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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쿨 실무수습 후기] “발바닥”, 거침없이 세상을 밟다 - ‘장애와 인권 발바닥 행동’을 다녀와서 - 신병주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공감이 하는 일/로스쿨 실무수습

by 비회원 2012.01.31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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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 1월 11일, 실무실습 8일차. 훌쩍 시간이 흘러 이틀 후면 수료라는 생각에 어느덧 실습생들에게는 내무반 말년병장의 포스가 폴폴 풍기고 있었다. 사무실 근무도 실습생 10명의 개성 넘치는 실수담으로 지겨울 틈이 없었지만 오후에 유일무이한 외부활동인 “발바닥” 견학이 예정되어 있어 다들 소풍가는 아이들처럼 들떠있었다. 나를 비롯한 거의 모든 동기들이 각자의 스마트폰으로 “발바닥”을 검색해보았으나 우리가 얻은 결과는 온갖 형태의 발바닥 이미지들과 발바닥통증에 관한 정보들뿐...(나중에 집에 돌아와 PC로 검색을 했을 때 비로소 웹페이지를 찾을 수 있었다) 

 이렇듯 우리는 순백의 도화지 같은 상태(?)로 “발바닥”으로 향했다. 영등포구청역에서 내려 염변호사님을 졸졸 쫓아 골목골목을 돌아 아파트 단지 내의 어느 상가건물에 이르렀고 건물 3층, 간판도 없는 곳에서 “발바닥”을 만났다. 사무실에 들어가자마자 활기 넘치는 활동가분들을 만났고, 특기가 점거농성이라 말씀하시는 분들 앞에서 나는 괜시리 샌님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발바닥”에 대한 내 첫인상은 ‘자동문’이었다. 사무실의 공간들마다 자동문이 설치되어있는 것을 보고 문득 ‘와, 공감보다도 사정이 좋은 걸’이란 생각이 뇌리를 스쳐지나가기도 전에 눈에 들어온 것이 휠체어였다. 그 순간 이루 말할 수 없는 창피함이 엄습해왔다. 과하게 백지상태인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때문에 반사적으로 많은 것을 알아가고 싶다는 반성적 욕심이 생겼다. 


 정확한 명칭은 “장애와 인권 발바닥 행동”이다. 장애인들의 인권을 위해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뛰는 활동가들이 모인 곳으로, “발바닥”은 장애인들의 탈시설-자립생활운동을 중점적으로 해왔고 올해부터는 그 연장선상에서 장애인들의 주거마련에 관한 활동을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탈시설’이라는 개념이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낯설 것이다. 나 역시 변호사님들과 활동가분들로부터 설명을 듣기 전까지는 그것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에 대한 판단조차 서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일반인들이 쉽게 떠올리는 장애인들은 각종 시설에서 생활하는 시설장애인들이고 그들의 안위를 위해서 시설만큼 안전하고 최적화된 곳도 없을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시설이라는 허울 좋은 울타리 안에서 장애인들의 기본적인 자유에 대한 욕구, 인권이 억압받고 있으며 장애인들은 비장애인들이 별다른 자각 없이 누리는 지역사회에서의 일상과 자유를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서라도 누리고픈 일생의 꿈으로 여긴다. 우리 사회는 보호라는 미명 하에 장애인들을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그곳, 시설로 격리시키고 있고 그곳에 정부지원금을 책정하며 면죄부를 받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생리에 밝은이들은 일말의 사명감도 없이 시설을 짓고 인가를 받아 돈벌이가 되어 줄 장애인을 모집한다. 이것이 현재 장애인 시설의 실상이다. 물론 진정성을 가지고 장애인 복지에 힘쓰는 시설도 있지 않은가라고 반문하고 싶었지만 “발바닥”에서 실시한 ‘장애인인권시설 인권상황 실태조사’의 결과를 보고나니 더 이상 그런 희미한 희망에 기댈 수 없는 상황임을 부인할 수 없었다. 

 우리는 다 같이 모여 앉아 한 중증장애인의 탈시설 과정을 주제로 한 다큐영상 ‘선철규의 자립이야기 - 지렁이 꿈틀’을 시청했다. 짧은 영상을 통해 ‘탈시설’이란 주제를 너무도 확연하고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철규씨 특유의 유쾌함과 위트에 웃음이 나기도 했고 이제껏 마주하지 못했던 장애인 인권의 현주소와 그에 대한 나의 무지, 무관심을 확인하면서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했다.

 

 


 장애인 시설의 현황과 실태, 그 안에서 자행되는 인권유린에 대한 여준민 활동가님의 프리젠테이션을 들으면서 나를 비롯한 동기들은 시설장의 자격기준이 없는지, 법적인 감시장치가 없는지, 법적인 구제책이 없는지 등등의 어떻게 보면 답답하고도 무지한 질문들을 많이도 쏟아냈던 것 같다. 순간 “장애인복지법이란게 있지만 … 그걸로는 통하지 않아”라는 철규씨의 영상 속 외침이 떠오르면서 나 또한 법공부를 시작하면서 어느덧 법밖에 모르는 바보가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가슴이 덜컥했다. 로스쿨에 입학한 이래로 나름대로 다양한 경험을 하고자 했지만 기준이자 표준으로 삼은 것이 법이었고, 법뿐이었지 않은가 하는 반성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발바닥” 활동가분들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제도적 개선 등이 어떠한 간절함으로부터 시작되는지, 그 과정이 얼마나 힘겹고 외로운지, 그 전선의 최전방에 누가 있는지에 대한 인식을 할 수도 하려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비록 한 번의, 짧은 방문이었지만 단편적이고 편협한 사고방식으로부터의 탈출구를 하나 마련한 것 같아 안도감이 들었다. 

 이제는 자동문을 지나거나 장애인 복지시설이라는 간판을 보았을 때 이전과는 결코 같지 않은 감정을 느낄 것이라 확신한다. 나에게는 단순한 편의가 어떤 이들에게는 생존이고, 나에게의 일상이 어떤 이들에게는 일생일대의 꿈일 수 있다는 것, 그것을 느끼게 해준 “발바닥” 사무실에서의 그 뜨거운 창피함을 오래도록 품고 있고 싶다.

글_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신병주

 

[모집] 2014 공감 인권법 캠프 참가자 모집 (예비법전원생 및 예비사법연수생)

 

 공감  에세이집 '우리는 희망을 변론한다' 출간 - 박원순 시장, 신경숙 작가 추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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