동체를 관통하는 원칙은 결코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미 여러 겹으로 사회에서 배제되어 더는 밀려날 수 없는 사람들의 무리가 ‘약함을 유대로’ 연결되어 결코 배제하거나 배제당하지 않는 인간관계를 만들었을 때, 한없는 평등성이라고 할 수 있는 관계가 형성되었다는 것입니다.

 

토론회장에서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정신장애인의 법적 제한과 사회참여를 둘러싼 개선 방안에 대한 고민과 더불어, 같은 제안이 몇 년이고 그대로 반복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짙은 안타까움이었습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구체적으로 강구되고 있는 방안이 끝없이 ‘제안’으로 머무르고 있는 현실은 우리 각자가 정상성이라는 범주에 자신을 밀어 넣는 데 천착해있던 인식에서 기인했던 것은 아닐까요. 이제 약함을 유대로, 당신과 나의 연결지점을 찾고, 당신이 관계를 맺고 웃고 불안해하는 방식에 대한 예민한 촉각을 가지고 싶습니다.
 

글 _ 김승현 (16기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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