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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밤은 언제쯤 끝날까요 - 전국 이주노동자 투쟁의 날에 다녀와서

공감이 하는 일/자원활동가 이야기

by 비회원 2012. 10. 5.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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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렴풋이 밤이 끝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하늘은 새벽을 지나 아침을 맞이하는 듯 적색 빛을 머금고 있다. 그 빛을 통해 초원을 내려다봤을 때, 우리의 두 눈은 양 떼 사이에서 잠든 개를 발견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 빛은 저 멀리 있는 무화과나무와 올리브 나무 또한 구별할 수 있게 해준다. 이쯤 되면, 우린 스스로 판단을 내릴 수 있게 된다. 길고 길던 밤이 끝나고 드디어 날이 밝는구나. 적색 빛이라고는 해도 대지의 어둠을 밝혀주니까. 그 빛이 우리의 두 눈을 밝히니까. 하지만 이때 초원의 양 떼 사이로 한 이방인이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의 피부는 우리 눈에 매우 이질적이다. 이 이질감이 혹시 양들을 가져가려는 것은 아닌지, 나를 때리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걱정과 의심을 만들어 낸다. 이에 점점 그가 우리에게 다가올수록 갈등은 더욱 심각해져 간다. 하늘은 적색 빛을 머금고 있을 뿐 아직 밤은 끝나지 않았다.

 

 

 

 

923일 오후 2시 서울역은 언제나처럼 사람들로 북적였다. 가는 사람, 오는 사람. 서울이란 도시를 나가고자 혹은 들어오고자 하는 목적을 가진 사람들의 발걸음이 바쁘게 움직이는 곳. 그러나 이 발걸음들 사이에 보통의 이들과 다른 목적을 가진 발걸음이 있었으니, 바로 자신들의 권리를 투쟁하고자 하는 이주노동자의 발걸음이 그것이다. 일요일이지만 각기 다른 나라 출신 그리고 각기 다른 지방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 1,000명의 발걸음이 서울역 광장으로 모인 이유는 바로 전국 이주노동자 투쟁의 날에 참가하기 위해서다. 사실 이주노동자와 이주 단체가 모여 전국 단위의 옥외집회를 개최한 것은 이날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집회가 최초이다. 이런 최초의 시도에 전국에서 이주노동자들이 모인 주된 이유는 바로 201281일부터 시행되는 고용노동부 지침 때문이다.

 

201281일 부터 사업장을 변경하려는 이주노동자는 고용노동부 지침에 따라 구입 사업장에서 연락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201281일 전에는 고용노동부가 사업장을 변경하려는 이주노동자에게 구인 사업장 명단을, 이주노동자를 구하려는 사업체에는 구직자 명단을 제공함으로써 이주노동자가 자신이 원하는 업종, 장소, 노동조건 등을 고려하여 사업장을 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외국인 브로커 개입을 방지하겠다는 이유로, 81일부터 변경된 고용노동부 지침에 의해 명단 제공이 중단됨으로써 이주노동자는 자신이 원하는 조건 등을 고려하여 사업장을 구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이주노동자는 사업장 변경 신청을 한 때로부터 3개월 안에 구직하지 못하면 본국으로 돌아가야 하므로 사실상 연락을 한 업체와 무조건 근로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이처럼 사업장 선택권 제한은 이주노동자들에게는 치명적인 일이기 때문에 지침 시행 전부터 이주노동자와 이주단체들은 거세게 항의해 왔다. 산업연수생 제도 폐지 이후로 이처럼 이주노동자들의 반발이 심한 예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용노동부는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이에 2012923일 서울역 광장에서 이주노동자 집회 중 최초로 전국 단위의 옥외집회인 전국 이주노동자 투쟁의 날이 개최 된 것이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날. 서울역 광장에 걸터앉아 들을 수 있었던 것은 이야기였다. 선동과 폭력이 아닌 현실에 대한 호소가 집회의 주를 이루었고, 가끔 들리는 투쟁이라는 외침만이 이주노동자들이 이곳에서 집회를 하고 있음을 알게 해주었다. 사회를 향해 이야기하고 싶은 욕구. 이 욕구가 비록 국적은 다르지만, 이주노동자라는 단어로 정의(定義)된 이들을 서울역 광장에 모이게 하였다. 2,000개의 이주노동자들의 눈동자가 응시하고 있는 무대. 이 무대에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위해 올라갔고, 무대 위에서는 한국어·영어·베트남어·버마어 등이 구별 없이 사용되었다. 이 중 한 캄보디아 여성 이주노동자는 영어로 이주노동자에 대한 부당한 차별과 처우를 규탄하는 연설 도중 한국에서 이주노동자의 목소리가 없는 것을 표현하고 싶어서 수화를 배웠다며 이를 몸소 보였다. 그녀의 마음이 나에게 느껴졌다.

 

 

 

 ‘우리라고 말하면 일반화의 오류를 범할 것만 같아 에 대해 솔직히 말을 하자면, 나는 이주노동자들을 타자화하며 살아가고 있다. 사실 이주노동자뿐만 아니다. 어느 날 문득 드는 생각이, 나는 몸서리 칠 정도로 나와 관계된 모든 이들을 나와 같은 보통 사람일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딱 봐도 나와 다르다 판단되는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내 주변 범주에서 제외하고, 내 주변 범주에 포함되어 있는 사람들은 당연히 나와 같으리라는 엄청난 착각과 선입관 속에 인생을 영위하고 있었다. 따라서 내 범주에서 제외된 이주노동자들을 나는 매스미디어를 통해 알게 된 정보로 열심히 타자화했으며, 가끔 안타깝다거나 안됐다는 등의 생각으로 보통 사람 노릇을 하였다.

 

 하지만 나는 과연 보통 사람인가? 감히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아니 사실 보통 사람이라는 정의(定義)가 과연 존재할 수 있느냐고 묻고 싶다. 이것이 서울역 광장에서 수십 명의 이주노동자들이 무대 위에 올라가 나에게 전한 메시지이다. 너와 나가 아니라 같은 사람으로서, 불쌍한 사람이 아니라 그냥 나와 같은 사람으로서 고용노동부의 지침·태도 등이 옳은 것인가를 다양한 언어를 사용해 호소하며 비판하는 그들의 목소리가 이제 그들의 목젖 뿐 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도 울려야 할 때이다.

 

 

 어렴풋이 밤이 끝나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 빛을 통해 양 떼 사이에 잠든 개를 발견할 수 있다 해도, 올리브 나무와 무화과나무를 구별할 수 있다 해도, 하늘이 적색 빛을 머금고 있을 뿐 아직 밤이 끝난 것은 아니다. 한 이방인이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을 때, 우리가 그를 형제로 받아들여 모든 갈등이 소멸되는 그 순간이 바로 밤이 끝나고 날이 밝는 순간이다.

 

 

_조정민 (16기 자원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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