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我와 彼我의 경계를 넘어 - 박영아 변호사와 함께한 <난민 인권> 세미나 후기

공감이 하는 일/자원활동가 이야기

by 비회원 2012.03.23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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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게 닫힌 당신의 집 밖에, 열 네 살의 유태인 소녀가 문을 두드린다. 그녀가 당신에게 필요로 하는 것은 전 인류의 인권 증진을 도모하는 거창한 결의도, 본국에 만연하는 악의 철폐를 위한 대규모 공습도 아니다. 그녀는 말한다. ‘자전거를 타고, 춤을 추고, 휘파람을 불고, 세상을 보고, 청춘을 맛보고, 자유를 만끽하고... 나는 이런 걸 동경해요. 그러나 그런 마음을 밖으로 드러내서는 안 되죠.’ (안네의 일기 中)

당신은 그녀에게 문을 열어줄 것인가? 자전거를 타고, 춤을 추고, 청춘을 누리는 우리만의 세상을 공유할 것인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 정부는 수많은 안네들을 아우슈비츠로 돌려보내고 있다.

우리는 모든 인간의 보편적인 권리와 정의를 보호하는 것이 법의 가장 핵심적 역할이자 존재 목적이라고 배웠다. 법이 정하고 있는 각종 재판제도 및 규정들은 결국 인간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도구인 것이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우리의 현실에서 법의 본질은 왜곡되기 시작했다. 그 작동기제는 소수에 의해 교묘하게 조작된다. 그리고 이러한 제도권 밖에, 왜곡의 주체인 소수의 극단에 위치하는 또 다른 소수가 있다. 결국 법은, 모든 인간의 권리를 ‘공평하게’ 보장하지 않는다. 법이 보장하는 인권은 선택받은 자의 몫이다. 이를 구분하는 경계는 다수와 소수로 대변되는데, 한국 사회에서는 흔히 ‘우리’와 ‘그들’로 나타난다. ‘우리’는, 정의에 기반한 법이 ‘그들’에게 행하는 불의를 너무나 쉽게 외면한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우리의 이익을 도모하는 부정의에는 침묵하고, 우리의 권리를 침해하는 부정의에는 항거한다. 이렇게 우리가 외면하고 있는 부정의속에서, 난민들은 다름 아닌 법과 제도에 의해 인권을 침해당하고 있었다.

#난민신청자는 난민이 아니다?

 

난민협약에서 규정하고 있는 난민의 정의는, ‘인종, 종교, 국적, 특정사회집단 구성원 신분, 또는 정치적 견해를 이유로 본국에서 박해를 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본국에 돌아갈 수 없는 사람’을 말한다. 박영아 변호사의 설명에 따르면, 사실 이 요건은 굉장히 제한적으로 적용되어 인종, 종교, 신분 등을 이유로 차별이 존재하고 이러한 차별이 박해에 이르는 경우에만 난민으로 인정받는다. 법무부의 난민 심사담당관은 신청자와의 면담과 자료조사를 바탕으로 난민요건의 해당여부를 심사하여 난민인정결정을 내린다. 그러나 2011년 3월 현재 난민신청자는 총 3073명인데 반해 난민으로 인정받은 사람은 235명에 불과하다. 불인정결정을 받은 경우 이의신청이 가능하나 이 때 심사는 난민신청자의 진술을 배제하고 이루어지기 때문에 대부분 기각된다. 마지막 수단으로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는 있지만 이때부터 난민신청자는 체류자격이 취소되며 취업이 불가능해진다. 단지 출국기간만 3개월씩 연장될 뿐이다. 난민심사에 1년, 길게는 3년이 소요됨에도 취업은 금지되고 생계는 보장되지 않으니 손발묶어 바다로 떠미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구금함으로써 보호하는 이상한 나라, Korea

 

1992년 난민협약에 가입함으로써 난민을 보호할 의무를 부여받은 한국은 그 의무를 여타의 국가들과는 매우 다른 방식으로 이행한다. 현행 제도는 난민신청자를 불법체류 노동자의 아류쯤으로 간주하고 취업을 매우 제한적으로 허용하거나 금지하기 때문에 이들은 기나긴 심사가 끝날 때까지 흙을 파먹고 살거나 불법으로 취업하는 것 외에는 별 도리가 없다. 나아갈 수 있는 단 하나의 길만을 남겨두고 그 길의 끝에서 기다리면, 취업만으로 졸지에 범법자가 되어버린 난민신청자들이 우수수 그물에 걸린다. 이제 우리가 수행해야 할 보호의 의무는 더욱 쉬워진다. 심사가 끝날 때까지 무기한으로 외국인 수용소에 이들을 구금하고 있다가, 난민인정을 받지 못한 절대다수의 사람들을 다시 돌려보내면 그뿐이다. 박영아 변호사가 전해준 현실의 이야기는 우리가 텍스트를 보며 느끼는 공허한 분노와는 다른 차원의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계부의 빚 대신으로, 50대의 에이즈 환자와의 결혼을 강요받은 16세의 우간다 여성은 수년간의 도피생활을 거쳐 우리나라에 난민신청을 하기에 이르렀다. 법무부의 최종결정이 내려지기까지 총 3년의 기간 동안 생계유지를 위해 일자리를 구할 수밖에 없었던 그녀는 결국 소송이 진행되는 1년 동안 생각지도 못한 감옥살이를 하게 되었다. 말도 통하지 않는 곳에서 따돌림까지 당하며 버틴 시간이었지만 결국 법원은 기각판결을 내렸고 그녀는 근 일주일간 스트레스성 구토로 괴로워하다가 항소를 포기하고 돌아갔다고 한다. 비자없이 한국에 도착한 한 베트남 남성은, 공항에서 난민 신청을 요구했으나 난민 심사에 회부할 것인지의 여부가 결정되는 근 두 달가량을 공항에 감금되어 제공되는 치킨버거만 줄창 먹다가 돌아갔다고 하니 이 또한 웃을 수 없는 사건이다. 자유를 찾아 머나먼 이국땅을 밟은 사람들이지만,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더 큰 부자유였다. 약자를 보호하고자 만든 법과 제도일진대, 우리의 법은 이들에게 탈법을 종용하고 보호를 가장한 구속을 행한다. 감히 자유를 꿈꾸고 우리의 세상을 넘본 죄의 대가가 참으로 크다. 구금과 치킨버거.. 난민보호국가의 씁쓸한 현주소다.


#‘절반의 승리’, 난민법 통과

현실에 산재해 있는 이러한 문제점들을 타개하기 위해, 공감을 비롯한 여러 난민 지원 단체들이 난민법 제정에 발 벗고 나섰다. 2011년 12월, 드디어 통과된 난민법은 소송중인 난민신청자에게 체류자격과 취업 뿐 아니라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권리, 통역 및 생계 지원 등을 보장함으로써 마침내 유의미한 일보의 전진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도 가야할 길은 멀다. 위조 및 허위, 재신청, 만료에 임박하여 출국을 앞두고 이루어지는 난민신청의 경우 심사 절차에서 면담을 제외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학대로 인한 트라우마 등으로 진술이 일관되지 못한 경우가 많고, 또한 복잡한 절차에 대한 정보가 부족하여 뒤늦게 신청하게 되는 난민들이 많음을 고려하면, 난민의 인정여부에 있어서 결정적인 증거가 될 수 있는 진술의 기회를 박탈한다는 것은 결국 힘겹게 뗀 발걸음을 뒤로 물리는 이야기가 될지도 모른다. 전진과 퇴보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는 제도의 향방은 결국 우리가 결정할 일이다.


#인권후진국, 난민은 두 번 운다

한국은 난민들에게 야박한 국가이다. 정확하게는 ‘우리’의 경계 밖으로 그러하다. 멀게는 일제의 식민 치하에서 가깝게는 군사 정권에 이르기까지, 참혹한 인권유린과 박해의 실상을 누구보다 절실히 목격한 우리들이 난민들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단일민족이라는 근원을 알 수 없는 구시대적 자부심의 발로인지, 도통 소수에게 무관심하고 이기주의가 만연하는 사회 분위기 탓인지는 알 수 없으나 난민들은 주변의 냉대와 법의 압박으로 유례없는 이중차별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불의의 교정이 언제까지고 취사선택의 대상으로만 남을 수는 없다. 법이 관여하는 다양한 사회의 쟁점들은 새로운 ‘그들’이 될 이들을 물색하고 있기 때문이다. 방치한 부정의는 언제고 당신에게 돌아오게 되어있다.


부조리를 텍스트로 접하는 것과 그것이 실제로 사람들의 삶에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를 경험하는 것은 다르다. 강의실에서, 인터넷 게시판에서, 무의미한 탁상공론을 펼치는 텍스트 속에서 난민들의 현실은 침잠하고 있다. 인권유린, 착취, 탄압, 박해. 이러한 단어들은 현실을 거쳐 총칼앞에 내몰리는 어린아이로, 병든 노인에게 팔려가는 소녀로, 성기가 꿰매져 버리는 여자아이로 나타난다. 아이가 보호를 받는 것, 정당한 대가를 받고 일하는 것,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것은 이들에겐 꿈같은 이야기다. 그들의 평범한 일상이 당신에게는 지옥이 되어버리고, 당신의 무의미한 일상은 그들에게 천국이나 진배없다. 묘한 우월의식, 이기주의, 위선이 뒤섞인 채 굳어버린 장벽 너머 당신의 감정에 호소하고 싶다. 아무래도 좋을 남의 일들일 뿐인가?


권리와 행복은 나눌수록 커지는 것임을 우리는 배워야 한다. 멀고 먼 옛날에 조상님은 무려 종의 경계를 넘어 곰과 결혼까지 하셨다는데, 오늘날의 우리는 언제까지 해묵은 나와 너의 경계에 머무를 것인가. 벽을 넘기 위한 우리의 작은 발돋움이, 문 밖의 이들에게 문을 열어주기 위한 손짓이 실천으로 나타나야 할 때이다.

 

글_이은비(15기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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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3.27 10:44
    알 수록 어렵고 곤란한 진실이 참 많네요. 난민이 겪는 부조리와 모순을 알게 됐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