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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와 ‘익숙한 거부’의 쳇바퀴에서 - <장애인보험차별 개선을 위한 정책 토론회>를 다녀와서

공감이 하는 일/자원활동가 이야기

by 비회원 2012.06.08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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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실로 쓰이는 큰 강당이 있었다. 몇 해 전, 장애인이 수업을 듣는데 불편이 최대한 없도록 개보수를 마쳤다. 장애인을 위한 시설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던 기존의 열악한 환경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어느 날 특강을 위해 방문한 한 장애인 연사가 시설을 둘러보고 대뜸 화를 냈다는 것이다. 모두들 갸우뚱했다. 장애인을 위한 승강기도 갖추고, 휠체어 등이 들어갈 수 있는 책상도 전용으로 갖추었는데 무엇이 문제였을까?

 

강당의 연단에는 경사로가 없었다. 그래서 다른 곳보다 더 높게 만들어진 연단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무조건 ‘계단’을 올라가야 했다. 강연을 하기 위해서 연사가 거쳐야 할 필수적인 그 과정에서, 장애인을 배려하는 시설은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장애인을 ‘강의를 듣고 보는 사람’으로 생각했을 뿐, ‘강의를 하는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너무나 당연하게 내재되어 있던 생각을 전제로 하여 사람들은 강당을 설계하고 보수한 것이었다.

 

위의 사건은 우리 내면의 ‘차별적 발상’에 기반을 둔 것이었고, 한 장애인 연사의 지적은 이러한 발상을 우리의 내면으로부터 ‘밖’으로 나오게 해 주었다. 이것이 바로 ‘차별의 발견’이다. 인권에 대한 생각이 사회 전반으로 퍼져 나가면서, 상대적으로 소수의 지위에 있던 사람들이 자신의 권리를 보호받고 이를 실현하기 위하여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 목소리들로 인해, 사회 곳곳에서 ‘사회 통념’의 탈을 쓰고 숨어있던 차별들이 하나하나 ‘발견’되어가기 시작했다. 이번 토론회의 주제가 된 ‘장애인 보험 가입 과정에서의 차별’ 역시 이러한 흐름에서 나타난, ‘발견된 차별’의 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타당한 근거 없이 막연하게 장애인의 건강이 좋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편견에 기초를 둔 고정관념은, 장애인을 피보험자로 한 보험사기 사건들 - 가령 장애인을 피보험자로 하여 보험에 가입한 뒤 장애인에게 해를 가하는 것 -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더욱더 힘을 얻게 되었다. 보험과 관련되어 장애인이 맞닥뜨리는 위험들로부터 ‘장애인을 보호하기 위하여’, 심신상실, 심신박약자를 피보험자로 하는 보험계약을 무효로 하는 상법 조항이 생겨났다. 장애인을 보호하기 위한 이 조항 ‘덕분에’, 자폐증 등을 가진 장애아동이 타당한 이유 없이 의료비보장보험을 거절당하고, 지적장애인이 종합보험의 가입을 신청하였으나 개별적, 구체적 검토 없이 거부당하고, 정신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심사 과정이나 거부 사유 없이 우체국에서 상해보험 가입을 거부당했다. 심지어 불면증으로 3년 전에 병원을 단 한 번 방문하였음에도, 이를 이유로 보험 가입을 거부당한 사례도, 10대 초반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를 가진 자가 어린이 보험 가입을 거부당한 사례도 있다.

 

장애인과 관련된 사회 전반의 ‘고정관념’ 외에, 이러한 차별이 아직도 상당하게 이루어지는 이유가 무엇인가에 대해 토론회에서는 많은 것이 제시되었다. 가장 비중 있게 지적된 것이, 장애인의 보험 가입 허용 여부를 가리기 위한 기준(‘보험인수기준’)을 위해서는 오랜 기간의 조사 결과가 필요한데 우리나라에는 그것이 미비하다는 점이었다. 이와 관련하여 질의응답 시간에 외국에서 보험의학을 공부하고 온 방청자와 패널 간에 토론이 이루어질 정도였다. 하지만 토론의 양측 모두, 보험인수기준으로 외국의 오랜 축적 자료를 기반으로 한 데이터를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인정했다. 그렇다면, 보험 분야에서 장애인 차별이 공공연하게 이루어지는 ‘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공감의 염형국 변호사는 장애인 차별과 관련한 제도들에 대해 발표를 하고 난 뒤, 이러한 제도들은 ‘보호를 가장한 배제’의 기능을 한다고 지적했다. 장애인은 약하니까, 장애인은 능력이 제한되어 있으니까, 장애인은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된다는 식의 여러 규정들은, 결국 장애인들의 여러 요청에 대해서 사회가 너무나도 당연하게 이를 거부하는 근거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거부가 만연해지면, 어느덧 거부하는 자, 거부당하는 자 모두 이를 ‘익숙한 거부’로 인식한다. ‘나는 장애인이니까 안 될거야.’라는 생각을 디딤돌로 해서 등장하는 ‘익숙한 거부’는 장애인을 자연스럽게 체념하게 한다. 자연스러운 체념은 소위 ‘보호’를 기반으로 하는 제도에 문제 제기를 하지 못하게 하고, 오히려 순응을 하게 한다. 이 과정에서 ‘보호’의 얼굴을 띈 배제는 다시 한 번 굳건해진다.

 

이러한 ‘반복’이 장애인의 보험 가입 분야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장애인을 보험에 가입시키지 않는 것이 ‘차별’이라는 점이 1999년경에 비로소 ‘발견’되었고, 이후 여러 장애인들과 활동가들의 싸움 덕분에 장애인의 보험 가입이 기존보다 쉽게 이루어지도록 ‘진보’하였지만, 아직 만족스럽지는 못하다. 불합리한 차별이 ‘제도적 개선’을 통해서 봉쇄되기보다는, 차별을 당한 사람이 국가기관에 진정하는 방식과 같은 ‘개별적 방법’으로 사안마다 해결하는 방식이 더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마치 고정된 경사로가 아니라, 필요할 때마다, 요청할 때마다 급히 설치해주는 임시 경사로를 통해 장애인의 이동을 보장하는 것처럼. 그리고 이러한 ‘더 복잡하고 어려운’ 과정에서, 차별을 하는 자, 차별을 당하는 자 모두 ‘장애인을 보호한다.’는 미명 하에, 이러한 ‘보호’와 ‘익숙한 거부’의 굴레를 제대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다람쥐가 쳇바퀴 속에서 한없이 뛰어가듯, 사회 구성원 모두가 ‘보호’와 ‘익숙한 거부’의 쳇바퀴 안에서 그저 돌고 있는 것이다.

 

토론회를 참관하며, 장애인 보험 가입 차별에 대한 해결을 위해서는 아직 먼 여정을 거쳐야 한다는 점이 다시 한 번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그리고 차별에 대한 우리의 현실이 상징적으로 드러나는, 연단과 임시 경사로의 강한 색의 대비를 보며, 몇 년 전 학교에서 마주한 씁쓸함을 계속 마음에 둘 수밖에 없었다. 사회 어느 분야에서든, ‘보호’와 ‘익숙한 거부’의 쳇바퀴는 아직 깨지지 않고 있다.

- 김구열(15기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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