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군대 내 가혹행위가 원인이 된 자살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외면한 기존의 판례 변경

2012.07.10 22:05공감이 하는 일/공익소송 및 법률지원

 

 

“이 사건에서 선임병 등의 위와 같은 가혹행위는 망인으로 하여금 자살을 결의하게 하는 데 직접적인 동기와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할 것이므로 선임병 등의 위와 같은 가혹행위와 망인의 자살과의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있음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망인의 나이와 성행, 가혹행위의 내용과 정도, 망인을 에워싸고 있는 주위상황, 가혹행위와 자살행위의 시기 및 장소의 근접성, 망인이 자살하기 전에 남긴 유서의 내용과 그로부터 짐작할 수 있는 망인의 정신상태 및 심리상태 등을 종합하여 보면, 망인의 자살은 나약한 성격에 기인한 것이기는 하나 군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그의 자유로운 의지에 따라 행하여진 것이라 할 것이어서 망인의 사망은 법 시행령 제3조의 2 단서 제4호 소정의 자해행위로 인한 사망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위 문단은 사병이 군복무 중 가혹행위로 인해 자살에 이르게 된 사건과 관련된 판결에서 거의 단골로 등장해왔던 표현으로, 국가의 부름을 받고 인생의 가장 귀중한 시간을 군복무를 위해 바치다가 청운의 꿈을 저버리고 꽃다운 나이에 스러져 가야만 했던 청년들에 대해 국가가 남긴 마지막 말이기도 하다.

 

이 무신경하고 냉혹한 표현은 전시도 아닌 평화로운 시대에 적군도 아닌 아군으로부터 온갖 고초를 당하다 창창한 미래를 죽음과 맞바꾼 것 외에 아무런 잘못도 없는 젊은이들에 대해 그동안 국가가 보여준 태도를 대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사병은 징집, 훈련, 복무, 사망 그리고 사망에 대한 수사 과정에 이르기까지 국가에 의한 통제와 관리의 범위를 벗어나는 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국가는 부대 내의 불법적 가혹행위가 원인이 된 자살까지 “나약한 성격” 탓으로 돌리며 책임을 외면해 왔다. 그런데 “나약한 성격”을 운운하는 수많은 판결 중 나약한 성격이란 어떠한 성격을 말하는 것인지, 그리고 나약한 성격이 어떻게 자살의 원인이 될 수 있는지에 관한 논증이나 객관적 근거를 제시한 판결문은 찾아볼 수 없다.

 

2012. 6. 18. 1심과 2심에서 패소하고 상고심 계속 중이던 군 의문사 사건에 대한 선고기일이 잡혀 있었다. 고등법원에서 승소한 사건도 대법원에서 파기환송 당한 쓰라린 경험이 있었던 터라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원심 판결이 파기되었고, 종전의 판례도 변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약간 비현실적인 기분이 들기도 했다. 위 대법원 판결은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그 자살이 자유로운 의지에 따른 것이면 구 국가유공자법 제6항 제4호의 ‘자해행위로 인한 사망’에 해당하여 국가유공자에서 제외된다거나 또는 심신상실 또는 정신착란 상태에 빠져 삶을 포기할 정도에 이른 상태에서의 자살이 아닌 한 국가유공자 적용대상에서 제외된다는 취지의 대법원 2004. 3. 12. 선고 2003두2205 [...] 판결 등은 이 판결의 견해에 배치되는 범위 안에서 모두 변경하기로 한다.”면서 그동안 정신착란 상태에서의 자살에 대한 입증을 요구했던 종전의 판례를 변경하였다. 드디어 통념이 상식에 자리를 내주는 순간이었다.

 

자해행위로 인한 사망이란 “자유로운 의사에 기한 사망”을 의미하고 따라서 자살이 정신착란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이어야 “자해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본 종전의 판례는 자살의 심리학적 원인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자유로운 의사”라는 정체불명의 개념을 끌어들이고, 유족에게 망자의 자살이 이성적 판단능력이 전혀 남아 있지 않은 정신착란상태에서 이루어졌음을 입증하라는 불가능한 과제를 안겨줌으로써, 결국 법원에 의한 자의적 판단의 여지만을 남기는 결과를 초래했었다.

 

판결문을 보면서 사람을 놓고 쥐락펴락하는 대법원의 하늘 같음을 처음으로 실감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시선에 따뜻함이 있어, 전원합의체판결을 받는 느낌이란 그다지 나쁘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특히 전수안 대법관의 보충의견은 그동안 하고 싶었던 말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어 인용해보기로 한다.

 

“그러나 위 규정이 자해행위를 ‘자유로운 의지에 의한 자해행위’라고 정의하고 있지 않을 뿐 아니라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자살은 모두 어느 정도 자신의 자유로운 의지에 따른 것이면서 그와 동시에 완전한 의미의 자유의지, 즉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인식과 판단 아래 이루어지는 행위가 아니라는 점에서 타당하지 않다. 정신착란이나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의 자해행위로 인한 사망을 자살이라고 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요컨대, 어느 자살이 ‘자유로운 의지에 의한 자해행위’인지 아닌지에 따라 국가유공자 해당 여부를 달리 보는 것은 법률에 근거가 없는 해석일 뿐만 아니라 그 기준이 모호하고 추상적이어서 구체적 적용 준칙이 될 수 없고, 우울증으로 인한 심신상실 내지 정신착란 등 상태에서의 자살만을 자해행위로 인한 자살이 아니라고 보는 것도 사실상 거의 모든 자살에 의한 사망을 국가유공자에서 배제하는 해석이어서 부당하다. [...]

군인이 선임병 등으로부터 가혹행위를 당하거나 직무상 스트레스나 과로를 견디다 못해 자살하기도 하고 군대라는 특수한 여건 때문에 우울증 등 정신질환을 앓거나 스스로 극복하기 어려운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으면서도 이를 호소하거나 적절히 진단받고 치료받을 기회를 갖지 못한 채 자살하기도 하는 일이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한, 이러한 현실을 외면하여서는 안 된다. 군대 내 자살에 대하여도, 일반 사회에서의 자살과 마찬가지로, 그것을 자살자 개인의 의지박약이나 나약함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성숙한 사회의 모습이 아니며, 유가족에 대한 적절한 위로와 보상 또한 국가의 책무다.“
 

 

  글_박영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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