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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과 “우리”의 이분법이 아닌, “함께”를 생각하기 - 황필규 변호사와 함께한 이주노동자 세미나 후기

공감이 하는 일/공익법 교육·중개

by 비회원 2012. 10. 8.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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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을 에는듯한 바람이 몹시도 불던 2011년의 어느 겨울날, 나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의 이슬람 거리를 찾았다. 조금이라도 낯설고 이국적인 풍경을 보면 반복된 일상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내 눈을 사로잡은 건 이국적인 간판들과 푸른빛의 중앙 성원이 아닌, 이주민들이 먼 타지에서 생활고에 찌들어 살아가는 모습이었다. 내가 이방인으로 느껴졌던 이유는 나와는 다른 그들의 피부색이 아니라, 오래 입어 누렇게 때가 탄 그들의 옷에 비해 너무나 말끔한 나의 옷차림 때문이었다. “이 사람들은 대체 왜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까지 와서 이렇게 고생하며 살아가는 걸까.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그렇게 애써 먹여 살리는 가족은 일 년에 몇 번이나 볼 수 있는 걸까.” 나는 쉽사리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을 자신에게 던지며 집으로 돌아왔다. 가벼운 마음으로 왔지만 무거운 마음을 안고 돌아가야 했던, 너무나도 추웠던 날의 일이다.

 

그로부터 2년이 조금 안 된 2012년의 어느 가을 날, 공감 사무실에서 황필규 변호사의 이주 노동자에 관한 작은 세미나를 들으며 그날의 기억을 곱씹어본다. 분명 내가 그날 본 사람들은 나와는 상관없는 이방인이기 전에 타지에서의 외로움과 생활고를 감내해야 하는, 아파하는 이웃이었다. 하지만 이주민들과 외국인을 향한 대한민국의 법제는 그들을 보듬어 주기보다는 배척하고 몰아세우기에 바쁜 듯하다.

 

 

외국인의 정치활동에 관한 법률을 예로 살펴보자. 대한민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은 합법적 체류자격이 있든 없든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정치활동을 할 수 없다. 투표나 선거출마와 같은 직접적 정치참여뿐만 아니라, 데모, 시위, 그리고 간접적인 정치표현까지도 금한다. 이 법의 적용이 얼마나 엄격한지, 2004년에는 국내에서 활동하는 방글라데시의 한 종교단체가 본국의 정당에 돈을 부쳤다는 이유로 강제출국 당하였다. 대한민국의 정당도 아니고, 방글라데시의 정당에 송금을 한 것이 대체 무슨 큰 문제란 말인가. 하지만 이들은 이슬람 반한 단체”, “알카에다와 흡사한 단체등 언론의 질타를 받으며 쫓겨났다. 이러한 정치활동도 위법인데, 외국인들이 차별과 불공정 대우 개선 등 자신의 기본권 보장을 위한 정치활동을 엄두도 못 내는 건 당연지사다.

 

재한외국인과 다문화 가족, 그리고 인신보호에 관한 법률을 살펴보면 이주민들이 그들의 지위 때문에 차별받는다는 것은 더욱 분명해진다. 재한외국인처우기본법은 재한외국인대한민국의 국적을 가지지 아니한 자로서 대한민국에 거주할 목적을 가지고 합법적으로 체류하는 자로 제한한다. , 미등록이주민은 이 법의 보호로부터 배제되는 것이다. 수많은 이주 노동자들이 단기간의 체류자격만을 얻어 일하다 미등록이주민이 되어버리는 현실을 고려하면, 실질적으로 이 법의 보호를 장기적으로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매우 적다는 결론이 나온다. 다문화 가족지원법 역시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사람이 포함된 가족이 아닌 경우에는 다문화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이주민 가족이 점점 늘고 있는 상황에서 편협해 보이기까지 하는 법률이다. 가장 노골적인 것은 인신보호법이다. 인신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고 법으로 제정해 놓은 선진국은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인신보호법은 출입국관리법에 따라 구금된 자는 배제라고 대놓고 명시 해놓았다. 출입국관리 과정에서의 인권유린을 정당화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있는 나라는 거의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140만 명을 넘어선 국내 거주 외국인을 이류 시민으로 만드는 대한민국의 법제는 대체 어떤 근거로 이렇게 배타적인 걸까. 가만 살펴보면, 이주민과 외국인은 우리와 다른 그들이라는 인식밖에는 이유가 없다. “우리와는 다른 피부색을 가지고 있고, 다른 언어로 말하며, 근본적으로 다르기에 그들은 다른 대우를 받아도 괜찮다는, 아니 그래야 한다는 인식이 이러한 법제를 낳은 것이다. 정작 우리들 사이에도 공통점만큼이나 차이점이 많은데도, 이주민과 외국인이라는 조금 더 뚜렷한 차이의 사람들 앞에서는 편리한 집단의식에 도취되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하지만 이주민의 문제가 우리와는 상관없는 그들만의 문제일까? 정말 그들이라는 울타리에 이주민들을 가두고 우리는 모른 척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걸까? 결국, 그들을 배척하고 우리끼리만 잘 살려는 집단 이기주의는 언젠가 우리의 발목을 잡으며 우리의 발전을 가로막는 부메랑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걱정해본다. 지나친 경쟁 탓에 지금의 한국 사회는 공감대를 찾기보다는 편 가르기에 급급하고, 공동체의 이익을 추구하기보다는 나와 내 주변 사람만 잘되면 그만이라는 근시안적 생각이 만연하다. 이런 사회가 어떻게 병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 최근 들어 빈도가 부쩍 높아진 각종 사회 범죄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자살률, 갈수록 극심해지는 빈부격차와 그에 따른 갈등들, 모두 나만 아니면 돼라는 생각 때문에 심화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같은 맥락에서 우리 사회의 어엿한 구성원이 된 지 오래인 이주민과 외국인을 배척하는 것이 이 사회를 더욱 힘들고 경쟁적으로 만들면 만들었지, 우리의 삶을 더 행복하게 하거나 풍족하게 해주지는 않는다고도 생각한다. 나와는 상관없어 보이는 이웃도 챙기고 보듬어주는, 그럼으로써 함께 사는 따뜻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작은 노력이 모이면 한국 사회도 조금은 살만한 건강한 사회가 된다고 믿는 것은 나만의 순진한 생각일까.

 

따뜻한 사회는 공짜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제는 그들우리의 이분법이 아닌, “함께라는 키워드로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지향했으면 좋겠다.

 

글_정윤후 (16기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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