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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삼성을 살다』- 명현호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공감이 하는 일/로스쿨 실무수습

by 비회원 2012. 3. 6.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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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초등학교를 입학하기 전 교회 옥상에서 목사님의 아들로부터 성폭행을 당하였다. 20여년이 지난 일이지만 그 때의 그 기억이 뇌리 속에 선명하다. 당시에는 그 행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했다. 단지 나보다 키 큰 형들이 내 또래의 아이들을 모아 놓고 조금 이상하고 불쾌한 행동을 강제로 하게 했다. 그때의 기억은 마음의 상처로 남아 종종 고약한 고름 냄새를 풍기며 나를 괴롭혔다. 고름 냄새를 제거하고자 나는 가해자들에 대한 용서를 선택했다. 용서는 미덕이고 제일의 가치라고 여긴 기독교의 영향 때문에 가해자들을 용서하면서 역겨운 그 기억을 외면하고 잊고자 몸부림 쳤다.

 용서는 궁극적인 해결책이 아니었음을 고백하고 싶다. 내 나이 서른이 된 지금도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면 분을 참을 수 없고, 원망이 무거운 덩어리가 되어 나의 마음을 어두운 나락 깊은 곳으로 빠뜨린다. 고름이 흐르는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는 근본적인 처방은 존재하지 않았다. 

 상처와 고름을 바라보며 나에게 발생하였던 사실관계를 재구성하고 나면 고통은 크게 줄었고 상처는 조금이나마 아물 수 있었다. 결국 사건의 해결은 외면과 감춤이 아닌 드러냄과 공개에 있었던 것이다.

 「삼성을 살다(사회평론)」저자 이은의 씨는 그의 글을 통하여 상처의 원인과 결과를 탁월하게 드러내었다. 저자는 해외출장 도중 직속 상사에게 성희롱을 당하였고, 출장에서 돌아온 직후 그가 겪었던 성희롱을 회사에 문제로 제기한다. 하지만 회사는 적극적으로 성희롱 사건에 대한 실체적 진실을 찾기보다는 문제를 은폐하거나 축소하려는 태도를 보인다. 심지어 피해자인 저자에게 신분상의 불이익을 주거나 조직적으로 저자 개인을 따돌리면서, 집단에서 발생한 사건에 대하여 정당하게 문제제기한 개인을 배제하고 억압한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당시에 상처를 마주하고 있던 저자 개인의 태도이다. 그는 쉽게 가해자인 직장 상사와 그를 보호하는 회사를 용서하지 않았다. 저자는 용서가 아닌 사과를 선택하였고, 그 사과를 받기 위하여 지난한 싸움을 시작하였다.


 “마음을 다친 것이나 이미 지나버린 시간 같은 건 돈으로는 변상되지 않습니다. 사건 조사를 다시 엄격하게 해주시고, 조사 결과를 인권위를 통해 확인받도록 해주시면 족할 것 같습니다. 저는 아직 젊으니 필요하면 돈은 직접 벌며 살겠습니다.”


 저자가 인권위 조정위원장 앞에서 한 말이다. 이 발언에서 진정한 용서를 하기 위한 저자의 준비된 모습을 읽을 수 있었다. 용서란, 가해 상대방이 진정한 자기반성과 사과가 있은 후에 하는 것이며, 지금 현재의 상처를 아물게 하기 위하여 너무나도 쉽게 용서했다고 단정 지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나의 상처에 쉽게 용서라는 면죄부를 주었고 나를 아프게 했던 가해자에게 사과 받아야하는 기회를 매몰차게 거부하였던 것은 아닐까?      


 지금 저자는 회사를 퇴직하고 전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서 예비 법조인의 꿈을 향해 정진하고 있다. 그가 지향하는 법조인의 모습은 무엇일까 궁금하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사회 부조리와 불합리를 쉽게 용서하지 않은 마음이 그가 후에 법조인으로서 품게 될 마음과 생각이란 것을.   

                                    글_ 명현호(전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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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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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3.09 10:40
    슬픈 사연에 가슴이 내려 앉습니다.
    정의란 슬픔과 노여움을 아는 사람이 더욱 절실하게 느끼는 걸까요.
    더욱 정진하셔서 더 많은 사람을 위한 멋진 변호사가 되셨으면 합니다.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