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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변의 변] 로잘린은 인신매매 피해자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 차혜령 변호사

공감의 목소리/공변의 변

by 공감이 2012. 6. 15.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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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마닐라 근교 출신의 로잘린은 작은 밴드의 리드보컬로 일했다. 지역 행사에서 공연도 종종 하였다. 마닐라에 있는 기획사 매니저에게서 한국에서 가수로 일해 보자는 제안을 받게 된 로잘린은, 매니저의 소개로 한국 기획사의 사장님도 만나고, 오디션에도 합격한다. 로잘린은 자신이 노래하는 영상을 한국의 영상물등급위원회에 제출해서 심사를 받아 예술흥행(E-6)비자 발급에 필요한 ‘공연 추천’도 받는다. 필리핀의 한국대사관에서 비자를 받은 로잘린은 드디어 한국 땅을 밟는다. 필리핀과 한국의 기획사(프로모터)는 로잘린이 공연 추천을 받고 비자를 받을 수 있도록 절차를 진행해 준다.


공감 사무실을 찾게 되는 로잘린들의 이야기는 대체로 이렇게 시작된다. 하지만 한국에서 가수로 일하여 자기 실력으로 돈을 벌고 고향에 있는 가족들도 부양하겠다는 로잘린들의 꿈은 한국 공항에 입국하자마자, 아니면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서 깨어진다. 한국 기획사 사장님이나 매니저는 로잘린을 외국인 전용 클럽으로 데리고 간다. 필리핀에서 공연계약을 할 때 하루 몇 번, 한 번에 몇 분, 휴식시간은 몇 분 하는 식으로 공연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클럽에서 로잘린은 여권을 압수당하고 자기 이름으로 개설한 통장도 압수당한다. 클럽의 사장님이나 ‘마미’나 ‘언니’는 로잘린에게 클럽 밖에서 손님들을 기다리라, 손님들에게 주스를 사 달라고 하라, 손님들과 다트 게임을 같이 하라, 당구를 치라고 한다. 예술흥행비자는 공연 목적으로만 발급되는 것이어서 로잘린에게 ‘손님들의 유흥을 돋우는’ 유흥접객원의 업무를 시키는 것 자체가 이미 불법이다.
 
사장님의 지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로잘린은 마이크도 잡아 보지 못한 채, 봉댄스를 추거나 따로 돈을 낸 손님들 무릎 위에 앉아서 랩댄스를 추어야 한다. 클럽 안에서 ‘핸드잡(hand job)', '블로잡(blow job)'과 같은 유사성교행위를 강요당한다. 더 많은 돈을 낸 손님들과는 런치데이트, 바파인이라는 이름으로 업소 밖으로 나가서 성교행위도 해야 한다. 불특정다수인을 상대로 대가 교환되는 성교행위, 유사성교행위 모두 한국에서는 형사처벌되는 성매매이다.


로잘린이 사장님의 지시를 거부할 수 있을까? 클럽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매주, 매월 팔아야 하는 주스 잔수가 정해져 있고(주스 할당제), 손님들에게 주스만 사 달라고 해서는 결코 할당량을 채울 수 없다. 주스 이삼십 잔과 맞먹는 바파인이나 런치데이트를 나가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주스 할당량을 채우지 못하면 매일 자유시간을 가질 수 없고, 자유시간이 허용되지 않는 사람이 외출하면 얼마, 지각하면 얼마, 소파에서 잠자다가 걸리면 얼마, 취하면 얼마 하는 식으로 정해진 벌금제도 있다. 숙소에는 ’오빠‘나 ’삼촌‘이 상주한다. 그리고 이 클럽이 있는 곳이 한국 땅의 어디에 붙은 지역인지 알 수 없다. 나가면 한국말도 통하지 않고, 여권도, 돈도 없다.
 
우리는 로잘린이 인신매매되었다고 생각한다. 착취를 목적으로, 속아서, 한국으로 이동되었기 때문에 UN 팔레르모 의정서의 '인신매매‘ 정의에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또 로잘린이 필리핀에서 한국에 와서 겪는 모든 일들이 한국의 현행법으로 처벌되는 범죄로 구성될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우리는 성매매 목적의 인신매매를 처벌하는 법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성매매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은 ‘성을 파는 행위나 음란행위를 하게 할 목적으로, 위계나 위력을 사용하여, 대상자를 지배․관리하면서 사람을 제3자에게 인계하거나 모집, 이동시키는 행위’를 성매매 목적의 인신매매로 정의하고 형사처벌하도록 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지금까지 단 한 건의 사건도 인신매매 죄명의 기소로 성공시키지 못했다. 며칠 전 또 한 명의 로잘린을 만나 고소장을 제출하면서 자문한다. 한국의 수사기관에서 로잘린은 인신매매 피해자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글_차혜령 변호사

 공감  에세이집 '우리는 희망을 변론한다' 출간 - 박원순 시장신경숙 작가 추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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