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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리스, 그리고 우리 - '서울역, 길의 끝에서 길을 묻다' 사진전 후기

공감이 하는 일/자원활동가 이야기

by 비회원 2012.10.24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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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이 부산인 내게 서울역은 친근한 장소이지만, 서울역 하면 떠오르는 ‘홈리스’에 대해서는 크게 생각해 본 적 없었다. ‘홈리스’와 ‘아닌 사람’으로 구분 지어진 공간에서 그들을 나와 다른 사람으로 생각했던 것 같다. 얼마 전, 서울역을 찾았을 때 모든 게 빠르게 변해 가는데, “나만 제자리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적 있다. 그런 생각이 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을 바라보게 했다. 한 달은 넘게 묵혀 두었을 것 같은 홈리스 점퍼의 얼룩이 보였고, 발등에 앉은 시커먼 딱지도 눈에 띄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지난 몇 년간 취업을 위해 고군분투하며 보낸 불투명한 나날”들이 그들과 동질감을 느끼게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지난 16일,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사진전은 그래서 더 특별했다. 홈리스들이 인권단체인 ‘홈리스행동’의 도움을 받아 직접 찍은 사진으로 ‘서울역, 길의 끝에서 길을 묻다’라는 이름의 전시회를 연 것이다. 5명의 홈리스는 자신만의 시각과 언어로 ‘서울역’을 담아냈다.

 

사회에서 밀려났다는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도 “다시 살고 싶다”는 의지. 그것이 내가 사진을 보며 가장 먼저 만난 느낌이었다. 내가 스쳐 가듯 지난 이곳이 누군가에게는 삶의 공간 혹은 ‘그 이상’이었다. 그래서 그곳을 담담히 담아낸 그들의 사진과 글은 어떤 시인의 글보다 가슴을 울렸다.

 

박왕우 씨의 ‘월세 없는 방’은 특히 그랬다. 폭설이 오고, 칼바람이 불지만, 그럼에도 박스 하나, 신문지를 정성껏 깔고 “내일도 숨 쉴 수 있길 바라”며 눈을 감는 것. 그는 삶에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내일에 대한 기대도 놓지 않았다.

 

 

      박왕우씨의 ‘월세 없는 방’ ⓒ 홈리스 행동

 

“진달래가 진한 향기를 내도/개나리가 한껏 자태를 뽐내도/장대 같은 장맛비가 와도/모기님이 한껏 피를 빨아 포식을 해도/벼이삭의 점잖은 고개 숙임도/농부의 함박웃음에도/폭설에 눈이 와도/칼바람이 귓불을 얼릴 때도/어둠이 깃들면, 지나온 인생길이 다른 사람들이 모여든다./손에 박스 하나, 신문지 하나 단벌 옷 버릴 세라 정성껏 바닥에 깐다./냉기가 전신을 파고들어 오징어도 아니건만 온 몸이 온 몸이 오그라든다./조명등 하나, 나 하나, 조명등 둘, 나 둘. 눈을 감는다. 내일도 숨 쉴 수 있으려나?” (박왕우, 월세 없는 방)

 

그런 그들에게 1년 전, 닥친 ‘강제퇴거’는 주거의 의미를 넘어 삶의 희망을 빼앗는 것과도 같았다. 홈리스가 아닌 ‘시민증’이 따로 존재하는 것도 아닌데, 모든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공공시설을 마음껏 이용할 수 없다는 건 자신의 존재 의미에 대해 돌아보게 만드는 까닭이다.

 

그것은 ‘공간’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기인한 것이기도 했다. 서울역이 정말 시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공시설’이라면, 오히려 약자를 더 품어줄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바깥에는 화단을 조성하고, 역사에는 ‘자동차 전시장’을 만든 후, 깨끗해졌다고 좋아하는 건 이미 ‘공공시설’의 의미를 잃어버렸다는 것을 자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사랑나라’라는 가명을 쓰는 한 홈리스는 여기에 대한 절절함을 작품에 녹여냈다. 사진 속 텅 빈 광장에는 높은 건물의 그림자 외에 바삐 지나가는 몇 사람만 눈에 띌 뿐이다. 그는 이곳에서 다른 사람들이 기억하지 못하는 ‘옛 광장’의 모습을 떠올리고, 다시 ‘인정과 사랑, 아름다움’이 있는 광장이 되길 소망한다.

 

 

                       사랑나라의 ‘옛 광장에는’ ⓒ 홈리스 행동                                         

 

“예전에 이 광장에는 쉬는 곳이 있었다. 지금 이 넓은 광장에는 아름다움이 없고 한낮의 뜨거움과 밤에는 차가워지는 아스콘만이 깔려 있다. 사람들이 쉴 수 있는, 인정과 사랑, 아름다움이 있는 광장으로 만들어 놓으면 좋겠다.” (사랑나라, 옛 광장에는)

 

어쩌면 ‘서울역, 길의 끝에서 길을 묻다’는 사진전의 질문은 우리에게 향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길을 가다가 언젠가 한 번은 마주쳤을 그들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봤던가. 그들이 ‘자신의 모습’이 될까 애써 회피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는지. 사람은 늘 어디에서나 인정받고 살 수 없으며, 언제든 벼랑 끝으로 내몰릴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른 척 한 채 말이다.

 

“나도 얼마 전까지 평범한 사람이었다.”고 말하는 한 홈리스의 외침을 메아리로만 넘길 수 없는 이유다. 사회에서 ‘쓰임 받는 존재’가 되고 싶은 건 누구나 다 똑같다. 이제라도 우리가 얼굴을 마주하고 그 물음에 관한 답을 같이 고민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 있다. 한나 아렌트가 말했듯, 사유하지 않음, 그것은 또 다른 의미의 폭력일 수 있다.

 

 

                                   박왕우씨의 ‘나의 인생 보관소’ ⓒ 홈리스 행동                                                

 

“500개의 가방이 기약 없는 주인을 기다리는구나. 저마다의 사연을 간직한 채. 책은 말한다. 나 좀 읽어달라고. 핸드폰은 말한다. 나 좀 사용하라고. 옷은 말한다. 나 좀 입어달라고. 모두 한 목소리로 외친다. 우리도 태양울 보고 싶다. 우리도 쓰임 받는 존재가 되고 싶다고. 주인님 빨리 오소서. 뒤이어 한없는 침묵.” (박왕우, 나의 인생 보관소)

 

글_서영지(16기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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