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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에게 무책임한 우리 사회 - 윤지영 변호사와 함께한 취약계층 노동 세미나 후기

공감이 하는 일/공익법 교육·중개

by 공감이 2012. 10. 24.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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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은마아파트 청소노동자, 홍대 청소노동자, 한진중공업, 현대차 사내하청, 재능교육 학습지 교사

 

지난 몇 년간 국내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사건들입니다. 이 모든 사건들의 발단은 책임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 봅니다. 우리는 자라며 부모님으로부터 혹은 학교에서 자신이 결정한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배웁니다. 오늘 숙제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면 그 결정에 따른 대가로 내일 선생님께 매를 맞거나 방과 후 학교에 남아 숙제를 끝내고 집에 올 각오를 해야 합니다. 우리가 민주사회에서 누리는 자유 역시 법을 따르는 개인의 책임을 수반합니다.

 

하지만 현재 우리 사회는 어떤가요?지하철 개똥녀를 마녀 사냥하며 그녀의 무책임한 행동은 질타하지만, 우리 사회 이면에 드리워진 구조적인 무책임에 대해서는 침묵합니다. 3년여의 긴 시간 동안 스물두 명이라는 많은 사람들이 차례로 세상과 작별할 때, 그들을 고용했던 쌍용차는 물론 마땅히 그들을 보호했어야 하는 정부와 법 역시 그들을 철저히 외면했습니다. 동일한 사건으로 스물두 명이 집단으로 자살을 선택한 이 참사의 책임은 누가 져야 할까요?

 

<취약계층노동 작은 세미나>를 연 윤지영 변호사는 한 청소노동자의 근로계약서를 나눠준 뒤 뭔가 이상한 부분이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지난해 7월 폭우로 침수된 아파트 지하실의 물을 퍼내다 감전사한 대치동 은마아파트 여성 청소노동자의 것이었습니다. 언뜻 보기에 평범한 근로계약서처럼 보였습니다. 우리나라 중상류층의 대명사인 대치동 은마아파트쯤 되면 청소노동자들에게 나쁘지 않은 처우를 할 것이라고 대부분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건의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망 후 그녀를 고용한 업체도, 실 사용자인 아파트의 관리사무소 어느 곳도 그녀의 죽음에 관한 책임을 지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폭우 속 위험한 지하실로 내려간 그녀의 과실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녀를 사용한 아파트 관리사무소와 그녀를 고용한 파견업체가 달라서 책임자는 불분명했고, 그녀는 사용자와 고용자 어느 측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힘없는 파견노동자였을 뿐입니다. 연장근로에 대한 추가 수당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근로계약서의 불법성은 고사하고서라도, 사람이 죽었는데 그 죽음의 책임을 서로 회피하려 했습니다.

 

IMF 사태 당시 국제통화기금은 우리 정부에게 효율적이고 유연한 노동시장을 만든다는 명목 아래 근로자 파견 제도를 도입하도록 압박했고, 우리 정부는 큰 저항 없이 이를 받아들여 현재 우리 사회는 파견인력으로 넘쳐납니다. 회사는 정규직 채용을 점점 줄였고, 인력업체를 통하지 않으면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중간 업체가 임금을 일부 떼어가면서 노동자의 수입은 점점 줄어들었고, 노동자의 근로조건을 책임질 사용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근로자 파견제도는 노동자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제도입니다.

 

홍익대학교 청소노동자 집단해고 사태 역시 근로자 파견 제도의 부당함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청소노동자들 역시 학교에 고용된 정규직 노동자가 아닌 용역업체에 고용되어 학교에 파견된 노동자였습니다. 홍대에서 월급 75만여 원과 하루 식대 단돈 300원으로 일하던 청소, 경비, 시설관리 노동자들이 2010년 말 노동조합을 결성한 것이 이 사태의 발단이었습니다. 분개한 학교 측은 마침 용역 계약이 만료되어가자 최저임금보다 낮은 용역 단가로 단기 재계약할 것을 용역 업체에 요구했고, 업체가 입찰을 포기하면서 노동자들은 자연스레 해고되었습니다. 홍대에서 평균 10년을 넘게 일하던 노동자들은 새해 벽두부터 삶의 터전을 잃었지만 170여 명의 대량 해고 사태의 책임자는 없었습니다. 홍익의 정신을 이념으로 설립된 대학 측은 자신이 실 고용자가 아니라며 발뺌했습니다. 오랫동안 학교를 위해 일해오던 노동자들을 하루아침에 내쫓는 대학의 무책임한 태도가 외부로 알려지면서 시민들이 분노하기 시작했고 다행히 해고자들은 인상된 임금과 더 나은 근로 조건으로 복직되었습니다. 노동자들의 투쟁과 일반 시민들의 관심이 없었더라면 이들의 목소리를 학교 측과 용역 업체 측은 들으려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나라 대기업들 역시 노동자들에 대한 책임의식 측면에서 부족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근로자 파견법에 따르면 제조업 분야에서의 파견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제조업에 파견을 허용하면 너무 많은 노동자들이 저임금과 고용 불안에 빠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현대자동차는 하청업체 노동자들을 사내에 상주시키고 이들을 사용해왔습니다. 사내 하청 노동자들은 정규직 노동자들과 같은 라인에서 같은 업무를 하도록 지시받았지만, 임금 면에서 정규직 노동자들의 60~70%밖에 받지 못했고 각종 복지 혜택에서 제외되었으며 고용 또한 불안정했습니다. 노동을 직접 사용한 자가 자기 노동자가 아니라며 그들의 근로 조건에 관해 책임을 지지 않는 것. 이것은 분명히 불법입니다. 현대차 라인에서 근무하며 현대차의 지시를 받는다는 것은 파견이기 때문입니다. 현대차 측에서는 하청업체와 파견계약이 아닌 도급계약(업무의 지휘명령을 사용사업주가 아닌 파견사업주가 하는 고용 형태)을 맺었다고 주장했지만, 대법원 역시 현대차가 노동의 직접 사용자이고 사내하청은 불법파견이라고 판결했습니다. 현대차는 최근 뒤늦게 사내하청 노동자 6,800여 명 중 3,000명을 2015년까지 정규직으로 채용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습니다.

 

쌍용자동차 사태는 조금 다른 의미에서 무책임함을 보여줍니다. 쌍용차를 인수한 상하이차는 경영상의 이유로 노동자 2,646명을 정리해고 했습니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기업이 정리해고를 단행할 때,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어야 하고, 해고를 회피하기 위한 노력을 다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기업이 경영 개선을 위해 취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쓰고도 안될 때 최후의 보루로 정리해고 하도록 한 것입니다. 하지만 경영상의 필요를 측정하는데 사용된 쌍용차의 자산평가가 너무 들쭉날쭉해 쌍용차가 실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는지 많은 이들이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노동자들은 정리 해고로 순식간에 생계 수단을 잃었지만, 법원은 하나의 회계 자료만을 근거로 정리해고에 문제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사법부의 일방적인 사용자 편들기도 문제지만, 노동자에 대한 사용자의 배려 부족이 더 심각한 문제입니다. 수도와 전기가 끊긴 파업 중에도 파업 노동자들은 회사에 큰 손실이 날 것을 우려해 자가 발전기 전력을 이용하여 도장공장의 도료가 굳지 않도록 애를 썼습니다. 이들이 회사에 가진 책임의식의 반만이라도 회사가 이들에게 느끼고 행동했더라면 이들은 애초부터 해고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스물 두 명의 사람이 자살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회사가 정리해고를 남용하고 사법부가 이를 묵인하는 행위는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오로지 회사에 의존하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너무나도 무책임한 행동입니다.

 

세미나를 듣기 전에는 비정규직, 정리해고, 파견근로제도에 아무런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앞서 언급된 사건들은 우리 사회에 이미 이슈화되어 어느 정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가거나, 아니면 적어도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연대를 통해 해결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윤지영 변호사의 말처럼 여전히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다양한 형태로 이들 취약계층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일한 만큼 돈을 주고 그들의 고용을 보장해주는 것은 대한민국의 경제력으로 그리 힘들지 않을뿐더러 노동자들에 대한 마땅한 의무이자 책임입니다. 전태일 열사가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고 외치며 분신자살을 한 지 4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노동자들을 보호할 방패는 미약합니다. 심지어 공장의 기계도 고장 나면 버리지 않고 고쳐 씁니다. 우리 아버지이자 어머니이고, 혹은 우리 자신의 미래인 노동자들에게 지나치게 무책임했던 것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_정철현 (16기 자원활동가)


공감 에세이집 '우리는 희망을 변론한다' 출간 - 박원순 시장, 신경숙 작가 추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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