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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변의 변] 함께 슬퍼하고 함께 분노하는 것이 변화의 출발점이다 - 염형국 변호사

공감의 목소리/공변의 변

by 비회원 2012.09.12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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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난 7월 말 어느 신문에 통영에서 성폭행범에게 살해당한 어린아이에 관한 기사가 실렸다. 열 살짜리 아이는 배고프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새벽에 잠이 깨어 아는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어 배고파요, 밥 사 주세요.”라고 말했다는 여자아이는 평소 친절하게 대해주던 아저씨를 쫓아가서는 결국 그 아저씨에게 죽임을 당했다. 그날 아침에 읽었던 그 기사가 온종일 뇌리에서 맴돌았다. 처음엔 안타깝다가, 그다음엔 분노하다가, 그리고는 슬픈 마음에 눈물이 났다. 국민소득 2만 달러가 넘는다는 이 나라에서 배고프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어린아이가 결국 몹쓸 어른에게 죽임을 당했다. 배를 곯아 굶주리고, 사랑을 못 받아 정에 굶주린 아이, 얼굴 한번 본 일이 없지만 그 아이의 이야기가 계속 생각이 난다.

 

2. 이어서 지난 8월 초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에서 배달원들의 승강기 이용을 금지하는 경고문을 붙였다는 신문기사가 실린 적 있다. 그 경고문은 배달사원 승강기 사용자제 안내라는 제목으로 당 아파트에 출입하는 배달사원(신문, 우유 등)의 배달 시 각 층마다 승강기 버튼을 눌러 사용하므로 주민의 이용불편과 승강기 고장 및 관리비(전기료) 발생 등으로 인하여 입주민 민원이 많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계단을 이용하여 배달해 주시기 바라며, 개선되지 않을 시 이에 상응하는 강력한 조치를 취함을 알려 드리니 배달 시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기사를 보고 같은 사람으로 화가 나고, 수치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이 경고문을 보고 배달원들의 마음이 어떨까, 배달원들이 엘리베이터를 이용한다고 해서 전기세가 과연 얼마나 더 들까, 그 정도도 배려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기네가 직접 신문과 우유를 가져가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3. 최근 잇따라 묻지마 범죄가 발생하고 있다. ‘묻지마 범죄는 개인 사이의 관계에서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회와 나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으로 사회에 대한 복수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한편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의 국가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는 승자 독식의 사회이자 무한경쟁을 강요하는 사회이다. 그러면서 그로 인한 결과는 고스란히 개인에게 책임 지운다. 개인에게 가혹한 결과 책임을 요구하는 사회에서 개인은 버텨낼 수 없다. 더는 버틸 수 없는 개인이 선택한 방식이 자살이거나 묻지마 범죄인 것이다. 결국, 자살과 묻지마 범죄는 종이 한 장 차이일 뿐이다.

 

4. 이들은 약하고 여려서 자기 방어를 할 수 없다. 스스로 배고픔을 해결할 수 없고, 스스로 수치스러운 지위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스스로 자살 충동과 묻지마 범죄충동을 이겨내지 못한다. 이들에게 그에 대한 책임을 모두 지우는 것이 맞을까? 학교에 가지 않고 다정한 아저씨를 쫓아가서 죽임을 당한 것이 그 아이의 책임이고 그 부모만의 책임인가? 배달하면서 엘리베이터도 이용 못 하는 지위에 있는 것이 그들만의 책임인가? 자살하고 묻지마 범죄를 저지르는 것은 과연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그들만의 책임일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들만의 책임으로 몰아가는 것은 비겁하고 정의롭지 못한 일이다. 모든 문제의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한 억울한 사람들은 끊임없이 양산될 것이다. 실은 패자가 부활할 기회를 부여하지 않고,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를 걷어차 버렸으며, 번듯한 직장을 갖지 않으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이 허용되지 않는 사회가 문제이다. 모든 이들을 경쟁에 내몰아 주변을 살필 여유를 주지 않고 남을 밟고 올라가야만 살아남을 수 있도록 하는 잔인한 사회가 그들을 그렇게 내몬 것이다.

 

5. 최근에 우리 사회에서 힐링, 참선, 명상, 템플스테이 등이 유행하고 있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정신적으로 지쳐 있다는 것이다. 사회 전체의 정신적 고통을 개인 차원에서만 풀도록 해서는 안 된다. 사회 전체가 개인의 문제에 관심을 두고 책임을 져야 한다. 경쟁에서 밀려난 이들을 위한 사회안전망이 있어야 한다. 직장을 잃더라도 최소한 배는 곯지 말아야 하며, 힘들 때 하소연할 수 있는 곳이 있어야 한다. 한번 실패해도 재기할 기회를 부여하여야 하고, 누구나 사다리를 타고 위로 올라갈 수 있도록 공평한 기회를 부여하여야 한다.

 

함께 아파하고 함께 분노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이다. 나와 내 가족은 잘살고 있으니 괜찮고, 나의 일, 내 가족의 일이 아니니 나 몰라라 하는 한 우리 사회는 더욱 병들어 갈 수밖에 없다. 나 혼자서는 실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사회 전체가 병들어 가는데 홀로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는 모두 촘촘히 연결되어 있어 그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다. 사람 인()은 사람이 본래부터 혼자가 아닌 서로 의지하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사람다운 사회의 출발점은 함께 슬퍼하고 함께 분노하며 이를 작은 실천으로 옮기는 것에 있다.

 

ps. 비정한 이 사회를 함께 살았던 한 사람으로서 통영에서 죽임을 당한 아이에게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다. 그 아이의 명복을 빈다.

 

_ 염형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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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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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9.12 21:41 신고
    변호사님 좋은 글이네요. 트랙백 걸어주셨길래 답방왔다가 읽고 갑니다. '공감'은 제가 꾸준히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더 좋은 활동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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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9.17 09:40
    바람몰이 님,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관심 가져주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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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9.17 18:40
    염변호사님...글을 읽으면서...너무 슬프고...가슴이 먹먹해 집니다. 찢어지는 가슴으로 분노하고 슬퍼해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이 사회를 어찌해야 하나요? 절망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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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9.18 22:26
    ㄴ 아침나라 님~ 저는 아침나라 님처럼 자기 일이 아님에도 함께 슬퍼하고 가슴 먹먹해하는 게 역설적이게도 희망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해요~ 사회는 우리가 바라는 만큼 양껏 바뀌지는 않지만 아침나라 님 같은 분들이 모여서 그래두 조금씩 앞으로 전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희망을 갖고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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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1.06 21:04
      Fidinng this post. It's just a big piece of luck for 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