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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고네와 미셸 카투이라 그리고 이주노조 이야기

공감이 하는 일/자원활동가 이야기

by 비회원 2012.07.04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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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등법원은 미셸 이주노조 전 위원장에 대한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의 비자 취소와 출국명령 처분에 관한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습니다.

 

미셸 전 위원장은 사용자가 임금을 체불하였기 때문에 사업장 변경을 신청했고, 이전한 사업장은 일거리가 부족하여 휴업상태에 이르렀습니다. 이를 빌미로 서울출입국관리소는 미셸 전 위원장이 이주노동자로서 근로활동에 종사하지 않는다며 비자를 취소하고 출국명령 처분을 하였습니다. 미셸 전 위원장은 출입국관리소의 처분이 부당하다며 소를 제기했고 2011915일 서울행정법원은 비자 취소 및 출국명령 처분이 부당하다고 판결했습니다. 하지만 2012524일 서울고등법원은 1심을 뒤집고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의 주장을 받아들여 비자 취소 및 출국명령이 적법하다고 하였습니다.

 

 

 

 

앞서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는 허위 사업장 변경을 이유로 미셸 전 위원장에 대한 출국명령 처분이 적법하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에 대한 서울행정법원 판결의 내용대로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는 이주노조 위원장이기 때문에 미셸 전 위원장의 비자를 취소하고 출국명령을한 것이 분명합니다.

 

한편 이주노조는 2005년 노조설립을 신고했습니다. 그러나 고용노동부(당시 노동부)는 설립 신고를 반려했습니다. 고용노동부는 조합원 대부분이 체류자격이 없는 미등록이주노동자이기 때문에 반려했다고 했습니다. 이에 이주노조는 설립신고 반려 처분에 대한 취소의 소를 제기하였고 항소심인 서울고등법원에서는 이주노조의 손을 들어주었지만,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이 상고하여 대법원 판결이 54개월째 지연되고 있습니다.

 

판결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해당 행정처분의 효력이 유지됩니다. 이주노조가 법적으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대법원이 이주노조의 손을 들어줄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노조 설립은 신고제로 이루어지고 있으나, 이주노조 설립 신고는 고용노동부가 이주노조 설립 신고를 반려하고 본 사건의 대법원 판결 지연으로 표류하고 있습니다.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이주노동자 차별철폐와 인권·노동권 실현 공동행동(약칭 이주공동행동), 다함께 그리고 엠네스티 등 인권단체가 줄지어 201267일 대법원 앞에서 규탄시위를 열었습니다. 이주노동자의 기본 노동 인권을 보장하고자 대법원 판결 태도를 규탄하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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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조에 관한 대법원 판결이나 미셸 전 위원장에 대한 판결은 근본적으로 이주노동자에 대한 노동3(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 보장에 관한 것입니다.

 

헌법과 국제조약을 살펴볼 때 이주노동자에 관한 노동3권 보장은 당연한 것입니다. 명분은 다르겠지만 법 집행은 그들이 피부색이 다르고 국적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하고 있습니다.

 

이주노동자는 소수자지만 동정의 객체가 아닙니다. 이주노동자는 노동자로서 정당한 권리를 보장받아야 할 주체이며 노동자로서 동등한 노동3권을 지닌 주체입니다.

 

하지만 이주노동자는 가난한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로 이유 없는 욕설과 폭언을 당하기도 합니다. 한국인의 일자리를 빼앗는 악의 축으로 오인되고 있고 이주민의 특정 살인 사건을 빌미로 이주노동자 전체를 범죄 집단과 불순한 존재로 매도하기도 합니다. 발톱만 보고 새를 보았다 할 수 없는 것처럼 특정사례와 왜곡된 인식이 그들 전체를 차별할 정당한 근거가 되질 않습니다.

 

근대 일본은 관동대지진으로 공황에 빠졌습니다. 일본은 대지진의 공포를 이주노동자인 한인에게 분풀이하여 무고하게 죽였습니다.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은 유대인이 유대인이기 때문에 악이고 그래서 죽여야 한다며 유대인을 학살했습니다. 물론 극단적인 두 사례는 민족적 배타주의와 증오가 비극의 결정적인 원인이었고 이주노동자에 대한 현실과는 많이 다릅니다. 다만 이주노동자에게 대하는 배타적인 태도는 이와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요? 배타성에 기인한 차별은 동등한 대상을 상하의 관계로 또는 투쟁의 관계로 왜곡합니다.

 

 

 

 

물론 문화적 차이로 동화될 수 없는 부분도 있을 겁니다. 이주노동자와 태어난 환경이 다르고 모국어가 다르고 피부색이 다릅니다. 우리가 더 나은 환경에서 살고자 노력하듯 이주노동자도 더 나은 삶을 살고자 모국을 떠나 한국에 왔습니다.

 

이주노동자를 유입한 것은 정부의 계획이었습니다. 표면적인 취지와 목적은 다르겠지만 현실적으로 내국인이 기피하는 고단하고 위험한 일을 저임금으로 수용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그래서 이주노동자는 일자리를 빼앗는 파렴치한이 아닙니다.

 

르네 지라르는 폭력과 성스러움에서 모든 폭력은 차이를 무너뜨리는 걸 막으려고 생긴다고 했습니다. 미셸 전 위원장에 관한 판결과 이주노조에 대한 대법원 판결 지연은 이주노동자에 대한 편견에 기인한 것이고 편견에 의한 차이가 무너지는 걸 공권력은 용납하지 않은 결과입니다.

 

고대 희랍극 오이디푸스에서 안티고네는 권력자인 크레온의 명령에 저항합니다. 안티고네의 명분은 법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아버지를 안타깝게 여기는 인간의 마음이었습니다. 미셸 전 위원장과 이주노조가 법의 준엄한 판결 앞에 굴하지 않는 이유는 헌법에 근거한 양심이고 이주노동자에 대한 연대의 책무의식 때문입니다. 이주노동자에게도 노동자와 동등한 노동3권은 반드시 보장되어야 합니다.

 

이주노조는 이주노동자의 노동3권 보장과 이주노조의 설립을 위해 법원의 판결지연과 부당한 판결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계속 투쟁을 이어나갈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법원의 준엄하고 정당한 판결을 기다립니다.

 

글_한진수(15기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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