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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인권법 캠프 후기] 주거권,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것'에 관한 권리 - 박보라

공감이 하는 일/공감 인권법 캠프

by 비회원 2012.08.16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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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창 성장 중인 신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도로와 거리는 구획이 자로 잰 듯이 나뉘어 있었으며, 시시각각으로 도시 곳곳에 새 아파트와 상가, 그리고 학교가 들어서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새로 지은 아파트로 이사가, 지은 지 5년이 채 되지 않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옆에는 ‘새치골’이라는 작은 마을이 있었다. 나는 한 번도 그 동네에 직접 가 본 적이 없고 오가면서 본 게 다였으나, 어린 나의 눈에도 온통 새것의 기운이 가시지 않은 동네 풍경과는 이질적인 곳으로 보였다. 엉성한 가건물들이 제 좋을 대로 다닥다닥 붙어있던 그곳. 두 손만 써도 나이를 다 셀 수 있는 어린 우리였지만, ‘누구누구가 새치골에 산대.’라는 말이 좋은 말이 아니라는 것은 반 애들 모두가 알고 있었다. 나 역시도 같은 반 남자애가 새치골에서 할머니와 둘이서 산다는 얘기를 들고서 그 애가 평소와 다르게 보였던 기억이 난다. 이질감, 거부감 그리고 영문을 알 수 없는 미안함…

 

주거권은 법학과를 졸업한 나에게도 다소 생소한 이름이었으며, 그래서 더 관심이 갔다. 그래서 두 가지 주제마당 중에서 주저 없이 주거권을 골랐다. 주거권 부분 강의를 맡으신 차혜령 변호사님께서는 ‘내가 살고 싶은 집’은 어떤 집인지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으로 강의의 문을 여셨다. 내가 누리고 싶은 주거에는 어떠한 요소가 포함되어야 하는가? 참가자들 대부분이 미리 고민해본 적 없는 문제여서 모두가 우왕좌왕하며 생각을 풀어내어 갔다. 주거권을 짧게 요약한다면 ‘인간다운 주거생활을 할 권리’이지만, 이 인간다운 주거생활을 위해서는 생각보다 다양한 요소가 존재했다. 유엔 사회권위원회의 일반논평에 따르면, 주거의 요소는 가장 기본적인 점유의 법적인 안정성뿐만 아니라, 기본 인프라 및 서비스 접근성, 비용의 적정성, 쾌적한 주거환경, 장애인 등에게 차별적이지 않은 접근성, 그리고 적절한 위치와 문화의 적절성으로 이렇게나 다양하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주거권이라고 하면 일단 재산으로서의 주거공간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집은 사고파는 물건이며 더 나아가 투자재이다. 그러한 생각이 집을 더욱더 비싸게 하고, 높은 주거비를 지불할 수 없는 사람들을 열악한 주거공간으로 내몰게 된다. 현재 기초생활수급비 40만 원의 최소 절반을 주거비에 써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나 보증금도 없는 월세 20만 원짜리 방은 어떤 방일까? 그 20만 원짜리 방조차 구할 수 없어서 길거리에서 자고, PC방에서 자고, 방, 고시원, 비닐하우스, 판자집에 살고 있는 ‘홈리스’들의 인간다운 주거생활을 할 권리는 어떻게 보장해야 하는가? 단순히 개인의 문제로만 생각했던 주거 문제를 공적 영역으로 넓히니 문제의식은 꼬리의 꼬리를 물었다.

 

 

 

그리고 논의는 비닐하우스촌 관련 소송 문제로 넘어갔다. 부끄럽지만 나는 이전까지 비닐하우스에서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하지만 강의에서 접한 비닐하우스촌들은 단지 그곳에 사는 것을 넘어 마을 공동체까지 형성하고 있었다. 비닐하우스촌은 개발의 열풍 속에 남겨진 자투리땅에서 형성된 곳이며, 주로 화훼용 비닐하우스 같은 기존 건축물에 합판 등의 값싼 부자재를 덧씌운 집들로 구성되어 있다. 비닐하우스촌의 문제는 비닐하우스가 각종 재해에 극히 취약한 열악한 주거공간이라는 점과 합법적인 주거지로서 인정받고 있지 못 하다는 점이다. 공감에서는 후자를 해결하기 위해 주민등록전입신고 수리를 거부한 처분 취소를 요구하는 소송을 하여 승소한 바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법과 행정은 대부분 주민등록상 주소지를 기준으로 이루어진다. 비닐하우스촌 주민들이 대부분 원치 않는 위장전입을 하고 있던 상황을 해소하고 실거주지와 주민등록상 거주지를 일치시켰다는 점에서 이 소송의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강의 중, 허름한 가건물들이 모여 있는 비닐하우스촌 사진을 보자마자 내 고향의 ‘새치골’이 떠올랐다. 오래전에 잊어버려 내 기억 속에 있었는지도 몰랐던 그 곳. 이번 강의를 통해 나 역시도 집을 재산권으로만 재단하는 방식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었던 것 같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저소득층에게 주거 문제는 생계를 위협하는 치명적인 비용 부담이며 생존의 문제라는 것도. 편안하게 휴식할 수 있는 집은 삶의 핵심적인 요소 중 하나이다. 이제 주거문제는 공적인 문제로 승격되는 것이 옳다고 생각이 든다. 미분양되는 잉여 아파트가 남아있는데도 다양한 형태의 홈리스들은 더욱 늘어만 간다. 주거권 문제를 개인이나 시장에만 맡겨서는 해결할 수 없음은 이제 자명하다. 국가는 홈리스들에게 적절한 주거를 지원할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해야 하며, 우리 국민들 역시 주거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발을 위해 기존 거주민들을 내쫓는 비인간적인 광경 역시 그저 ‘소유권의 행사’ 정도로만 생각했던 것 아닌가에 대해서도 반성이 되었다. 또한, 재산권 위주의 패러다임을 전환하여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것’에 대한 권리 역시 주거권의 영역에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내가 알던 새치골은 내가 초등학교 시절에 이미 없어졌지만, 인터넷 검색을 통해 새치골에 관해 시를 쓴 분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시를 소개하면서 짧은 소감문을 마치고자 한다.

 

 

 

남자들 공장가고 공사장 간 사이

닭 쫓는 개떼처럼 우르르 몰려 와

가슴에 불 하나씩 켜 놓고 사는 사람들

촉수 낮은 불빛들 깨뜨려 놓고

닭집 부수고 개집 부수고

쫓기는 달구새끼들처럼

우르르 몰려가 버린 시청 철거반들

 

 

가슴이 캄캄해서

어젯밤 늦도록 깨진 불빛들 긁어모아

불 지펴 놓고

소주잔 기울이던 사람들

오늘은

아침까지 가로등 하나 불 켜 놓고

불빛 조금씩 나누어 갖는지

공사장 출근길 조용하고

 

 

민병국씨 집 울타리

조그만 개나리꽃

사람들 가슴에 되살아나는 불빛처럼

노오랗게 피어납니다

 

 

-김해화, '새치골 개나리'

 

 

글_박보라(여름 인권법 캠프 참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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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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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8.16 23:11
    잘읽었습니다. '주거'가 인간의 기본권과 동떨어진 채 단순한 '재산'의 개념으로만 치부된다면 인간의 생존권마저 위협할수 있겠다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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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8.17 07:56 신고
    도시 출신은 아니지만, 저 역시 새로 개발된 아파트 단지에 살면서 바로 옆 동네에 오래된 마을이 있는 곳을 보며 학교에 다니곤 했어요.
    그 오래된 마을은 지금은 멋진 공원이 되었다더군요. 그렇다면 그 동네 주민들은 어디에?......
    주거 문제를 개인의 영역으로만 여기는 것이 아니라 공적인 문제로 생각하게 한 것만으로도 강의는 성공적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 역시 생각도 더, 작은 행동이라도 시작, 그런 다짐을 하게 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