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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쿨 실무수습 후기] 인권감수성을 주제로 한 2주간의 테마여행 - 류정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공감이 하는 일/로스쿨 실무수습

by 비회원 2012.02.02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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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뜻했던 공감의 첫 인상

공감은 서울 종로구 창덕궁 언저리의 북촌창우극장이라는 지상 4층 지하 1층 건물의 3층에 위치하고 있다. 엘리베이터가 없고 복도에 층마다 작은 남녀공용 화장실 1개씩이 있는 다소 허름한 건물에 위치해 있지만, 공감 사무실 안에서는 ‘따뜻함’이 ‘허름함’을 압도함을 쉬이 느낄 수 있었다.

사무실 문을 열면, 벽면에 가득한 공감 인턴들의 사진과 거기에 몇 줄씩 적힌 소감 내지 추억들, 작은 나무에 열매처럼 걸려있는 사람들의 명함, 기부자 명단 등을 몇 걸음 안에 마주할 수 있다. 사무실 중앙의 회의실(10명 규모)과 입구 사이에서는 10명의 인턴 또는 실무수습생들이 5개씩 서로 마주보게 배치된 책상에서 근무를 하고, 사무실 양쪽 창가에서는 2명의 실장님과 8명의 변호사님들이 파티션으로 구분된 동일한 크기의 공간에서 근무를 한다. 대형로펌 두 곳에서만 실무수습을 해 보았던 나로서는, 모든 구성원이 업무공간과 프로필 소개 등에 있어서 동등하다는 점과, 실무수습생들도 격리된 인턴실이 아닌 그분들의 목소리가 바로 들리는 곳에서 일하면서 직접 전화응대까지 한다는 점이 다소 놀라웠다. 공감 구성원들 사이에서, ‘업무내용과 근무기간은 다르지만 우리는 같은 꿈을 향해 함께 걸어가는 똑같은 사람들이다.’라는 믿음이 공유되고 있는 듯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공감의 구성원 중 적어도 내가 뵈었던 분들은 단 한 명의 예외 없이 인상이나 말투에서 따뜻함과 진실됨이 묻어 나왔다. 그래서였을까, 특별한 느낌을 주는 사람을 만나면 ‘외모와 몇 마디 말로 사람을 판단해서는 안 되는데’ 하면서도 쉽게 마음을 열어버리게 되듯이 나는 공감 구성원 분들에 대한 인간적인 끌림을 막기 어려웠다.

# 공감에 발을 내딛으며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돕겠다고 ‘생각만’ 한 사람, 여기에 잠들다.” (김두식, ‘헌법의 풍경’)

만일 내가 오늘 죽는다면, 제 묘비에는 이런 비문(碑文)이 새겨질지도 모른다. 승자독식의 양극화된 세상보다는 더불어 사는 따뜻한 세상을 누구 못지않게 갈망하지만, 경쟁주의에서 ‘살아남기’ 위해 정신없이 살다보면 공익봉사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나는 그런 부채의식(負債意識)을 가지고 이번 실무수습을 법원·검찰·로펌·기업이 아닌 공익관련단체에서 해 보기로 결심했다. 그러한 경험을 통하여 공익·봉사에 있어서 게으르고 용기가 없던 나에게 자극을 주고,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 가까운 또는 먼 미래에 공익변호사로서 어떻게 쓰일 수 있는지 탐색해 보고 싶었다.

# 인권감수성을 깨워주었던 세미나

 실무수습 기간동안 각 분야별로 담당 변호사님들이 총 8회의 세미나를 진행해주셨다. 로스쿨 내 공익·인권법학회 활동조차 하지 못했던 내게는 생소한 내용도 많았지만, 담당 변호사님들이 초심자도 충분히 따라갈 수 있도록 친절하게 설명을 해 주신 덕분에 단 하나의 세미나도 큰 의미가 없었던 것이 없었다. 그 중에서 여성인권 세미나와 빈곤·복지인권 세미나 2개 정도를 중심으로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여성인권 세미나는 ‘결혼이주여성의 인권실태와 관련 법적쟁점’에 관한 내용으로 소라미 변호사님이 진행하셨다. 세미나는 판결문을 돌아가며 읽는 것으로 시작했는데, 그 이유 부분에는 피해자가 살해되기 전날 남편인 피고인에게 남긴 편지가 인용되어 있다. 편지에는 가난 때문에 온갖 고생을 하던 피해자가 결혼이주여성으로서 한국에 오게 된 과정, 당시 19세였던 피해자가 40대 남편의 좋은 아내가 되어 보고자 기울였던 많은 노력, 오히려 그에 폭력으로 답하던 남편에 대한 실망과 한(恨)이 생생히 전해지는 편지를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목소리가 떨려옴을 느낄 수 있었고, 맞은 편 실무수습생의 눈에서는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상대평가와 학점경쟁 속에서 비인간화되어가는 로스쿨이지만, ‘자기 일도 아닌 일에’ 함께 슬퍼하는 실무수습생 친구들을 보면서 ‘그래도 우리 아직 가슴이 살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서 22쪽 분량의 프리젠테이션 자료를 통해 한국의 국제결혼 현황, 중개업체에 의한 국제결혼의 실태, 관련법령, 결혼이주여성의 거주권 및 성원권(成員權) 문제 등을 배웠다. 사랑과 믿음으로 행복하게 안착한 다문화가정도 많겠지만, 말도 안 통하는 외국 여성의 외모만을 보고 물건 고르듯이 3차에 이르는 심사를 하여 단 하루 만에 혼인을 결정하게 하는 국제결혼 중개업체들의 ‘영업’ 방식은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필리핀의 ‘우편주문신부금지법(Anti-Mail Order Bride Law)’ 등 외국의 입법례, 우리나라의 ‘결혼중개업의 관리에 관한 법률’ 및 그 한계를 배우면서, 로스쿨에서는 사법(司法)에 다소 치우친 공부를 하더라도 사회문제에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입법이나 행정 등에도 기여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겠다고 다짐했다.

 빈곤·복지인권 세미나는 ‘사회권 실현을 위한 공익소송과 사법적극주의’를 내용으로 차혜령 변호사님이 진행하셨는데, 그 중 하나의 소재에 관한 토론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바람에 준비된 13쪽 분량 프린트의 상당부분은 훑는 정도로 다룰 수밖에 없었다. 세미나는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과 사회권 및 사법적극주의에 관한 설명을 들은 뒤, 최근 한국철도공사가 서울역의 야간노숙행위를 금지한 것에 대한 실무수습생 각자의 생각을 묻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실무수습생들은 일단 민법의 관점에서는 소유물 방해제거청구권에 기한 당연한 권리행사라는 점부터 시작해서, 홈리스(homeless) 입장에서는 (국가 또는 사인에 대한) 주거권·생명권·사회적기본권을 주장할 수 있겠다는 점, 한국철도공사가 야간노숙행위를 금지한 것은 실질적으로는 홈리스를 표적으로 한 차별이라는 점 등 다양한 견해를 제시하면서 대화의 영역을 넓혀 갔다. 이야기는 ‘국가가 제공한 홈리스 시설에서의 생활을 거부하고 서울역 노숙을 선택할 자유가 인정되는지’ 등에까지 확장되었는데, 열정적으로 토론에 임하는 실무수습생들과 그것을 이끌어 가는 변호사님에게서 많은 자극을 받을 수 있었다.

 나의 글 솜씨 부족으로 세미나의 진지하면서도 뜨거운 분위기를 온전히 전하지 못함이 아쉽지만, 공감의 세미나는 많은 실무수습생들이 가장 인상 깊었던 프로그램으로 꼽을 정도로 내용도 알차고 강렬한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매우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 소장 작성 과제

 나는 노동·분배·불평등의 문제에 관심이 많았고, 취약계층노동을 담당하는 윤지영 지도변호사님으로부터 과제를 받게 되었다. 주어진 과제는 모 국가기관의 차별정년규정에 따라 퇴직한 여성에 관한 사건이었는데, 형식적으로는 정년이 직렬에 따라 다르게 규정되어 있지만 해당 직렬이 전원 여성이라는 점에서 실질적으로는 성차별이 아닌지가 문제되는 것이었다.

나는 먼저 헌법·근로기준법·남녀고용평등법·국가공무원법 등 관련 법령과 판례를 조사했고, 변호사님의 요청에 따라 차별에 합리적 이유가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 더 필요한 정보들을 정리하였다.  이후 변호사님이 의뢰인으로부터 받은 추가적 사실관계를 내게 전달해 주시면서 승소 가능성에 관한 의견을 물으셨는데, 이 정도면 해볼 만 하다고 판단했기에 소장 작성까지 진행하게 되었다. 막상 소장을 쓰려고 하니, 헌법소원·행정소송·민사소송·(노동위원회)구제절차 중 어떤 형태로 갈 것인지, 해고무효확인·공무원지위확인·면직처분취소·취업규칙변경 등 중에서 무엇을 청구할 것인지, 피고는 대한민국인지 해당 국가기관의 장(長)인지, 청구취지는 어떻게 작성할 것인지 등 더 조사해야 할 것이 많았다.  나는 추가적인 리서치를 거쳐 서울행정법원에 대한민국을 피고로 하는 공무원지위확인의 소를 제기하기로 결정하였고, 13장 분량의 소장을 2주 만에 겨우 완성하였다.

노동법을 처음 접하는 데에다 조퇴를 한 날이 있을 정도로 첫 1주 내내 몸이 좋지 않아서 소장을 작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지만 탐구하는 과정을 통해 ‘생소한 분야의 사건이더라도 (시간이 오래 걸리기는 하겠지만) 열심히 하면 반드시 일정한 결과를 낼 수 있다.’는 자신감과, 작게나마 공익·인권 관련 행정소송을 처리하는 일련의 과정을 직접 경험해 보았다는 뿌듯함을 얻을 수 있었다.


# 인권감수성을 울렸던 ‘장애와 인권 발바닥 행동’ 방문

 외부활동에 일환으로 ‘장애와 인권 발바닥 행동(이하 발바닥)을 찾아 단체의 간략한 소개를 듣고, 발바닥 활동가분들로부터 시설장애인 인권침해에 관한 프리젠테이션 발표를 들었다.

이어서 탈(脫)시설을 주제로 한 인권영상 ‘선철규의 자립이야기-지렁이 꿈틀’을 보았다. 이 영상은 휠체어조차 타지 못하는 중증장애인으로서 장애인생활시설에서 12년을 지낸 선철규씨가 시설에서 벗어나 지내는 생활을 다룬 다큐멘터리로, 국가인권위원회가 선정하는 2010 인권영상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힘겨운 호흡이지만 자신의 목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선철규씨의 영상을 보면서, 시설이라는 미명 하에 장애인에게 외부와 단절된 ‘연명’에 가까운 무의미한 삶을 강요하는 현실에 대한 분노, 지금 내가 당연한 듯 누리는 ‘바깥세상에서의 삶’이 시설장애인에게는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서라도 경험해 보고 싶은 꿈’이라는 것에 대한 슬픔과 미안한 마음이 교차함을 느꼈다.

사람은 태어날 때 누구나 장애의 ‘확률’을 가지고 있고 장애인들은 단지 그 확률이 ‘실현’된 것일 뿐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어디에선가 읽었던 ‘장애사회는 있어도 장애인은 없다.’는 취지의 글귀가 떠올랐다. 장애인들의 눈을 바라보면서 인간의 존엄과 가치·평등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마도 어려울 우리 사회가, 그리고 돈을 거의 포기하고 일하는 이곳 활동가분들 앞에서 (대출로 버티고는 있지만) 수천만 원을 내며 로스쿨을 다니면서도 인권현장 일선에 당장 뛰어들기를 망설이는 나 자신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 실무수습을 마치며

 돌이켜 보건대 공감에서의 실무수습 경험은 한 마디로 ‘인권감수성을 주제로 한 2주간의 테마여행’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공감을 통해서 2주 동안 공익·인권을 ‘테마’로 난민·이주·HIV감염인·성소수자인권 등 다양한 ‘여행지’를 다녀볼 수 있었고, 여행 내내 아마도 머리보다는 가슴에 가까운 곳에서 ‘인권감수성’이라는 울림을 느꼈다는 점이 이 여행을 가장 기억에 남게 할 것 같기 때문이다.

 


공감은 국내 이 분야의 선구자로서 이미 공익·인권의 저변을 넓히기 위한 많은 노력을 해 왔고 앞으로도 분명히 그러할 것이다. 그리고 공감의 구성원들은 이곳보다 경제적으로 나은 삶을 가져다 줄 다른 직장에 갈 능력이 충분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간다는 보람 하나로 이 길을 걷고 계신 존경스러운 분들이다. 사실 공감이 수임의뢰를 받는 사건 중 상당히 적은 수만을 처리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인력의 한계, 더 근본적으로는 재정의 한계 때문인데, 이는 공익관련단체의 숙명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참으로 안타까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설령 공감에서 직접 일할 기회가 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일정한 수입원이 생기는 대로 약간의 돈이라도 기부를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마지막으로, 공익·인권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떠한 형태로든지 공감을 적어도 한 번은 만나고 느껴볼 것을 추천한다. 공감은 젊은이들과 소통하기 위해 인턴(6개월), 로스쿨 실무수습(2주), 인권법캠프(3일) 등 다양한 길을 열어두고 있다. 공감은 나처럼 공익·인권에 ‘관심만’ 있던 게으른 사람에게도 마음을 열고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주는 곳이니, 이 글을 읽고 조금이라도 가슴이 움직이는 분이라면 용기를 내어 공감에게 데이트 신청을 해 보시라.

 

 
글 _ 류정선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2기)

 

[모집] 2014 공감 인권법 캠프 참가자 모집 (예비법전원생 및 예비사법연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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