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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문위 칼럼] 흉악범죄의 현장검증, 공개처형의 세리머니를 꼭 해야 하나 -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이호중 교수

공감의 목소리/공감통신

by 공감이 2012. 9. 17.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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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묻지마 살인’, 아동 성폭력 등 흉악범죄가 잇따르면서 시민들은 치안 불안을 호소하고 있다. 정부를 향해 흉악범죄자의 출현을 방지할 수 있는 강력한 대책을 요구하고, 정부는 이에 편승하여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강성 대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졸지에 가족을 잃은 고통과 슬픔, 극악한 범죄로 삶이 처참하게 파괴된 피해자의 고통은 이루 형언할 수 없을 것이다.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을 듯싶다. 시민들은 피해자와 같은 심정이 되어 범죄자를 향해 분노의 감정을 토해낸다.

 

그 가운데 어느덧 현장검증은 시민들이 피의자를 향해 분노의 욕설과 발길질을 해대는 하나의 ‘현장 쇼’가 되어버렸다. 경찰은 흉악범죄의 용의자가 검거되면 현장검증을 한다면서 범행현장에 피의자를 데리고 와서 범행을 재연하게 한다. 사회적 이슈가 된 사건인 만큼 언론의 취재경쟁도 뜨겁고, 지역주민들은 현장검증을 지켜보러 삼삼오오 모여든다. 경찰은 피의자에게 모두 모자와 마스크를 착용하도록 하고, 피의자의 상체는 포승으로 묶고 손목에는 수갑을 채우는데, 수갑이 드러나 보이지 않도록 보통 수건으로 감싼다. 따라서 현장에 모여든 수많은 사람 중에 누가 피의자인지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나주 성폭력 사건에서는 경찰이 아예 피의자의 가슴에 ‘피의자’라고 적힌 커다란 명찰까지 달아주었다.
 

피의자는 경찰의 지시에 따라 경찰수사에서 자백한 내용대로 범행을 재연한다. 그것을 지켜보는 시민으로서는 다시 한 번 울분이 치솟는 게 당연하다. 게다가 “그 짐승 같은 놈, 죽일 놈”이 눈앞에 있다. 주민들은 범행을 재연하는 피의자를 향해 온갖 욕설을 퍼붓는다. 경찰에게는 피의자의 모자와 마스크를 벗기라고 아우성을 친다. 일부 흥분한 시민들은 피의자 가까이 접근하여 피의자를 때리기도 하고 계란세례를 퍼붓기도 한다. 이렇게 소란스러운 현장검증은 카메라 기자들의 렌즈를 통해 생생하게 시민들의 안방에 전달된다.

 

최근 벌어진 흉악범죄 사건에서 경찰의 현장검증은 대강 이렇게 진행되었다. 그런데 그것을 지켜본 나에게는 뭐라 말하기 어려운 불편함이 가슴 깊숙한 곳에 남아 있다. 형사소송법상 경찰이 행하는 현장검증은 증거를 수집하기 위한 수사의 일환이다. 그러나 모든 사건에서 현장검증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나는 형사법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경찰이 과연 저렇게까지 현장검증을 하는 이유는 대체 뭘까에 대하여 한마디 해야 할 필요를 느낀다.

 

우선 혼동돼서 쓰이는 개념을 구별해야 한다. ‘현장검증’이란 수사기관이나 법원이 범행현장에 가서 현장상황을 확인하고 증거를 수집하는 활동을 일컫는 말이다. 현장검증에 반드시 피의자를 동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현장검증의 일환으로 행해지는 ‘범행 재연’이라는 것이 있다. 경찰이 피의자를 데리고 범행현장에 가서 피의자로 하여금 범행을 다시 반복해 보이도록 하는 것이다. 시민들이 언론을 통해 접하는 것은 이 ‘범행 재연’이다.

 

 

‘범행 재연’은 피의자가 경찰에서 자백한 진술을 토대로 하여 이루어진다. 피의자의 자백이 현장의 지형이나 상황과 일치하는지, 자백에 어떠한 모순점은 없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목적이다. 피의자의 진술이 오락가락한다든가, 자백했어도 그 진술이 현장상황과 정확히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있어 현장에 가서 직접 확인해 볼 필요가 있을 때에 주로 범행 재연의 현장검증을 실시한다. 이렇듯 범행 재연은 피의자의 자백의 신빙성을 확보하기 위한 성격을 지니고 있을 뿐이며, 범행 재연의 현장검증을 한다고 해서 그것이 향후 재판에서 자백과 별도로 가치 있는 증거가 되는 것도 아니다. 특히 피의자의 자백이 일관성이 있고 피의자가 이미 사건의 전모를 소상하게 자백한 경우라면 특별히 현장검증을 통해 범행을 재연하게 할 필요가 없다. 자백 외에 물증이나 목격자 진술 등 증거가 다수 확보되어 있다면 더더욱 ‘범행 재연’이란 것을 해야 할 이유는 없어진다. 나주 성폭력 사건, 전자발찌를 챈 채로 성폭행을 하려다가 피해자를 살해한 사건, 서울 여의도의 흉기 난동사건 등은 사건이 복잡한 것도 아닐뿐더러 피의자가 이미 상세하게 자백했고 경찰이 중요한 물증도 충분히 확보했기 때문에 수사를 위해 현장검증이 굳이 필요한 사건은 아니었다.

 

그런데 왜 경찰은 흉악범죄가 사회적 이슈가 될 때마다 수많은 경찰인력을 동원하고 적지 않은 비용과 시간을 써가며 현장검증을 하는 걸까. 내가 보기에 흉악범죄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경찰이 하는 현장검증은 더 이상 ‘수사’가 아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의 정치적인 동기가 있다.

 

첫째는 경찰의 과시욕이다. 경찰이 흉악범 검거성과를 과시하기 위해 현장검증을 이용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흉악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경찰은 사실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이게 된다. 경찰의 대처가 미흡했느니 하는 곱지 않은 언론보도가 나간다. 이럴 때 흉악범죄자를 주연으로 삼는 현장검증을 하면 경찰로서는 흉악범죄자를 조기에 검거하는 쾌거를 이뤘다는 성과를 과시하는데 아주 유용하다. 실제 현장검증은 피의자의 자백을 확인하는 것에 불과하여 현장검증에서 새로운 증거를 발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말 그대로 피의자의 범행을 ‘재연’하는 ‘쇼’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 ‘쇼’가 경찰의 검거성과를 언론과 시민에게 과시하는 수단이 되고 경찰에 대한 비난을 잠재운다.

 

둘째, 현장검증은 어느 샌가 ‘공개처형의 세리머니’의 성격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피의자의 자백이 각본이며, 경찰은 시간과 돈을 투자하여 제작과 연출을 맡는다. 물론 주연은 피의자이다. 흉악범죄의 재연이라는 짧은 연극은 관객이 된 시민들에게 범죄자를 향하여 마음껏 분노의 감정을 표출하고 돌을 던질 기회를 제공한다.

 

내 기억엔, 과거에는 경찰이 세간의 주목을 받은 흉악범죄자에 대해 현장검증을 하더라도 언론과 주민들에게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배려가 그래도 조금은 있었던 것 같다. 폴리스라인도 비교적 멀리서 쳐서 주민들의 접근을 가능한 한 차단하려고 고심하기도 했다. 그런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 현장검증을 언제 하는지는 사전에 언론과 주민들에게 알려진다. 경찰이 현장검증의 일시를 대놓고 광고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최소한 경찰은 언론과 주민들의 뜨거운 호응을 마다치 않는다. 즐기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수많은 취재기자와 주민들이 현장 주변으로 몰려들 것을 충분히 예상하면서도 경찰의 폴리스라인은 오히려 과거보다 더욱 엉성해졌다. 어설픈 폴리스라인 덕에 흥분한 시민이 달려들어 피의자에게 발길질하는 등의 폭행도 최근에는 자주 일어난다. 경찰이 이 같은 사태를 고의로 야기하였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경찰은 분노한 시민의 접근을 적극 차단하려는 의사는 없는 듯하다. 대규모 집회시위의 현장을 물샐 틈 없이 봉쇄하는 경찰의 모습과 너무나도 대비된다.

 

이러한 현장검증을 ‘공개처형의 세리모니’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 광경이 근대 계몽주의 이전의 공개처형의 집행 모습과 많이 닮았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중범죄자의 처형 자체가 일종의 국가적인 행사였다. 처형당할 범죄자는 포승과 사슬에 묶인 채로 먼 곳에서부터 군중들의 손가락질과 욕설을 받으며 처형당할 장소로 걸어가야 했다. 그리고서 처형 장소에 도착하면 수많은 군중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공개처형이라는 국가적 세리머니가 진행되었다. 지금이 그때와 다른 점은 오늘날에는 형벌의 집행 모습은 공개되지 않는다는 것뿐이다.

 

근대 이전의 시대에 이러한 공개처형의 세리머니는 국왕의 지엄한 권력을 군중들에게 보여주는 행사였다. 오늘날은 어떠한가. 현장검증을 직접 혹은 TV로 지켜본 수많은 시민들은 무엇을 느끼고 어떤 생각을 할까. 오늘날 강력범죄 대책은 강성 일변도로 변해가고 있다. 흉악범죄를 저지르면 이미 동료 시민이 아니라는 생각에서 그 위험한 범죄자를 사회적으로 매장해야 한다는 논리가 지배하고 있다. 전자발찌, 신상공개, 화학적 거세에 이어 물리적 거세, 사형집행 재개 주장에 이르기까지 모두 그러하다. 시민들은 국가가 더욱더 강력한 형벌 권력을 행사할 것을 주문한다. 그러한 주문을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확인해 주는 무대가 바로 현장검증이라는 세리머니이다.

 

하지만, 그 세리머니를 통해 분노의 돌팔매질과 함께 흉악범죄자를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라고, 국가가 강력한 매장권력을 행사해야 한다고 주문하는 것은 냉정하게 보면 강력범죄의 예방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좀 더 차분하게 강력범죄 예방대책을 논의하는 성숙한 시민문화가 사라지는 모습에 안타까움과 무력함이 교차한다. 먼저 광기 어린 세리머니부터 중단해 봄이 어떠한가.

 

글_이호중 교수(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공감 에세이집 '우리는 희망을 변론한다' 출간 - 박원순 시장, 신경숙 작가 추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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