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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인권법 캠프 후기] 귀를 막고 목소리조차 듣지 않는 이들과의 싸움, 성소수자 인권 강연에서 - 이애린

공감이 하는 일/공감 인권법 캠프

by 비회원 2012.08.16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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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 그것이 정말 너무나도 어려운 일일까

 

작년 여름, 뉴욕에서 동성결혼을 합법화했다는 기사를 봤던 기억이 있다. 그때 기사와 함께 올라왔던 한 장의 사진. 나이를 지긋이 먹은 두 할머니가 뉴욕 시청 계단을 오르고 있는 모습이었다. 사진을 보며 떠오른 단어는 ‘인정’이었다. 인정받는다. 사랑하는 동반자가 아플 때 보호자란에 사인을 할 수 있는 정당성.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는 법적 인정. 당연한 것이라고 인식되는 사회의 인정.


흔히들 쉽게 다원화된 사회에는 다양한 사람과 그만큼 다양한 가치관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타인의 가치관을 존중하고 인정해줘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정말 그런가. 우리는 정말 하늘의 별만큼이나 많고 다양한 타인의 모습을 이해하고 인정하는가. 나 자신과 조금이라도 다르면 소외시키고 꺼리고 차별하는 게 우리 아니었던가. 쉬운 일은 아니다. 나와 다른 무언가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정말 인정이라는 것이 다른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내고 희생시켜야 할 만큼 우리에게 어려운 것일까. 그것이 정말 너무나도 어려운 일일까. 인권법 캠프의 둘째 날 진행됐던 성소수자 인권 강의를 신청한 이유는 바로 그런 물음 때문이었다.

 

 

귀를 막고 목소리조차 듣지 않는 이들과의 싸움

 

성소수자 인권 강의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성소수자 인권과 충돌하는 다른 가치관에 관한 토론이었다. 나는 종교의 자유와 충돌하는 성소수자 인권에 관한 토론에 참여했다. 대관을 목적으로 하는 어느 가톨릭 단체가 자신들의 종교적 명분과 교리를 내세워 성소수자 인권단체에 대관할 것을 거부한 사례를 중심으로 이것은 차별인가 아닌가 하는 주제였다.

 

나의 입장에서 그런 행동은 엄연한 차별이었다. 그 단체가 비록 가톨릭을 종교적 기반으로 삼고 있다 하더라도 단체 설립 취지는 대관을 ‘목적’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성소수자 인권단체라는 커뮤니티의 성격은 대관이라는 단체의 목적을 이루는데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즉 성소수자 인권단체 측에서 엄연한 차별이라 한 주장에 대해 종교적 자유를 침해했다고 말하는 것은 단체 측의 종교의 자유에 관한 지나친 확대 해석에 불과하며 그들의 행동은 차별이다.

성소수자 인권이 언급될 때 가장 많이 충돌하는 가치관은 종교이다. 인간을 비롯한 역사, 문화 등에 많은 영향을 미친 종교의 중요성과 그 가치는 부정할 수 없으며 부정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인권이냐 종교의 자유냐 하는 양자택일식의 논의는 불가능한 것이기도 하고 그러므로 헌법이 보장하는 가치관의 우위를 논하는 것은 위험한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한 가지만큼은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종교가 사람을 만든 것이 아니라 사람이 종교를 만든 것이다.


 

토론은 자신의 논리대로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입장을 가진 쪽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그의 생각을 존중하며 진행됐다. 토론에서 다른 사람의 입장을 잘 들어주고 때론 공감도 할 수 있는 것은 이쪽에도 그럴듯한 논리가 있듯 저쪽에도 분명 논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에서는 토론의 예의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사회는 성소수자의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 그리고 듣지 않는다. 또 사회는 그들이 존재하지 않다는 가정 아래 질서를 만들고 그들만의 토론을 해왔다. 그래서 성소수자들은 자신들을 배제한 사회 안에서 살아가며 많은 불편함과 편견을 만나게 된다. 내 의견이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 당연하듯 나와는 다른 의견도 존중받아야 한다. 또한, 내 의견이 존중받기 위해서는 나와는 다른 의견을 존중할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하다. 그 마음을 여는 방법은 우선 경청하는 것이다.

 

 

사랑이 나쁜 게 아니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해본 적 있는 사람은 안다. 그때는 사랑 노래나 시가 진심으로 이해가 된다. 또 그 사람뿐만 아니라 그 사람과 나를 둘러싸고 있는 이 세상도 사랑하게 되고 이해할 수 있다. 사랑하면서 사람들은 ‘인정하기’를 더 잘 배운다. 내가 기대하는 그 사람의 모습과 실제의 그 사람이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것을 받아들여 가는 과정이 사랑의 첫 단계이기 때문이다. 그런 공감을 통해 성숙한 마음을 가지게 되고 혹여 그 사람과 헤어지게 되더라도 이전보다 많이 자란 모습의 나를 만날 수 있다. 그래서 사랑을 해본 사람은 알 수 있다.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이해하는 것이 정말 너무나도 어려운 일은 아니라는 것을.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결코 손가락질받을 일은 아니다. 지금 그대가 손가락질하고 있는 그 방향은 사실 다른 곳을 향해야 할 것이다. 사랑이 나쁜 게 아니다.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는 그대가 나쁠 뿐이다.

 

글_이애린(공감 인권법 캠프 참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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