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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회 인권법캠프 후기] 누구에게나 꽃으로 남고 싶어 하는 인간의 본성 그대로였다 (정지은)

공감이 하는 일/공감 인권법 캠프

by 비회원 2012.03.08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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팝의 여왕 휘트니 휴스턴이 죽었다고 한다. 그녀를 그리워하는 팬들은 도처에서 찾아왔지만 장례식장 출입구에서부터 봉쇄당해 불쾌해 했다. 같은 시각, 장례식장 안에는 1500명이 모여 있었는데 그들은 그녀의 가족과 친한 친구들. 장례식은 비공개로 치러졌던 것이다. ‘절친한 친구로 엄선된 사람이 1500명이나 된다고? 내가 내일 죽는 다면 몇 명이나 와서 슬퍼해줄까.’ 이 기사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아침 버스 안, 나는 창밖 먼데 있는 산을 초점도 없이 응시하다가, 엄청나게 큰 사랑을 받다가 간 그녀를 부러워하는 나를 발견하였다. 며칠간 찜찜했던 마음의 이유도 알게 되었다.

고백하건대 내 문제의 시작은 캠프 당일 아침, 집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로스쿨 입학을 앞두고 오랜 시간 궁금해 하던 공감을 직접 볼 요량으로 신청을 했다. 아무 고민은 없었다. 지난 겨울을 톨스토이의 소설 ‘안나 카레니나’에 매혹당하여 보낸 직후였다. 그 책을 성서라도 되는 듯 품고 다녔던 나에게 필요한 것은 현실감각이었다.
 


하지만 분류하기에 따라서는 인권법 캠프도 해병대 캠프와 같은 종류의 것이다. 어찌됐든 잘 버텨야 하는 단체생활인 것이다. 출발할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처음 가졌던 초학자로서의 비장한 결의보다는 긴장과 망설임이란 질긴 놈이 바싹 따라붙었다. 나는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나와 동업자로 지낼 또래의 말을 들어보자. 애초부터 나와 완전히 다른 환경에 놓였던 사람과 공감해 보자.’  먼저와 있는 조원 둘에게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았다. 그때부터는 나를 확실하게 각인시키는 행동이 필요하기 마련이다. 총성만 없을 뿐 전쟁터 같은 사교의 장에 내가 입성했음은 알기까지 별로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줄곧 여기저기서 소소한 대화를 청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황급히 나를 드러내고자 빈약한 언어를 쓰는 것에 영 소질이 없었을 뿐이었다.

 

 

예상 밖에도 감동은 여러 군데에 있었다. 특히 내가 평소에 책으로만 접하던 교수들 강연은 개그콘서트보다 재미있었다. 영어를 원어민처럼 할 수 있을 것 같은 한 선생님은 무척 자신감에 차보였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걸 증명하듯 젊은 학자보다 더 왕성한 학구열에 불타는 모습이었다. 내 또래같이 편안한 옷차림을 하신 다른 선생님은 무척 용감해보였다. 법학자 아닌 인문학자처럼 이야기보따리를 무척 많이 가진 사람이었다. 내가 가장 열심히 펜을 움직였던 순간은 나와 같은 젊은 여성이 강사로 나섰을 때이다. 그녀는 앞에 놓인 플라스틱 물병을 들어 보이며 자신의 신념을 설파하였다. 아마 그 순간 사람들의 시계도 덩달아 멈추어 버렸을 것이다. 그녀의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나의 영감이 될 것 같았다. 대기업이 보조참가인으로 나설 수 있는 현 행정소송제도의 불합리성, 아시아 전자산업 노동자들의 산업 재해 현황, 사회의 안전망이 없는 우리나라의 현실까지, 나는 현대판 열사를 보는 듯했다. 혁명의 씨앗이 이런 데서 싹트는 것이라 처음으로 생각하였다.


이렇듯 강연에는 매번 전율하였지만 그 뿐이었다. 더 이상 밖으로는 소리가 안 나왔다. 점차 신중한 관찰자에만 머무는 나 자신에게 연민을 느끼기 시작했다. 변호사는 어느 경우에나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직업이라는 걸 떠올리고 난 뒤로는 더 자괴감에 사로잡혔다. 인권의 현실을 느끼러 왔는데 외려 나의 현실을 느꼈다. 그 후로 난 며칠 동안 환영에 사로잡혔다. 길을 가다가, 책을 보다가, 그 캠프에서 내 목소리를 내는 것에 수세적이었던 모습이 잔상으로 나를 따라다니며 괴롭혔다. 그 이유를 오늘 아침 라디오를 듣다가 통감하게 된 것이다. 나는 휘트니 휴스턴처럼 사랑 받기를 원하였던 것이다. 사실은 누구에게나 꽃으로 남고 싶어 하는 인간의 본성 그대로였다, 그 욕망도 내 일부로 인정하니, 편안해졌다. 성소수자, 장애인, 교수, 변호사, 식당 아줌마, 젊은이도 다름없지 않을까. 우리는 모두 똑같은...


글_ 제5회 인권법캠프 참가자 정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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