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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인권법 캠프 후기] 장애인은 자신의 일상을 선택할 자유를 누릴 수 없다? - 이상윤

공감이 하는 일/공감 인권법 캠프

by 비회원 2012.08.16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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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실, 이 캠프에 참여하지 말았어야 할 사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참가자들처럼 인권과 관련하여 많은 활동을 해왔던 사람도 아니고, 소수자들의 인권 침해 문제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던 사람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고백하건대, 향후 제 이력서에 뭔가 한 줄 끄적거릴 수 있는 ‘건수’를 만들어볼 요량으로 캠프에 참여한 것이 사실입니다. 참 부끄러운 일이지요. ‘공익’과 ‘인권’을 위해 무엇 하나라도 더 배워볼 마음으로 모인 사람들 가운데에, 저와 같이 ‘사익’을 추구하는 반동분자(?)가 껴 있으면 모임의 취지가 퇴색될 수도 있는 것이었으니까요. ‘어쩌면 좋은 밭에 뿌려진 가라지란, 나와 같은 사람을 두고 이르신 말씀이 아니었을까’라는 자조 섞인 생각이 들기도 할 만큼 캠프의 열기는 뜨거웠습니다.

 

여러 주제마당에서 제가 장애인권이라는 주제를 선택하게 된 이유는, 그나마 장애인권이 유일하게 제가 경험하고 고민해보았던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학창시절, 정말 신기하게도 꼭 한 두 명씩 발달장애를 가진 친구와 같은 반에 속하여 학교생활을 하였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까지, 약 10년을 지적발달장애를 가진 친구와 함께 생활해 온 것인데, 그러다보니 그들의 ‘다름’과, 또한 그 ‘다름’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를 접할 기회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참……. 안타깝게도 그것은 그다지 유쾌한 경험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사건과 사고를 겪었고, 많은 인간들의 모습을 보았지만, 그 기억 속에서 제가 발견한 것은, 오직 ‘다름’을 대하는 인간의 폭력성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적발달장애를 가진 친구를 장난감처럼 괴롭히다가도, 선생님 앞에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돌변하는 아이들의 모습, 싸움을 잘하지 못하는 소위 ‘찐따’ 친구들에게는 잔인하리만치 가혹하게 대하면서 자신들보다 센 어른들 앞에서는 한없이 불쌍한 존재로 돌변하는 아이들의 모습 등이 저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 했던 것이지요. 아마도 이런 경험들 때문에 여러 주제마당 가운데에서 장애인권을 선택하게 된 것 같습니다.

 

 

 

염형국 변호사님께서 맡아주신 ‘장애인권’ 강좌에서 말하는 장애인권 문제의 핵심은, 우리가 그들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하여 너무 무관심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근본적인 문제란, ‘장애인도 인간(人間)’이라는 당연한 사실이, 너무나도 가볍게 무시당하고 있다는 것이었지요. 사실 그랬습니다. 저부터도, ‘장애인들의 복지시설이 문제다’라고 말했을 때, 도대체 뭐가 문제라는 말인지 몰랐으니까요.  저는 처음에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생활이 어려운 장애인들에게, 먹는 문제도 (공짜로) 해결해주고, 입는 문제도 해결해주며, 주거의 문제도 해결해주는 복지시설이 도대체 뭐가 문제란 말이야? 게다가 TV도 있고, 예배를 드릴 수 있는 환경까지 조성되어 있다는데. 뭐가 문제란 말이지? 왜 복지 시설로 들어가지 않는 거야?' 라고요.
 

하지만 이러한 생각이, 저의 무지와 무관심으로부터 비롯된 큰 착각이고 부끄러움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소위 장애인들을 위해 지었다는 복지 시설에, 인간이기 위해 반드시 누려야 하는 사회생활, 즉 ‘인간관계’와, 그리고 인간이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기본적인 ‘자유’가 전혀 없다는 것을
이번 장애인권 강좌를 통해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지요.
 
‘복지시설에는 자유가 없다’는 것이 무슨 말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누리고 있는 평범한 일상과, 복지시설에서 장애인들이 살아가고 있는 일상이 서로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잠을 잘지, 어디로 여행을 갈 지, 어디에 들러 어떤 커피를 마실지, 오늘 점심을 뭘 먹을지, 내일은 누구를 만날지 등등 일상 속의 많은 일들을 우리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지만, 복시시설의 장애인들에게는 이러한 자유가 일절 허락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자신이 선택한 일상이 없었고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자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주는 밥으로 먹는 문제가 해결된 것으로 보이지만, 마트에 가서 라면 한 봉지 살 수 있는 자유가 그들에게는 없었고, 서울 시내에 득실거리는 여느 커피집을 출입할 수 있는 자유가 그들에게는 없었던 것이지요. 입는 문제가 해결되었다지만, 옷 한 벌 사러 나갈 수 있는 자유가 그들에게는 없었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었다지만, 여행은커녕 산책할 수 있는 자유조차 그들에게는 허용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느껴 인식조차 할 수 없지만, 그들에게는 너무나도 중요한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권리들이, 단지 그들이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너무나 쉽게 박탈되어져 온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은 만약 여러분들이 장애인들과 같은 삶을 살게 된다면 기분이 어떨지 생각해보셨나요? 집이나 시설 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서지 못하고, 사회와의 접근이 차단되어버린 그런 삶을 말입니다.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는 일은 커녕 지나가는 이웃에게 마음대로 인사조차 건낼 수 없는, 그런 삶을 살게 된다면 어떨지... 저는 정말 상상조차 하기 싫을 만큼 아주 끔찍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한 인간이 아니라, 개나 돼지가 되어 우리에 갇힌 기분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저와 같은 기분이 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관계와 교제에 대한 기본적인 욕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한 욕구가 충족되지 않는 삶은, 그야말로 끔찍한 고통 그 자체일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장애인들에게, 그렇게 끔찍한 고통을 아무렇지도 않게 강요하며 살아온 것일까요.. 왜 우리는 가기 싫어하면서, '장애인들’은 복지시설로 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던 것이냐는 말입니다. 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장애인들의 교통권 시위를 못마땅한 눈빛으로 바라보지 않았었나요?  왜 우리는 자유롭게 버스도 타고 지하철도 타고 다니면서, 그들의 욕구는 무시해왔던 것일까요? ‘우리도 버스를 타고 싶다’며 길을 막고 외쳐대는 시위대를 향해, 출근 시간 지하철을 막고 시위하는 장애인들을 향해, 바쁜 시간을 10분이나 빼앗겼다며 눈살을 찌푸렸던 우리는, 과연 무슨 생각으로 그들을 대해왔던 것일까요..
 
저는 이 모든 일의 기저에, 그들을 '인간 이하'로 생각하는 사고가 깔려 있다고 봅니다. 우리가 그들을, 우리와 똑같이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할 인간으로 생각했다면, 시각장애인의 목욕탕 출입제한을 당연히 여기거나,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굳이 버스까지 타야겠느냐고 반문하는 일은 있을 수 없었을 테니까요. 오직 장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이동의 불편도 어느정도 감수해야하고, 사회생활을 좀 못하게 되어도 어쩔 수 없으며, 일을 못해 경제적 능력이 없는 것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야말로 이기적인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비장애인인 우리들 역시, 일상 속에서 마주치는 불편한 시설과 부당한 제도들에 대해 끊임없이 개선을 요구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돈 없는 서민들을 위해 대중교통이란 것을 만들었고, 버스가 움직일 때 자꾸 넘어질 위험이 있으니까 곳곳에 손잡이를 설치했으며, 앉는 자리가 불편하니까 의자를 교체하고,, 그렇게 끊임없이 요구하고 개선하고 또 불편한 점을 지적하면서 자꾸 고쳐가며 살아가고 있는 것을. 그런데, 왜 장애인들은 그러한 요구를 해서는 안된다는 말입니까? 저는 이것이 말도 안되는 차별적인 생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장애인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장애인이라면 어느정도 불편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라고 변명하는 모든 행태들이, 사실 '그들은 인간이 아니고, 나만 인간’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한 행태라는 것을 깨달은 것이지요.

 

 

 

남을 인간으로 보지 않는 태도.

 

저는 이것이 비단 ‘장애인권’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번 캠프의 핵심, 나아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불합리한 차별과 인권 침해 문제의 본질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만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태생적인 이기심이, 우리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아 우리의 가슴을 딱딱하게 굳게 만들었기 때문에 이처럼 장애인 차별, 성적 소수자 차별, 노동자 차별, 주거권 침해 등 무수한 문제들이 발생하게 되었다는 생각이 든 것이지요. 우리는 정말 그들을 우리와 동등한 인간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요? 혹시 그동안 ‘나’처럼 손, 발, 다리가 멀쩡하고, ‘나’처럼 눈이 보이는 사람이라야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나’처럼 살아야, ‘나’와 같은 생활수준을 향유하고 있어야, ‘나’와 같은 성적 지향을 갖고 있어야, ‘나’처럼 화이트칼라 혹은 정규직에 있어야 ‘인간’이라고 여기며 살아온 것은 아닐까요? 저는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시위를 위해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장애인들을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리고, 크레인 위에 농성하던 노동자가 몇이 죽어가든 내 일이 아니라며 무신경한 모습을 보이고, 동성애자들을 향해 손가락질해대는 사람들에게요.

'저들은 인간이 아닌가요?'

 

저는 참 이번 캠프를 통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위의 질문은, 바로 제 자신에게 던져야 할 질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과연 그들을 정말 ‘인간’이라고 생각했는가? 인권법 캠프에 참여하면서 여러 강좌를 통해 직접 차별을 경험하기도 해보고, 시각 장애인이 되어보는 체험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기도 해보고, 또한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여러 강사님들의 강의를 통해 전해 들었던 시간을 떠올리면서, 저는 위 질문을 제 자신에게 던져 보았습니다. 나는 과연 그들을 인간이라고 생각했던가? 부끄럽게도, 정말 부끄럽게도 저는 도무지 ‘그렇다’는 대답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을 저와 같은 인간이라고 생각했다면 지금껏 그렇게 무관심하고 그렇게 무표정한 얼굴을 하고 있을 수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제가 학창시절의 경험을 통해 품었던 의문들(지적발달장애를 가진 친구와 소위 ‘찐따’ 친구들을 폭력적으로 대하던 친구들의 행동에 대한 의문들)에 대한 답도, 이 속에 모두 담겨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그 답 역시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하고, 나만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태생적인 이기심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겠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그리고 저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일까요? 장애인들의 인권과 성적 소수자들의 행복, 그리고 부당한 처우에 신음하는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보장하는 사회로 나아가기 위하여 우리는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해답의 실마리가, 그들 역시 우리와 동등한 인간이라는, 아주 기본적이고도 당연한 진리를 깨닫는 것에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습니다. 역지사지. 즉,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는 것. 내가 대접받기를 바라는 그대로 나도 남에게 그렇게 해주는 것이, 진정 이 사회가 좀 더 행복한 무대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지요.
 
 이 당연하고도 소중한 진리를 이제라도 깨닫게 해준 많은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참가자들이 최대한 편한 환경에서 캠프에 참여할 수 있도록 백방으로 수고해주신 스텝분들이 없었다면, 바쁜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먼 길을 달려와 참가자들에게 하나라도 더 주려고 애써주신 강사님들의 열정이 없었다면, 그리고 바쁜 시간을 쪼개어 참가자들을 위해 헌신해주신 공감 변호사님들의 귀중한 노력이 없었다면, 아마 저는 아직도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들에게 무시무시한 폭력을 아무렇지도 않게 행사하며 살아가고 있었을 것입니다. 정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려운 싸움을 계속해나가시는 공감 변호사님들과 많은 인권활동가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며, 이만 글을 줄일까 합니다. 감사합니다.^^

 

 

글_ 이상윤(여름 인권법 캠프 참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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