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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사람들의 사회 - 염형국 변호사와 함께한 <장애인권> 세미나 후기

공감이 하는 일/자원활동가 이야기

by 비회원 2012. 3. 27. 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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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의 15기 인턴이 되었다. 첫 만남인 오리엔테이션에 모인 열다섯 명의 새로운 인턴들은 저마다의 관심사와 삶의 기록을 가지고 반짝이는 눈동자들을 하고선 인사를 나눴다. 인권, 공익, 정의 등 울림만으로 마음을 벅차오르게 하는 단어들이 발음되었다. 시작도 전에 이 세상 모든 약자 편에 서는 사람이 되겠다는 주제 넘은 다짐마저 들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피곤함도 잊은 채 설거지를 하고 있는 엄마 옆에 서서 조잘조잘 오리엔테이션에서의 이야기들을 풀어놓았다. “근데 엄마, 나는 장애인권을 담당하시는 변호사님 팀이 됐어. 걱정이야. 솔직히 장애인에 대해서는 제대로 고민해 본 적이 없잖아. 노동이나 여성인권은 나랑 관련된 것이기도 하지만, 장애는 나랑 너무 먼....” 철없이 조잘대던 딸에게  엄마는 설거지하던 손을 멈추며 말했다. “온수동 언니 있잖아, 얘는.”

 

# 무관심

온수동 언니, 둘째 이모의 딸이자 나의 사촌 언니인 그녀는 지적 장애인이다. 동네 산부인과의 실수로 거꾸로 들어선 태아에 대해 자연분만을 시도하다가 오랫동안 산소가 공급되지 못했던 것이 원인이었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말 그대로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당황함과 동시에 부끄러움이 밀려들었다. 당장 내 권리와 관련되지 않은 문제에 대해서는 가족에게도 이렇게나 무심한 내가, 다른 소외당하는 사람들의 인권과 공익을 생각한다고? 한동안의 충격이 지나가자 슬며시 장애인권문제에 대한 중요한 무언가를 깨달은 것도 같았다. 하지만 여전히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그러던 중 3월의 작은 세미나 일정이 발표되었고 나는 염형국 변호사의 <장애인권> 작은 세미나 날짜에 별표를 쳤다. 세미나에서 나는 아프고 싶었다. 장애인에 대한 소외와 차별, 그리고 장애를 인식하는 다수의 무지에 대해 나 스스로를 대표로 앞세워 따끔한 비판을 듣고 싶었다. 하지만 너무나도 선한 얼굴에 온화한 목소리를 가진 염 변호사님의 작은 세미나는 시각장애인에 대한 최근의 한 판례를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지난 2월 15일, 대전지법 민사3단독 판사는 동반한 보호자가 없다는 이유로 목욕탕 입장을 거부당한 시각장애인 김 모(46)씨가 A 목욕탕 업주 김 모 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2011가소122610)에서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다.

 

시각장애 1급의 전맹(全盲) 상태인 김씨는 공중목욕탕에 갔다가 그를 보조해 줄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목욕탕 이용을 거부당했다. 이에 대해 김씨는 이러한 목욕탕업주의 거부행위가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차별금지 위반이라고 주장하며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한 것이다. 그러나 법원은 “공익적 성격이 있는 장애인 보호에 따른 부담이나 비용을 사인(私人)에게 전가시킬 근거를 찾기 힘들고 이는 부당히 과도한 부담이며 현저히 곤란한 사정이기 때문에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장애인에 대한 다수의 차별적이고 편협한 인식을 꼬집어 비판받기를 기다리고 있던 내게, 사회적인 인식 수준을 대변하는 법원 스스로의 장애인 차별적 판단은 오히려 기운을 쭉 빠지게 만들고 말았다. 장애인을 ‘사고 날 위험이 있는’ 잠재적 위험군으로 판단하고 장애인은 ‘장애인을 위한 시설을 이용’해야 하며, 그것도 아니면 ‘정부보조 활동 보조인을 이용하라’는 법원의 태도는 애초부터 장애인을 비장애인과 동등한 사회 구성원으로 보지 않음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4조는 금지되는 차별행위의 종류로 1) 직접차별 2) 간접차별 3) 정당한 편의제공 거부 4) 광고에 의한 차별 5) 장애인 관련자에 대한 차별 6) 보조견 또는 장애인보조기구의 정당한 사용을 방해하는 행위 등을 들고 있다. 이 중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차별, 배제해서는 안 된다는 직접차별금지에 대한 고려는 비교적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지만,  나머지 차별사유에 대해서는 사회적 인식이 미비하고 이에 대한 선례가 부족한 실정이라고 한다. 이번 공중목욕탕 사건 역시, 장애인에게 비장애인과 동등한 편의를 제공하여야 하는 것은 국가나 지자체뿐만 아니라 개인에게도 해당되는 의무인데도 법원은 의무의 주체를 공적 기관으로만 한정 해석하여 개인에게 부담을 지울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 불편한, 사람들

이렇듯 법원이 나서서 목욕탕 주의 ‘과도하고 불필요한 부담’을 옹호하고 나선 마당에, 그 시각장애인이 원했던 것은 사실 무슨 대단한 요구도 아니었다. 공중목욕탕에서 목욕을 하는 것. 비장애인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소비자의 권리가 그에게는 소송을 걸었어야만 할 정도로 쉽지 않았다. 이처럼 그저 모두와 동등한 정도의 삶을 누리고 싶을 뿐인 장애인들에게 사회는 여러 가지 이유를 대 가며 그들을 배제시킨다. 사회는, 목욕탕을 이용하는 것이나 혹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장애인들에게는 너무 위험한 일이라고 말한다. 장애인 본인의 의지나 능력은 고려되지 않거나 당연하게 평가절하된다. 그런가 하면 휠체어를 위한 경사로나 전용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는 것, 문턱을 없애는 것 등 장애인의 편의는 ‘경제논리’를 내세워 외면한다.

 

그러나 장애인들이 원하는 것은 그저 보통사람만큼의 자유로운 삶을 사는 것이고, 장애인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엘리베이터나 경사로 등은 실제적으로는 비장애인들의 편의를 위해서 수적으로나 빈도수로나 더 많이 이용되고 있다. 비효율을 앞세운 경제논리도 결국 핑계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장애인들이 배제되는 이유에 대해 염형국 변호사는 “사회가 장애인을 동등한 사회구성원으로 대하는 데 필요적으로 수반되는 약간의 ‘불편함’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있지도, 원하지도 않는다”고 말한다.

 

여기에 장애 인권 문제에 있어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중요한 관점 하나가 있다. 그들을 정말로 ‘장애’인으로 만드는 것은 그들을 ‘불편해하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장애를 개인적 손상 문제로만 치부하고, 따라서 사회적 노력의 계기로 고려하려 하지 않기에 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장벽은 높아져만 간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은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다면 얼마든지 자유롭게 그 장소에 접근할 수 있다. 그의 행동을 제약하는 것은 그의 불편한 다리보다, 2층 정도는 걸어 다니라며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리지 않게 만들어 놓는 사회의 보이지 않는 장벽이다.

 

# 불편을 넘어선 불안

한편, 장애인 중에서도 사회적으로 가장 소외되고 있는 장애인이 있다. 바로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는 정신 장애인들이다. 장애인이라는 ‘불편함’에 정신질환이라는 ‘불안함(공포)’이 더해져 그들을 더욱 구석으로 몰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세미나에서 염 변호사님이 인턴들에게 ‘만약 옆집에 정신 분열자가 살고 있다는 말을 들으면 어떨 거 같아요?’ 라고 질문했을 때, 누구도 선뜻 아무렇지 않을 것이라고 쉽게 말하지 못했다. 오직 한때 우울증을 심하게 경험한 적이 있다는 한 인턴만이 조심스럽게 정신질환자에 대한 우리의 편협함을 짚어 내었다.

 

정신 장애인에 대한 가장 큰 문제는 그들에 대한 낙인과 부정적인 편견이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너무나도 크다는 데 있다. 각종 미디어는 몇 몇 범죄자의 정신질환을 부각시켜 정신 장애인에 대한 공포와 불안을 확대, 재생산해 낸다. 그러나 사실 정신 장애인에 의한 범죄율은 그렇게 높은 편이 아니라고 한다. 발생할 때마다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빚는 반 사회적 인격장애자나 소아성도착증 환자는 정신과 치료가 필요하기는 하지만 정신 장애인에 해당하지 않는다. 지적 장애인은 오히려 범죄의 피해대상이 되고 있으며, 정신 분열증과 같이 어느 정도 사회적 안전망이 요구되는 장애인들 역시 그들의 인권을 위협할 수 있는 상황에서는 잔혹한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보다도 못한 절차적 보장을 받고 있다는 설명에 이르자 세미나에 참석한 모두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 그 법과 그 제도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수준이 낮은 것이 오히려 제도를 이끌어 낸 것일까. 세미나 중 모두를 놀라게 한 것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는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제정된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우리나라가 많은 법률을 베껴오는(!) 일본에서조차 아직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에, 어쩌면 우리나라가 장애에 대해 그렇게 나쁜 상황만은 아닌 것이 아닐까하는 기대가 생겼다. 하지만 법이 존재한다고 해도 그것을 적용하는 사법부에서부터 그것을 제대로 해석 적용하지 않고 있고,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전체적인 인권수준의 향상으로 생각하지 않으려는 비장애인들의 태도가 달라지지 않는다면 좋은 법도 결국은 유명무실해질 것이다.

 

한편 정신장애인의 치료와 보호를 위한 명목으로 존재하는 ‘강제입원’ 제도는 그 절차에 있어서 심각한 인권침해가 우려되어 왔다. 보호자 2인의 동의에 의해 엄연히 법으로 허용되지 않고 있는 사인에 의한 인신구속을 가능하도록 만들어졌다는 점에서, 1인의 정신과 의사의 판단만으로는 객관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그리고 우리나라의 정신병원 입원과정의 90% 이상이 강제입원에 의한 것이라는 점에서 강제입원 제도는 개선이 시급해 보였다.

 

# 사실 이 글은 나의 반성문이다

그날 장애에 관한 작은 세미나는 두 시간이 다 되도록 계속되었다. 최근의 판례에 대한 법률적 분석과 장애인차별법에 대한 설명, 강제입원의 제도적 문제점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으며 그동안 염 변호사가 장애인권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과 정성을 쏟았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세미나를 마치면서 그가 강조한 것은 제도가 아닌 ‘인식개선’의 문제였다. 장애인들을 동등하고 온전한 하나의 사회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모든 장애인권 문제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세미나가 끝나자, 오리엔테이션에서 돌아온 그날 부엌에서 내가 느꼈던 부끄러움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온수동 언니’는 보이는 모든 종이에다가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적어 내곤 하는 큰 어른이었다. 어느 순간 그녀의 이름 세 글자가 그녀가 적어낼 수 있는 최대한의 글자였으며, 내가 그것보다 훨씬 더 많은 글자를 쓸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녀는 내 속에서 점점 작아져 갔다. 내가 시험을 통과해 대학에 가고, 기차를 타고 여행하고, 좋은 영화를 보러 다니며 점점 더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아져만 갈 때, 그녀는 다니던 장애인학교를 그만두었고 친동생의 결혼을 축하해주러 식장에 갈 수도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아니 나라는 ‘사회’는 내가 택할 수 있었던 모든 가능성이 그녀 앞에 똑같이 놓여있지 않음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고생하는 이모의 노고에만 안타까워해 왔던 것이다.

 

나 스스로 느낀 점이 많았던 세미나였던 만큼, 그날 들었던 내용을 모두 옮기고 싶은 마음을 포기할 수 없어 글이 다소 길어졌다. 미처 다 적지 못한 말들도 여전히 있다. 개인적인 고백이 들어가다 보니 어쩐지 반성문 비슷하게 되어버린 것도 같다. 이 두서없는 긴 글을 읽어준 고마운 모두에게 마지막 문단에 한 번만 더 남은 집중력을 쏟아주길 부탁드린다.

 

그들을 ‘장애’인으로 만드는 것은 지나치게 경쟁만을 강조하고 경제적 효용성을 따져대는 일그러진 현재의 사회라는 점을, 경쟁에서 뒤처진다는 논리로 장애인을 소외시키는 사회는 그 스스로 자신의 발목을 잡는 ‘장애’를 안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렇게 과열 경쟁적이고 폭력적인 사회는 결국 우리 모두를 앓게 하리라는 사실도. 알고 보면 장애는 우리와 멀리 있지 않다.

글_송지은 (15기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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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영역

  • 프로필 사진
    2012.03.29 14:51
    두 시간이 걸렸다는 세미나에 폭 빠졌다 나온듯. 여러 생각이 드네요 감사합니다!
  • 프로필 사진
    2012.04.17 15:08 신고
    나는 문둥이가 아니올시다

    한 하 운

    아버지가 문둥이올시다

    어머니가 문둥이올시다

    나는 문둥이 새끼올시다

    그러나 정말은 문둥이가 아니올시다

    하늘과 땅 사이에

    꽃과 나비가

    해와 별을 속인 사랑이

    목숨이 된 것이올시다

    세상은 이 목숨을 서러워서

    사람인 나를 문둥이라 부릅니다

    호적도 없이

    되씹고 되씹어도 알 수는 없어

    성한 사람이 되려고 애써도 될 수는 없어

    어처구니없는 사람이올시다

    나는 문둥이가 아니올시다

    나는 정말로 문둥이가 아닌

    성한 사람이올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