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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례포럼 후기] 원미혜 소장님의 '성매매, 경계를 두드리는 소수자의 물음들' - 성매매를 논하기 위한 선결조건에 대하여

공감이 하는 일/공익법 교육·중개

by 공감이 2012.07.16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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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가 예전에 블로그에 쓴 글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었다. “나를 가장 두렵게 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삶이 망가질 대로 망가진 후에도 삶을 살아나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전쟁이나 재해, 폭력, 사고, 사랑하는 사람의 잔혹한 죽음과 같이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치는 예외적인 비극 외에, 삶을 그토록 망가뜨릴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상상해보았다. 노력을 통해, 마음가짐을 새롭게 함으로써, 또는 시간이 약이 되어 극복할 수 있는 고통은 배제해야 할 것이다. 이겨낼 수 있는 시련이 죽음보다 두렵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불가항력적으로 외부에서 주어진 고통과 지극히 주관적인 고통, 이 양극단 사이에 있는 무엇이 삶을 견딜 수 없는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 “그/그녀의 인생은 이제 끝났다”고 세상 사람들이 입 모아 말하던 순간이 언제였는지 떠올려보라.
 
내가 여자여서 그런 것일까. 그 구절을 보고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결국 성적 낙인으로 인해 사회적으로 철저하게 추방되는 장면이었다. 성관계 동영상이 유출되었거나, 불륜 사실이 발각되었거나, ‘원정녀’/접대부라는 사실이 알려졌거나, 성폭력 피해자라는 사실이 알려진 후 그 개인은 어떤 세상을 살아가게 되었던가. 그들 앞에 펼쳐지는 것은 부모가 자신을 부여잡은 채 오열하고, 가족이 손가락질받는 것을 바라보고, 자신이 동창회 최고의 안주거리가 되었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회사에서 해고를 당하지 않더라도 화장실의 수군거림이 너무나 따가워 직장을 떠날 수밖에 없고, 아파트 주민을 마주치는 것이 두려워 엘리베이터를 두고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해야 하는 세상이다. 각종 성적 폭력과 같은 실재적인 위협에 노출되는 것은 물론이다. 그동안 삶을 통해 일구어온 자아의 다양한 층위들은 모두 소멸(燒滅)되며, 모든 것이 불타고 남은 자리에는 ‘알고 보니 그런 여자였다’는 사실만이 재처럼 남는다. 심지어 그들의 자살(죽음)에는 우리가 모든 영전에 바치는 합당한 의문도 주어지지 않는다. 그들이 죽음을 선택할 때에 사람들은 안타까움과 동정심을 느낄지언정, 왜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는 질문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미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결국 성적 낙인이 한 개인의 사회적 죽음을 의미하는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다. 사회는 ‘망가질 대로 망가진 삶’을 낙인찍힌 자에게 부과하며 “생(生)에의 형”을 선고한다. 한 개인을 둘러싸고 이처럼 철저한 고립, 무자비한 추방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에 어마어마한 공포를 느끼는 것은 나뿐인가? 한 개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잔인함은 과연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일까? 그들은 무엇을 위하여 고통받는 것일까? 
 
성매매는 합법화와 근절의 이분법적인 도식 내에서 치열하게 논쟁 된다. ‘성 판매 여성’의 존재를 부정하든 긍정하든, 동일한 목표를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첨예한 대립이 지속된다. 월례포럼을 준비하며, 어느 강사님을 섭외할지 고민하는 과정에서도 고민이 있었다. 우리가 어느 강사님을 모시느냐에 따라 성매매에 관한 공감의 ‘입장’을 우회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성매매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은 이처럼 시스템과 제도의 문제라는 틀 내에 배치된다. 아니나 다를까 강연에서도 질의응답 시간에 강사님의 ‘입장’을 묻는 질문이 나왔다.
 
2012년 7월 6일에 열린 공감 월례포럼은 원미혜 서울시 늘푸른여성지원센터 소장님의 ‘성매매, 경계를 두드리는 소수자의 물음들’ 강연으로 진행되었다. 강사님께서는 강의 초반부터 “집결지에 살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에게 주거권이 어떤 의미인가”라는 질문을 던지셨다. 낙인으로 둘러싸인 공간에 ‘중립적인’ 의미의 권리를 들이대는 것이, 그 공간 안의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지닐 수 있는가. 낙인의 효과가 이렇게 강력한데 매매, 노동권, 피해자 등의 개념화가 어떤 차이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인가. 합법화, 근절과 같은 추상적인 논의가 그들의 실제 삶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인가, 라고 강사님께서는 반문하셨다.
 
앞서 이야기했던 낙인, 배제, 부정, 회피, 그리고 추방의 문제는 성과 젠더라는 이중 규범의 기반 위에서 발생한다는 설명이 강연에서 이어졌다. 여성의 경우, 젠더 규범과 성 규범은 동일시되며, 젠더 규범으로부터 일탈적인 행동에는 성적 낙인이 부여된다고 강사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러한 질서로부터 벗어난 여성을 상징하는 의미로 사용되는 것이 ‘창녀’ 낙인이다. 성의 영역을 넘어서 계급, 인종, 등 사회의 뿌리 깊은 차별들과 교차, 연결되어 존재하는 ‘창녀’라는 하나의 원형(prototype)은 실재가 아닌,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작용한다. 성 위계의 가장 하위에 놓이는 ‘창녀’를 끊임없이 부정하고, 그 ‘창녀’와의 거리두기를 통해 우리는 성 질서에서 도태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이렇듯 ‘창녀’는 모든 부정성을 함축하는 하나의 상징이기에, ‘창녀’는 성을 판매한다는 사실 그 자체와 개념적으로 분리된다. 우리는 모두 ‘정숙함’과 같은 ‘주류’ 여성성을 기준으로 짜인 성적 위계 어딘가에 우리 자신을 투영하는 동시에 타인에 의해 배치된다. 그리고 이 성 위계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것은, 자칫 미끄러지면 낙인이 찍혀 사회에서 추방될 수 있다는 구체적인 두려움이다. 앞서 보았듯이, 낙인의 효과는 추상이 아닌 실재이다. 성 위계가 작동하는 방식은 실존적이며, 우리의 일상, 삶 곳곳에서, 사람과 사람이 대면하는 지점에서 체현된다. 그리고 이 공포는 우리가, 특히 여성이라면,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공유하고 공감할 수 있는 것이다. ‘일탈’한 (또는 당한) 자 - ‘성 판매 여성’, 성관계 동영상 유출 피해자, 성폭행 피해자, 불륜 여성 등 – 그리고 그 위계에 순응하는 자들 모두 결국 같은 질서 내에 서 통제받고 있다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 않다. 공통점을 극대화해서 보면, ‘성 판매’라는 행위가 가지는 특수성과 이질성이 상당 부분 탈각 되며, ‘성’에 관해 판이하게 다른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도 합의 가능한 지점이 도출될 수 있다. ‘창녀’라는 메타포, 이데올로기가 압도적인 규정력을 발휘하고 있는 현실이라는, 우리가 공유하고 있는 토대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이념 논쟁’에 매몰되는 것으로부터 구제될 방법이 아닐까.
 
이러한 낙관을 정책, 제도, 그리고 법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오는 것이 가능한가, 라는 의문이 물론 존재할 것이다. 성 판매 여성, 여성 전반의 억압 기제로서의 성 위계와 ‘창녀’ 낙인은 사회에 너무나 광범위하게 작동하며, 우리 개개인의 의식에 너무나 뿌리 깊게 스며들어 있을 뿐 아니라, 장구한 역사를 통해 고착화 된 것이기 때문에 이를 해체, 타파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고 손쉽게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인’ 대안은 즉각적으로, 가시적으로 실현 가능하다는 의미 외에도 ‘실질적인’ 대안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성 판매 여성’에게 찍히는 낙인, 그 낙인으로 인한 철저한 배제와 개인의 황폐화의 문제가 선결조건으로서 다루어지지 않는다면, 성매매를 둘러싼 모든 논의는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
 
‘낙인’은 한 개인 안에 잠자고 있던 세계와 개성, 모든 풍요와 아름다움을 폐허로 만드는 파괴력을 지닌다. 먼지가 피어오르는 폐허 속에는 결국 사회가 가공해낸 ‘창녀’만이 우두커니 남게 된다. 우리는 성 위계와 낙인이 한 개인에게 얼마나 잔혹할 수 있는지, 그 개인의 삶을 어떻게 마비시킬 수 있는지 눈을 뜨고 직시해야 한다. ‘낙인’의 그림자는 우리 모두에게 드리워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성 판매 여성’뿐 아니라 성 위계 속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을 대변해서 외쳐야 한다. 사회에서 배제되지 않고 더불어 살아갈 권리, 다양한 정체성을 인정받을 권리, 존재 자체를 긍정받을 권리는 한 개인이 ‘정숙한지’의 여부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고. 이 사실을 힘주어 외칠 뿐 아니라 우리 삶에서 실천해야 한다. 타인에 대한 사랑과 인정은 결국 모든 사회적 통제와 이데올로기, 관념에 좌우되어선 안 되며, 온전한 개인의 의지와 결단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글_곽은비(15기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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