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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례포럼 후기] '퀴어의 눈으로 본 공감' 세미나

공감이 하는 일/공익법 교육·중개

by 공감이 2012.06.08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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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 타자화되어 지워지는 존재


공감 인턴에 합격한 후 공감과의 첫 만남이었던 오리엔테이션의 하루가 문득 떠오른다. 그때의 공감은 어땠을까. 그날의 기억을 곰곰이 곱씹어보았다. 공감이 활동하는 각 분야를 설명하는 변호사님들의 프레젠테이션에는 소수자와 약자가 겪는 억울한 이야기들이 담겨있었지만, 그것들은 대부분 ‘그들’의 이야기로 마무리되곤 했다. ‘그들’은 인권을 침해받고 있다, ‘그들’의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 등등의 이야기들. 공식 프로그램이 끝나고 술자리로 이어진 인턴들 간의 대화, 또는 인턴과 변호사님들과의 대화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그들’이라는 단어를 아무렇지 않게 사용함으로써, 여기에 모여 앉아있는 우리 중에는 억울한 일을 겪는 당사자가 없을 거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확인하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물론 여러 종류의 당사자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중심에는 성소수자, 즉 *퀴어 가 커다랗게 자리 잡고 있다. 공감은 성소수자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여러 활동들을 펼쳐오고 있지만, 공감 내에서 근무하던 중의 사소한 잡담이나, 함께 점심을 먹을 때 오가는 대화, 인턴끼리 모인 엠티 자리에서는 어떤가. 사실은 이것이 진짜 우리의 삶이고 일상이지 않은가. 퀴어는 오로지 ‘인권운동’의 측면에서 가시화되는 존재이지, ‘일상적으로’는 철저히 비가시화된다. 우리는 모두를 이성애자로 전제한 채 이성애 중심주의로 점철된 연애와 결혼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이에 더해 여자에게 남자친구 있느냐는 말, 남자에게 여자친구 있느냐는 말이 인간관계를 맺는 데 있어서 필수 질문이 되었다. 우리는 한순간 당연히 이성애자가 되고, 동시에 성소수자는 사무실 밖 멀리 떨어진 곳으로 도망가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육체적 폭력이나 정신적 폭력 등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폭력의 정의는 존재가 가시화된 후 행해지는 폭력이다. 그러나 그 이전에 존재 자체가 아예 지워진다는 것, 이것은 퀴어만이 겪는 일생동안의 폭력이기도 하다.

 

인턴 활동을 시작한 지 2개월 남짓 흘렀을 때, 나는 이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공감의 5월 월례포럼이 “다양한 사랑, 다양한 가족, 다양한 존재”의 타이틀을 달고 시작되었다. 공감은 퀴어가 가시화될 수 있는 공간으로 변모하기 위한 첫 발걸음을 떼고 있다. 공감은 퀴어링(queering)을 이제 막 시작했다.


*퀴어: 본래 기이하고 이상하다는 뜻의 단어인 퀴어는 성소수자를 칭하는 또 다른 말로, 이성애라는 견고한 틀에서 벗어나 자신들이 일반적이지 않고 독특하다는 것을 당당하게 드러내자는 전복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공감, 퀴어링(queering)을 시작하다


개인적으로 5월 월례포럼의 프로그램들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프로그램은 첫 번째 순서로 진행되었던 <퀴어의 눈으로 본 공감>이라는 세미나였다. 이전에 이미 공감을 경험했던 OB 인턴들, 그리고 공감을 현재진행형으로 겪고 있는 YB 인턴들과 구성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공감 내 이성애중심주의, 성역할에 대한 강요, 연애지상주의에 대해 진솔하게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놀랍게도 적지 않은 이들이 그 자리에서 자신이 이성애자가 아님을 커밍아웃했고, 그간 견고한 이성애중심주의로 인해 상처받았던 경험들을 털어놓았다.

 

그 중에는 공감 인턴 지원서에 커밍아웃하며 인턴 활동을 시작한 사람도 있었고, 그날 처음으로 자신의 성적 지향을 밝힌 사람도 있었으며, 자신의 성적 지향이 무엇인지 계속 고민하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또한, 공감이었기 때문에 기대가 컸고, 그만큼 실망도 크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소수자인권 보장을 위해 활동하는 공감인데, 왜 정작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성소수자의 존재를 암묵적으로 지워내는데 일조하고 있었던 것일까. 왜 이런 자리를 애써 만들고 난 후에야 퀴어가 처음으로 마음 편히 자신들의 이야기를 할 수 있었던 것일까.

 

모두가 말을 꺼내는 데 서툴렀으며 말하는 동안에도 침을 한 번씩 삼켜야 할 만큼 긴장했지만, 그것은 오히려 가슴 떨리는 벅참으로 다가왔다. 세미나가 두 시간가량 진행되는 동안 누군가는 자신이 퀴어 당사자로서 지금 바로 여기 평범하게 존재하고 있음을 알렸고, 누군가는 자신이 이성애중심주의적 환경을 만드는 데 한몫을 했다는 사실을 돌아보며 얼굴을 붉히기도 했다. 그렇게 어색한 기류가 흐르던 세미나실은 어느새 각자마다 듬성듬성 지니고 있던 상처를 조금씩 회복하는 자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성애자여, 커밍아웃하라!


세미나 중 몇몇 사람들이 왜 아무도 자신에게 커밍아웃하지 않는지 의문이라며 사소한 불만을 털어놓았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은 아직 자신에게 커밍아웃한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그 사실 자체가 일종의 부끄러움이라고 고백하기도 했다. 여기서 잠깐 멈추어 질문을 던져보자. 그렇다면 왜 퀴어만 커밍아웃해야 하는가? 커밍아웃이라는 행위는 왜 이성애자에게 적용되지 않는가? 스스로를 퀴어프렌들리하다고 자부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퀴어가 자신에게 직접 다가와 커밍아웃하길 바라고, 자신은 비밀을 지킬 수 있을 거라는 다짐을 하며 혼자서 이것저것 이해할 채비를 한다. 그리고서 실제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저 퀴어가 먼저 다가오기를 기다릴 뿐이다. 나는 이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또 다른 기만’이 아닐까 고민하게 되었다. 정말로 이성애와 동성애가 평등하다는 생각을 한다면, 이성애자 또한 자신의 성적 지향을 커밍아웃해야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사실 이성애자야!”라고 말하는 사람은 왜 아무도 없는 걸까?

 

퀴어가 ‘먼저’ 커밍아웃해야 한다는 사실, 퀴어‘만’이 커밍아웃해야 한다는 사실은 이성애가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성애임을 재생산하는 기제로 작용할 여지가 다분하다. 킨제이 보고서에 따르면, 세상에는 이성애와 동성애 말고도 그 사이에 수많은 성적 지향이 스펙트럼으로서 존재한다고 한다. 자신의 성적 지향을 탐색해보는 시간을 충분히 거쳤다면, 자신의 성적 지향이나 성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은 어쩌면 우리 모두에게 지워진 권리이자 역할일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만국의 이성애자여, 커밍아웃하라!

글_ 엄윤정 (15기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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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영역

  • 프로필 사진
    2012.06.08 17:43
    많은 인권의 담론들이, 모두가 '당연하다', '그게 뭐 어때서'라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 '왜'라는 의문을 던짐으로써 시작되었듯, 많은 사람들이 - 의식적이건 아니건, 악의적이건 아니건 간에 - 이성애 중심주의적 사고를 가지고 퀴어들을 타자화하는 것을 고쳐나가는 것이야말로 진정 그 인권을 위한 첫 걸음 아닌가 합니다. 공감이 그러한 멋진 단체가 되었으면 하고, 또한 무엇보다도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라는 사람도 그러한 사람이 되길 간절히 바라고 또 노력하겠습니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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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6.08 21:53
    글 좋네요. 생각이 많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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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6.09 10:28
    좋은 글 잘 봤습니다!! 이성애자여 커밍아웃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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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6.11 00:10
    잘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