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로스쿨 실무수습 후기] "인권을 생각하다보면, 인간을 돌아보게 된다" - 전수연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공감이 하는 일/로스쿨 실무수습

by 비회원 2012.02.06 11:26

본문

 


  실무수습이 끝난 후로부터 지금까지 후기에 써야할 또는 쓰고 싶은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해 수없이 생각하고 또 생각해왔지만, 막상 컴퓨터 앞에 앉으니 머릿속이 마치 ‘새 문서’를 클릭한 것 마냥 하얘졌다. 공감 실무수습 기간의 하루하루가 기대되고 즐거웠던 순간들로 자리매김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데... 그래서 되짚어 보려 한다.

1. 공감... 그리고 설레임...

  공감에서의 실무수습이 운좋게 결정되고 나서, 가장 먼저 생각난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의 질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 정확히는 답을 꼭 들려주고 싶다는 사명감 비슷한 것이 있었다.

  같은 교내 인권 동아리였던 친구는 내게 미국변호사이자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어느 변호사가 했다는 말을 들려주었다. 그 변호사의 말인즉슨 공익변호사를 하고 싶다는 그 친구에게 ‘건방떨지 말라’고 얘기했다고 한다. 공익변호사 활동을 하고 싶으면 최소한 변호사로서 ‘10년 이상’의 경력을 쌓고 나이가 좀 들었을 때 봉사활동 차원에서 하는 것이지 젊은 시절부터 달려들어서 하는 것 아니라고...  공익변호사 하는 사람들은 다 남부럽지 않게 잘사는 사람들이라며, 부족할 것 없는 사람들이 취미삼아 공익변호사를 하니까 열정도 없고, 열정 없이 일하니까 오히려 소수자들에게 불리한 판결들을 만들어내서 소수자보호가 아니라 소수자들을 더욱 불리한 위치에 처하게 한다는 것이 그 변호사의 논지였다. 그래서 친구는 ‘건방떨지 않고’ 남들처럼 일반 로펌에 취직하는 것이 목표가 되었다고 했다. 난 아무 대답도 해줄 수 없었다. 나 역시 공익변호사들의 현실을 잘 몰랐으니까. 그러나 무언가 억울했고 답답했고 안타까웠다. 

  이런 복잡한 감정을 간직한 채 공감에 첫 출근을 하게 되었다. 실망의 꺼리가 될 수 있는 것들은 되도록 보고 듣지 않게 되길 바라면서도, 공익변호사의 ‘있는 그대로의 삶’을 보고 싶다는 상반되는 감정들과 함께...

2. 내 안의 편견과 마주했던 시간들..

  실무수습 기간 중에, 담당변호사님(장서연 변호사)으로부터 받은 과제는 영화 ‘친구사이?’와 관련된 참고서면을 작성하는 것이었다. ‘친구사이?’는 동성애를 다뤘다는 이유만으로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받은 후, 제작사(청년필름)측이 영상물등급위원회를 상대로 제기한 청소년관람불가등급 분류결정처분 취소청구 소송에서 1,2심 모두 영화 제작자측(원고)이 승소하였으며,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인 영화이다. 

  처음 이 과제를 받아들었을 때 들었던 생각은 “아.. 어렵다” 였다. 수많은 소수자인권분야가 있지만, 그 중 거의 유일하게 나의 입장이 정해지지 않았던 분야였기 때문이다.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어떤 일을 시작함에 있어 한 발짝도 떼기 어려운 나였기에 나의 마음을 먼저 돌아보았다. 사실 성소수자들에 대한 가치판단은  마음 편히 방치해두고픈 분야였을지 모른다. 내게 있어 성소수자들에 대한 긍정적인 가치판단은 ‘이들도 나와 같은 인간이다’라는 전제에서 시작하여 논리적인 흐름을 타고 가면 이르는 결론인데 반해, 부정적인 가치판단은 ‘뭔가 불편하다’는 본능적 감정에서 시작해서 논리의 흐름 없이 감정적 결론만으로 끝나버린다.  

  참고서면을 쓰는 것은 판사를 설득하기 위해 쓰는 글인데 나조차도 설득시키지 못한 마음으로 일을 하면 어떤 방식으로든 그것이 드러날 것 같아 먼저 나 자신을 설득해보기 위해 성소수자 옹호 논거들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영화 ‘친구사이?’를 보고, 성소수자에 관한 기본적 지식과 편견에 관해 알기 쉽게 쓰여진 소책자들, 그리고 관련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 성소수자들의 글을 읽어보았고, 운이 좋게도 변호사님과 함께 ‘친구사이(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를 방문할 기회까지 얻게 되었다. 이렇게 난 한발 한발 외면하고 싶었던 불편함 속으로 들어갔다.
 


3. 답을 얻다. 그리고 또다시 인권... 그리고 인간...

  - 공감에서의 2주는 그 어떤 때보다 강렬했던 열정으로 남아있고, 그리고 매일 틈만 나면 후기를 어떤 내용으로 채울까에 대해 고민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글을 쓰려 앉으면 머릿속이 하얘졌던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본다. 아마도 매 순간이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배움의 신선함과 그것이 주는 깨달음 그리고 함께했던 실무수습 동기들로 인한 즐거움의 시간들로 꽉차있던 2주를 ‘감히’ 노트북의 자판으로 뚝딱뚝딱 표현해낸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컸던 듯하다. 

  - 공감에서 실무수습을 마친 후에는 친구에게 들려줄 답변을 꼭 준비해가고 싶었다. 그래서 변호사님들과 식사라도 할 자리가 생기면 공익변호사의 삶에 대해 꼭 여쭤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공감에 출근한지 일주일도 되지 않았던 때에 나는 변호사님들께 그런 질문을 드리기로 마음먹었던 내 마음이 부끄럽고 죄송했다. 우선 종이컵을 사용하지 않거나 이면지를 재사용하고 온풍기의 온도를 적정온도로 유지하는 등의 사소한 부분을 비롯하여, 변호사님별로 각각 다른 주제로 진행하셨던 ‘작은 세미나’ 등에서 공감만의 자존심과 진지한 열정이 느껴졌다. 특히 각 변호사님께서 맡고 계시는 사건들과 관련한 얘기를 나눴던 작은 세미나 시간동안에는 변호사님들의 눈빛에서 그리고 말에서 행동에서 따스함 아니 그보다는 ‘뜨거움과 간절함’을 느꼈다. 봉사활동 하듯 일한다는 그 말을, 정말 그렇게 일하시냐는 질문을 맘속에 품고 있었던 내가 참 가벼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공감의 한 변호사님께서 하셨던 말 한마디가 인상 깊게 남아있다. 이전에 판례가 전무한 사건을 수행할 때 선례를 남긴다는 부담감 때문에 판결선고일 전날에는 잠이 오지 않는다는... 소송의 당사자인 취약계층 또는 소수자들에게 불리한 판결이 나와 선례로 남게 되면 그만큼 그들은 권리의 최후 보루인 법적부분에 있어서도 구제의 길이 없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공감의 구성원분들은 ‘10년간(?)’ 자신의 열정을 감추며 살 수 없는 진정한 열정의 소유자라는 확신이 들었다. 말로만 공익이 아니라, 불편하고 돌아가는 길이지만 내부에서도 몸소 공익을 실천하는, “Public Interest lawyer's group"이라는 영문이름은 공감을 잘 나타내는 말이라 생각된다.  

먹고살만하니 공익활동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익을 위해 공익활동을 선택하지 않은 자신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한 자기합리화가 아닐까...?

  -성소수자에 대한 논의를 이해하고 더 나아가 이들의 존재를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하였고, 다행히 노력한 보람이 있었다. 성소수자들에 대해 나의 마음이 설득되기 시작되었고 마음으로 이들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본인의 성적지향을 인식하게 되고 본인이 원하는 방식으로 원하는 사람을 만나 사랑을 나누고 싶다는 너무도 보편적인 감정을 가진 보통사람들인데, 성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마치 원죄를 진 존재마냥 살아가는 이들을 애써 외면하고 있었던 내 모습을 보게 되었다. 이들은 ‘나’ 그리고 ‘당신’과 다를 바 없는 사람인데, 한국사회를 비롯한 세계각지에서 성소수자임이 밝혀지기라도 하면 ‘게이’, ‘레즈비언’이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진 채 살아가며, 심지어 몇몇 국가에서는 사형에까지 이르는 형벌로 다스려지기도 한다.  혹여나 도저히 성소수자들이 나와 같은 인간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생각이 지워지지 않는다면, 다음의 문구는 어떠한가?

  “나는 당신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그 견해 때문에 박해를 받는다면 나는 당신 편에 서서 싸우겠다. (볼테르 M. Arouet de Voltaire)” 

  위의 말을 이렇게 바꾸어보았다.

  “나는 당신의 성적지향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성적지향 때문에 박해를 받는다면 나는 당신의 편에 써서 싸우겠다.”

 - 인권을 생각하다보면, 인간을 돌아보게 된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존재’이다. 사람에 초점을 맞추면, 각 사람을 가두고 있던 구조가 걷힌다. 그리고 그 틀 안에 맞춰진 집단으로서의 보통명사 ‘사람’이 아니라, 고유명사 ‘사람’을 발견한다.
  내 안에 보다 분명해진 소망이 있다. 나의 평생을 두고 이 아름다운 발견을 해나가고 싶다는 것과 그 각 ‘사람’이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를 만들어가는 일에 동참하는 것이다. 지금 ‘공감’이 해내고 있듯이...

글_전수연(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모집] 2014 공감 인권법 캠프 참가자 모집 (예비법전원생 및 예비사법연수생)

 

공감 에세이집 '우리는 희망을 변론한다' 출간 - 박원순 시장, 신경숙 작가 추천사 

 

※ 공 SNS 에서 공감의 다양한 이야기를 만나실 수 있습니다.

  >> 페이스북 바로가기

  >> 트위터 바로가기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

  • 프로필 사진
    2012.02.06 16:17
    안녕하세요. 공감과 많은 인연으로 같이 활동하고 있는 LGBT 활동가 토리라고 합니다.
    우연치 않게 공감 블로그에 올려 놓은 후기를 읽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성소수자들이 드러내기 어려운 척박한 사회에서 글쓰신 분이 성소수자에 대해 열심히 고민하고 열린 자세를 갖고자 노력하시는 모습이 감동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다만 제안하신 “나는 당신의 성적지향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성적지향 때문에 박해를 받는다면 나는 당신의 편에 써서 싸우겠다.” 문구가 참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습니다. 저 역시 LGBT로 이 세상을 살아가고 소수자 정체성을 갖고 살아가지만 이성애 정체성을 '동의'하거나 그렇지는 않습니다. 상대방의 정체성에 대해 동의/부동의할 수 있는 권력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그게 가능할까,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 살아가는 수 많은 타자들에 대해 너에게는 동의하겠어, 혹은 동의하지 않겠어 라고 말하는 권력이 가능한 사람이 누구일까요? 성적 지향은 어떤 사안에 대한 견해와 같은 것이 아닙니다.
    글쓰신 분이 의도한 것이 '나는 너와 같은 성적 지향이 아니야'라는 의미였으면 더 쉽게 이해가 갔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쪼록, 공감 실습 동안 얻으신 많은 것에 더해 한 부분 더 생각해보셨으면 좋겠다는 의미에서 덧붙입니다.
    • 프로필 사진
      2012.02.06 17:03
      후기 써주신 전수연님과 댓글 달아주신 토리님 덕분에 또 배웠습니다.^^
  • 프로필 사진
    2012.02.06 17:15
    아.. 제 글 읽어주시고 진심어린 코멘트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먼저 저의 LGBT에 대한 기본입장은 토리님과 같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그 존재자체로 존재하는 것이지, 타인이 그 존재에 대해 동의하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니까요..
    제가 위와 같은 인용문을 썼던 것은,, 성소수자에 대해 마음으로도 머리로도 받아들이기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 인용글처럼 '이성적 관용'이라도 가져보면 어떨까 해서 넣은 글입니다. 공부하다 이해가지 않는게 있으면 암기부터 하는 것처럼요... 혹여나 제 인용문이 저의 의도와는 달리 왜곡되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토리님의 지적 덕분에 제 글의 전제가 좀더 확실해지는 효과를 얻었군요.. 감사합니다!!
    • 프로필 사진
      2012.02.06 18:36
      의도와 다르게 글이 읽힐 수 밖에 없는 건 인용문 자체가 '잘못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표현 방식을 쓰셨던 이유가 선한 의도였다고 할지라도, 잘못된 표현은 여전히 문제일 수 밖에 없구요.

      성적지향과 성정체성은 타인의 동의를 구할 영역이 아닙니다. 이는 다른 사회적 소수자(장애인, 이주민 등)의 존재를 우리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와 비교해 봐도 알 수 있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입니다. 애초에 타인의 실존에 대해 어떻게 감히 동의라는 말을 사용할 수가 있겠습니까.

      단지 단어선택이나 표현방식을 넘어서는 문제라는 사실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네요.
    • 프로필 사진
      2012.02.07 08:21
      위 댓글에서도 언급했지만,
      개인적으로는 글의 대상을 누구로 하냐에 따라 적절한 표현이 된다고 봅니다.
      (글의 맥락상 그 인용문은 분명히 '성적지향'은 '동의'를 구하거나 '동의'를 받아야할 사안으로 주장한다고 보이지 않고, 편견을 가진 '성다수자'가 다수인 것이 현실이라 보기 때문입니다.)

      성소수자의 성적지향에 대한 '호불호'와 그에 따른 성적지향 자체에 대한 '동의여부'는, 성정지향에 대한 개념적이고 이성적인 이해와는 분명 구분될 수 있습니다.
      그건 논리적인 설명과 보편적 이성의 문제를 뛰어넘어 개인적인 감정과 신념의 문제를 포함한다고 보기 때문이며,
      타인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설득할 수 있지만 '호감'과 '동의'를 강요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느낌과 의견이 분명 잘못된 것이라 하더라도...)

      그런 의미에서 '불호감'을 갖고 '동의'하지 않는 '성다수자'에게는 적절한 인용이고 분명히 의미있는 외침이라 보입니다.
      (그런 '성다수자'가 '다수'인 현실에서는 더욱더 그러하리라 생각됩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동의'하지 않더라도 같은 '인간'으로 의식하는 것 자체가 이미 큰 진전이 아닐까 합니다.

      ps. 이 문제는 인종이나 종교의 문제에서도 크게는 동일하지만, '사회적 공감대'의 정도에서 조금 다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같은 선상에서 비교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 프로필 사진
    2012.02.06 18:31
    저도 이 글을 보면서 토리님과 같은 생각을 했습니다.
    '성적지향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는 말은 율사가 되고자 하는 이가 하기에는
    자격미달의 언어행위가 아닌가 싶습니다.
    • 프로필 사진
      2012.02.06 17:22
      글 써주신 분이 밝혔듯이
      글을 천천히 다시 읽어보시면 글쓴이 분이 저렇게 생각한다는 게 아니라, 성소수자를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에 대해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라고 제안하는 것으로 보이네요.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자격미달이라고 평가하는 것은
      오히려 편견을 가지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프로필 사진
      2012.02.06 18:38
      대충 읽었다가 답글 보고 충분히 읽었는데,맥락을 오해한 것은 맞네요. 죄송하구요.

      그런데 '다르다고 해서 자격미달'이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성적지향이라는 '가치관'에 대해 '동의하지 못한다'는 발화를 하는 것은 그 컨텍스트와 상관 없이 지금까지 율사들이 보여준 권위적 태도와 많이 닮았다고 생각되네요. 그것이 아무리 성적지향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이들에 대한 제안이라도 말입니다.

      로스쿨에 들어오고 변시를 통과한 이들 중 적지 않은 경우, 괜찮은 인격이 내가 드디어 이 자리에 올라왔다는 생각 때문에 망가진 경우를 봤기에 노파심에서 이야기했답니다. 너무 유념치는 마시되, 한 번 생각해보시길.
    • 프로필 사진
      2012.02.06 18:40
      글쓴이의 의도가 왜곡되게 표현된거같아요.
      물론 의도야 좋은 의도겠지만
      차라리
      나와는 다른 성적취향이지만
      이렇게 바꾸는게 날듯요ㅡㅡ

      이슬람 종교로 바꾼다고치면
      난, 당신의 종교는 동의하지않지만
      이렇게되는데 좀 이상하잖아요.

      남들에게 사람의 존재 자체를
      동의받아야 되나요

      단지 의견의 다름인경우는
      동의라는 표현이 맞지만
      이번안은 좀..
      보자마자 으잉? 하는 언급이었어요..
      아까는 제목이었던거같은데..
    • 프로필 사진
      2012.02.06 21:12
      댓글다신분이 맥락을 오해하셨다고 하셨지만,
      설령 오해하셨다 해도 발언이 다분이 폭력적이었네요.
      소수자라 해서 폭력적인 반응이 용납되는건 아니라고 생각되네요.


      그리고, '동의'라는 말이 가지는 불쾌감에 민감해하는 분들이 많은거 같은데,

      실제로 성소수자의 성적 지향을 '옳고 그름'의 문제로 여기고 그들의 지향을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게 현실이 아닐까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글의 대상은 그런 성향의 '성다수자'를 대상으로 하는 글이 아닐까 하는데요.
      그런면에서 보자면 꽤 의미있는 표현이라 보입니다.

      글의 표현이 성적지향은 '동의'를 받아야할 사안이고 '동의'를 해달라는 의미로 쓰인게 아니듯,
      설령 '동의'가 되지 않더라도 '인간'의 존재를 생각해보라는 의미에서, 다수의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인권을 고민하고 그들의 편이 되어간다면 그 자체가 척박한 현실에서는 이미 큰 진전이니깐요.
    • 프로필 사진
      2012.02.06 22:24
      1. 오해에 대해서는 죄송하다고 했구요.

      2. 토양이 척박하므로 사용되는 언어는 다소 비인권적이어도 된다? 논리를 그렇게 아전인수해서 쓰시면 안됩니다.

      3. 혼혈아를 두고 '튀기'라고 부르던 야만적 언어 행태를 대신해 '카라멜'이라고 부르자,고 하면 열받으실 분이실 듯한데요.

      4. 범용되는 수준에서 '분명' 잘못된 표현에 대해 지적하는 것을 그렇게 힘들여 변호하실 필요는 없으실 듯 합니다.
    • 프로필 사진
      2012.02.07 08:12
      '다소 비인권적인 부분의 아전인수격 적용'을 지적하신 부분은 '다수의 다소 비인권적인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꽤 의미있는게 아닐까'라고 말했으니, 이미 답변이 되었다고 생각되고,

      '튀기와 카라멜'의 예와 지금의 '동의 문제'는 적극적이고 폭력적인 표현이냐 내심의 의사냐는 점에서 차이가 크니 적절한 예가 아니라는 점은 아실꺼라 생각되어 넘어가도 되리라 생각되고,

      다수가 '범용되는 수준'에도 도달하지 못한 현실에서, 다수의 관점에 대한 이해와 눈높이에 맞는 접근이 없다면, 무엇으로 공감을 이끌어낼것인가 하는 생각에,
      '힘들여서' 변호를 했다고 생각되네요.
  • 프로필 사진
    2012.02.14 23:44
    '서생'을 비롯한 까칠한 분..^^....'동의'란 무엇인가? 논쟁하고 싶은 건가요? '동의'의 사전적 의미는 그냥 '같은 의견'입니다. 윗글을 그대로 풀이하면 '당신의 성적지향과 다른 의견'이 있다는 정도인데...참 난감하네요. 그냥 읽고 넘어갈 부분에 대해... 이해하는 척하다가... 기어이 꼬투리를 잡아서 비판을 가하는 것은 졸렬하고... 지나친 피해의식의 발로라고 봅니다. 성적 소수자에 대해서 충분한 이해가 없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고...시간을 가지고 서서이 설득해 나가는 것이 옳지 않을까요? 강요해서도 안되고 강요받고 싶지도 않은 문제인데... 이해를 잘하고 있는 자기 방식대로 사고를 하지 않는다고 자꾸 토를 달면... 대화의 문은 닫혀지게 마련이지요. 천천히 가자구요. 나의 가치관을 주입시키려는 그런 폭력적 태도... 헐~ (개콘)안돼애~~
  • 프로필 사진
    2012.02.19 18:28
    위에 "하여간"님과 "D"님이 쓰신 글을 보고 답글 답니다.

    우선, 공감에서 본의 아니게 실수를 했습니다. 글쓴이와 협의 없이 전체 글 중에서, “나는 당신의 성적지향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성적지향 때문에 박해를 받는다면 나는 당신의 편에 써서 싸우겠다.”라는 일부분이, 공감 공식 트위과 페이스북으로 글 링크와 함께 올라가면서 강조되었습니다. 아마도 인용의 후반부 "당신편에 서서 싸우겠다"고 적극적인 옹호를 한 부분을 강조하고자 실수를 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성적지향에 동의하지 않지만"이라는 전제 자체는 공감 공식 트윗과 페이스북에 올리기에는 부적절한 표현으로 판단해서, 현재는 수정되어서 나간 상태입니다.

    글쓴이는 공감에서 제가 담당 변호사로서 함께 2주간 로스쿨 실무수습했었는데요, 이 글을 통해서, 자신도 성소수자에 대하여 편견이 있었음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수습하는 과정에서 편견을 깨기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했고, 나아가 정서적으로 성소수자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최소한 이성적으로 관용을 보이는 것은 어떨까 제안하는 취지로 글을 썼다고 합니다. 저도 전체적인 취지에는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혼동하기 쉬운 실수를 했는데요, 하필이면 공감도 같은 실수를 해서 그부분을 강조하면서 사람들이 불쾌해 했던 것입니다. 유명한 인용구, “나는 당신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그 견해 때문에 박해를 받는다면 나는 당신 편에 서서 싸우겠다. (볼테르 M. Arouet de Voltaire)”는 표현의 자유, 정치적 의견의 자유에 대한 관용을 말하는 것입니다.

    찬반을 논할 수 있는 "의견"이나 "견해"와 달리, 누군가 인간의 정체성에 대하여, 소수자 존재에 대하여 "동의","부동의"할 수 있다는 전제가 반인권적인 표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당신의 인종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그 인종 때문에 박해를 받는다면 당신 편에 서서 싸우겠다"라는 말처럼 얼마나 이상한 말인가요.

    이는 한국사회가 여전히 동성애에 대하여 찬반 토론하거나, 허용,불허용의 문제로 혼동하는 것과 같은 경우입니다. 저는 소수자 입장에서 당연히 잘못된 전제의 표현을 보고 불쾌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틀린 것을 틀렸다고 말하고, 불쾌한 표현이나, 비논리적인 표현에 대하여 당연히 지적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에 대하여 지나친 피해의식의 발로라거나 꼬투리를 잡기 위한 졸렬한 비판이라고 매도하는 것이 오히려 다수의 횡포가 아닐까요. 더구나, 다른 곳도 아니고 소수자 인권 활동을 하는 공감에서 나오는 글이기 때문에 더 실망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소수자들의 입장과 관점에서 더 성찰하고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