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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존재 파이팅!" - 장서연 변호사와 함께한 작은 세미나 <성소수자 인권> 후기

공감이 하는 일/자원활동가 이야기

by 비회원 2012.03.16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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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전에 했던 세미나의 후기를 적기란 쉽지 않다. 우리는 세미나를 하면서 텍스트를 전면에 내세우지만, 사실 같은 순간 무대 뒤쪽에서는 각자의 지난 生들이 쏟아져 나와 은밀한 대화를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을 읽다가 갑자기 어린 적 살던 골목길로 되돌아간 기분이 드는 순간처럼, 우리는 세미나를 할 때 그동안 만났던 사람들, 스쳤던 풍경들, 들었던 소문들을 찬찬히 되짚으면서 말하고 생각한다. 그러다 가끔 좋은 텍스트,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순간이 오면, 나의 생은 모처럼 단단한 형체를 갖추고 사람들 앞으로 외출하는 것인데 그날의 수확은 굉장하다. 이야기는 개별적으로 남지 않고 서로 이어져 집합적인 기억이 되고, 경험은 한 사람에게 속하지 않고 모두에게 전해져서 둥그런 교실을 이룬다. 따라서 세미나의 진가가 발휘되는 순간은 아마도 훨씬 뒤에 찾아올 것이다. 대화를 통해 만나게 된 타인의 삶이 서서히 자신의 삶으로 들어오는 순간, 그러한 날에 세미나는 비밀스럽게 스스로 효력을 증명할 수 있다.


작은 세미나에서 들을 수 있었던 것은 공감의 이야기였다. 성 소수자에 접근하기 위해 법이라는 방식을 채택할 때, 과연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성 소수자는 자신의 존재조차 알리지 못하는 ‘없는 사람’인 반면, 법은 모든 ‘있는(존재하는) 사람’에게 정의를 채비하기 위한 수단이다. 바꿔 말하면 법은 이 사회의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가르는 가장 급진적인 경계를 이룬다. 따라서 사회의 내부와 외부, 권리를 가진 시민과 배척해야 할 이방인을 구분 짓는 임계점을 변경하기 위해서는 법과 맞서야 했고 법을 변화시켜야 했을 것이다. 성 소수자의 법적 평등을 보장하는 일은 그건 성 소수자를 특수한 존재로 구별 짓거나, 가엾은 존재로 낙인찍는 것과는 다르다. 그것은 이성애자의 규범성을 단단히 하는 것이 아니라 성 소수자가 삶을 기획하고 살아낼 수 있는 기반을 사회의 테두리 안에서 쌓아올리는 일에 가깝다. 세미나를 들으면서 가장 처음 느낀 것은 성 소수자를 존귀한 법적 주체로 올리고자하는 공감의 문제의식이었다.

이날의 세미나는 실제와 당위를 오가며 복잡하게 진행되었다. 가장 먼저 성 소수자는 무엇을 칭하고 있으며, 호모포비아란 어떠한 행동을 말하는 것인지부터 시작했다. 다음으로 한국에 있었던 성 소수자 관련 법적 쟁점들을 차례로 살펴보았다. 십대 동성애자가 구축한 인터넷 커뮤니티 X존이 동성애를 조장한다는 명목으로 처벌받은 사건, 동성 간 “계간 기타 추행한 자”를 징역에 처하게 하는 군형법 제92조가 위헌이 아니라던 판결, 성전환자의 호적상 성별정정에서 미혼, 무자녀, 성전환 수술 후 생식기능 상실 및 외부 성기와 신체 외관 등을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 대법원의 지침들. 나로서는 이미 알고 있던 사건들이지만, 장서연 변호사의 이야기를 통해 듣는 순간 새삼스러운 충격을 느꼈다. 성 소수자를 법 바깥으로 내치는 판결이 실제로 어떠한 논리를 통해 정당화되는지가 하나의 완결된 텍스트로 변모해 내 눈앞에 떡하니 펼쳐졌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트랜스젠더의 성을 사회적인 것으로 인정하지 않는 관행은 그 자체로는 어떤 증거도 없고 물리적 실체도 없다. 단지 어떤 분위기, 문화, 인식 속에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안개처럼 자욱하게 자리 잡고 있을 따름이다. 그러나 판결문은 그러한 관행에 똑똑한 형태를 부여한다. 결혼했거나 자녀가 있다면 성별정정을 해줄 수 없다는 대법원의 기준에서 우리는 개인이 내린 정체성에 관한 판단보다도 이성애 정상가족의 질서 유지를 더욱 중요시하는 사회의 편견을 명확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몇 가지 희망적인 이야기도 들었는데, 그중에서도 특히나 몇 가지 두근두근하는 비하인드 스토리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서울시 학생인권조례와 관련된 이야기. 지난해 서울시 교육청에 올라간 학생인권조례 수정안에는 초안에 있던 항목 중에서 성적지향에 의한 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이 쏙 빠져있었다. 버젓이 있던 사람을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는 판국에, 각지의 성 소수자 단체들, 인권 운동 단체들이 들고 일어나 서울시 의원회관에 육색 무지개 플랜카드를 펼치고 점거농성에 돌입했다. 나 역시 머리끝까지 화가 나서 낮에는 1인 시위도 나가보고, 밤에는 촛불 문화제도 나갔었는데 어느 날 학생인권조례가 원안대로 통과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기뻐하며 관심을 놓아버렸다. 그런데 작은 세미나에서는 내가 보지 못한 것과 듣지 못한 것들을 알게 되었다. 그건 조례가 통과하기 전날 밤과 이후의 날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공감이 경험한 밤에 대한 이야기, 공감이 만났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날 나는 학생인권조례를 지키려는 사람들이 어떠한 노력을 들여서 의원회관에 앉아있었으며, 어떤 사람들을 만나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든가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성 소수자들이 학교에서 어떠한 차별을 당하고 있는지 묶어내어 사례집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조례 제정 이후의 학교에서 사는 학생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서 어떠한 조치들이 필요한지를 고민해서 가이드북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정말 많은 사람이 법이 수정되어 울었고, 법이 통과되어 울었다. 그들은 법이 인간의 삶에 어떠한 힘을 발휘하는지를 사무치게 알았지만, 그것에 겁먹지 않았다. 그들이 가져온 변화는 학생인권조례의 항목만이 아니라, 그를 바꾸려는 투쟁 속에서 성 소수자의 삶을 가시화시킨 과정까지를 포함하고 있었다.

처음으로 “성적 지향”이 다른 주체들이 법의 이름으로 평등을 요구하기 시작했고, 그건 단지 기득권에 편입하는 과정이 아니라 이성애 주의에 기반을 둔 사회구조 전체에 도전하는 맹렬한 과정이었다는 사실!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타자’를 당당한 ‘법적 주체’로 등재하는 일은 실제로 가능했고 게다가 가슴 떨리는 이야기였다!(세상에! 이걸 나만 몰랐던 걸까!) 결국 이 모든 이야기는 나에게 심상한 감동을 주었는데, 그동안 법이 무조건적인 억압의 틀로만 보였다면, 이번에는 법이 제정하고 개정할 수 있는 유용한 도구상자로도 보이기 시작했다.

이날 세미나에서 어떤 사람은 AIDS가 어떻게 감염되는지를 물었고, 어떤 사람은 호모포비아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 했다. 다른 사람은 한국에서 진행되는 입법운동에 대해서 물었고, 장서연변호사는 가족구성권 연구모임의 최근 고민에 대해 이야기 했다. 비록 대화는 자주 끊어졌지만, 아마도 모두들 지나온 삶의 경험을 되새기며 몇 가지 궁금증과 몇 가지 혼란스러움 같은 것들을 챙겨갔을 것이다. 나는 놀라움과 의욕을 챙겼다. 그것들을 나누기 위해 이 글을 썼다.


 

글_정명화(15기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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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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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3.22 07:58
    글도 훌륭하고, 두 번째 사진의 장서연 변호사 뒤에 보이는 화면에, 헌법 10조의 조문이 적혀 있는 것이 인상적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