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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는 실체 없는 유령이 아니라, 함께 호흡하고 살아가는 '나, 너, 우리'다 - 장서연 변호사와 함께한 성소수자 세미나 후기

공감이 하는 일/자원활동가 이야기

by 비회원 2012.10.09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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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댓글 사이사이의 무채색 침묵들

 

얼마 전 나의 페이스북 타임라인에서 어떤 글을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그 담벼락 글에서는 동성애에 대한 찬/반 논쟁이 벌어지고 있었는데, 댓글은 수없이 달려 있었고 그 속에서 사람들은 저마다 이에 대해 찬성론과 반대론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논란이 된 글과 백 개가 넘는 댓글은 동성애에 대해, 소위 ‘과학적’이라는 ‘생물학적 팩트’에서부터 동성애자가 문란하다는 내용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주제의 스펙트럼 하에서 논쟁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나는 그 글에 단 하나의 댓글도 쓸 수 없었다. 화면 가득 빼곡히 들어찬 댓글들의 검은 텍스트 뒤에 침묵하고 있는 얼굴들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었다. 동성애의 비정상성과 위험성, 사회적 해악을 규명하려 드는 온갖 전문적 의학용어와 생물학적/사회학적 개념들, 그리고 때때로 아무렇지 않게 던지는 혐오적 발언들. 그 속에 정작 그 찬반논쟁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은 없었다. “나는 이성애자가 확실하고, 성소수자들이 혐오스럽다”는 발언은 난무했지만, “나는 당신의 말에 상처를 받고 있어요”란 말은 없었다. ‘그들’과 ‘그들’의 존재는 이성적인 듯 보이는 전문용어들, 혹은 여과되지 않은 날 선 감정의 언어들로 해석되거나, 정의되고 있었다.

 

 

아마도, 누군가는 그 수많은 글을 보면서, 자신의 정체성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찬반’ 논쟁을 보면서, 하얀 여백 사이로 숨죽여 상처받고 있었으리라.

 

위험하거나. 불쌍하거나. 없는 사람이거나.

 

사실 이러한 경험을 하는 것이 드문 일은 아니다. 인터넷 기사의 댓글에서도,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무심코 내뱉는 이야기 속에서도, 성소수자의 존재를 주변부화하고 타자화하는 일들은 지극히도 일상적인 일이다. 그 일상의 공간에서 성소수자는 ‘나’도, ‘너’도, ‘우리’로도 칭해지지 않는다. 다만 ‘그들’의 일일 뿐이다.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 ‘그들’은 어마어마한 사회적 해악이 동반되는 위험한 괴물의 얼굴을 하고 있거나, 도와줘야 할 불쌍한 존재들로 여겨지거나, 혹은 종잇장 여백처럼 아예 없는 존재로 당연시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무지는 때때로 상식이란 이름으로 변호되고, 혐오와 증오는 사랑보다 더 자연스러운 감정으로 포장되어 표출된다. 위험하기에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당연하고, 그러므로 사회에서 축출되어야 하거나, 불쌍하기에 동정받아야 하며, 아예 존재하지 않기에 드러나는 것조차 용납될 수 없는. 우리 사회가 성소수자를 대면할 때의 방식이다.

 

 

 

숨죽인 사회를 틔워 호흡하는 것

 

공감 <작은 세미나-성소수자>에서 다루었던 것은 사회의 여백에 관한 이야기였고, 그 여백을 사회가 여태껏 어떤 식으로 당연시하고 나아가 어떤 논리로 정당화하고 있었는지에 관한 것이었다. 그리고 숨죽인 여백에 자리해 있던 정체성들이, 이제껏 정형화되어 있던 텍스트 사이사이를 비집고 나와 새로운 의미들을 구성하고 채색해내는 과정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세미나는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호모포비아의 개념적 정의부터, 성소수자 인권의 현실과 법적 쟁점, 성소수자 인권운동의 성과와 과제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내용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성소수자를 바라보는 법원의 태도와 성소수자 관련 사건에 대한 일련의 판결들에 대한 글은 나에게 굉장한 충격을 주었다. 그것은 마치 당연한 것처럼 통용되고 있던, 성소수자를 철저히 주변부화하고 배제하고 있는 일상의 연장선상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적인 댓글 사이의 여백처럼, 일상에서 무심히 내뱉는 이성애 중심적 대화 사이의 짧은 침묵처럼, 법원의 판결문 사이사이에서도 그 극명한 배제의 공기가 느껴졌던 것이다. 동성애가 청소년에게 유해하며, 동성애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동성애를 조장하는 부작용을 야기한다는 시각을 엿볼 수 있는 X존 사건 판결이나, 동성 간 성행위를 ‘계간’이라 하여 이를 처벌하는 군형법이 위헌이 아니라는 판결에 이르기까지. 이외에도 성전환자의 호적상 성별정정 결정 과정에서 외부 성기 수술이나 생식기능 상실, 무자녀 요건을 요구하고 있는 사무처리 지침까지도. 건전한 도덕관념과 사회 통념을 강조하는 건조한 활자들은 ‘차별’의 시각을 담아낼 뿐, 사회의 가장자리에 내몰려 있는 ‘천차만별’의 삶과 감정에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잿빛 침묵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세미나에서는 성소수자들이 수면 위로 스스로를 드러내고 존재의 파장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대한 희망적인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성적지향, 성별 정체성에 대한 차별금지조항을 명시한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하기 위해 성소수자 인권단체들이 서울시의회를 점거하고 농성투쟁을 벌인 지난 2011년 겨울의 사건은 그러한 과정 중 하나였다. 집단화되고 조직적인 혐오와 차별에 맞선 이러한 싸움들은, 단순히 법안의 통과나 판례의 변화를 이끌어낸다는 의미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강요된 침묵의 굴레를 비집고 나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가시화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성소수자는 실체 없는 유령처럼 부유하고 있는 위험한 ‘그들’이 아니라, 함께 호흡하고 살아가는 ‘나, 너, 우리’라는 것이다.

 

그들의 문제에서. 우리의 문제로. 더 많은 연대와 공감을 고민하기

 

세미나 동안 우리는 성소수자 인권에 관한 여러 가지 고민들을 공유하기도 했다. 일상 공간에서 경험하는 이성애 중심적 문화, 호모포비아의 정의와 대응에 대한 고민, 성소수자 운동을 단순히 부문 운동으로 치부하는 분위기에 대한 문제, 시혜와 자선의 시각에서 벗어난 진정한 연대와 공감이 무엇인지에 관해서까지.

장서연 변호사는 다른 인권에 비해 성소수자 인권은 유난히도 강한 거부반응과 혐오를 보이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며, 성소수자 커뮤니티가 조직화, 가시화가 아직 되지 않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며 성소수자 인권운동이 직면하고 있는 여러 가지 난점들을 언급했다. 더 많은 연대와 공감을 얻어내는 방법과 전략들에 대한 고민, 그리고 우리들 앞에 산재해 있는 성소수자 인권 운동의 과제들은 쉽게 해답을 내릴 수 없는 질문들이었다.

 

아마도 쉽지 않은 싸움일 것이다. 층층이 쌓여 견고해져 있는 혐오와 차별의 시선들에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끊이지 않을 갖가지의 사회적 잡음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한 잡음들이 우리들 삶과 진정한 자신다움에 다가가는 과정에서 분명 맞닥뜨려야만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라디오의 주파수를 맞추어 갈 때처럼, 때때로 그 잡음들이 단순히 감각을 넘어 마음에 생채기를 낼 지라도, 우리는 서로의 감정과 삶에 공감하고 이해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들의 목소리를 더욱 또렷히 의미화할 것이라는 걸. 그리고 그 또렷한 생의 전파들이 모여 더 많은 공감의 주파수를 맞출 또 다른 영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더 많은 연대와, 더 많은 공감의 행동들이 사회 속 무채색의 침묵들을 다채색의 울림으로 채울 수 있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글_임수진 (16기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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