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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자 인터뷰] 장애인에 대한 공감, 나눔은 나의 소명-교남소망의 집 황규인 기부자님

기부회원 이야기

by 비회원 2011.12.05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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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톨스토이는 “나 자신의 삶은 물론 다른 사람의 삶을 삶답게 만들기 위해 끊임없이 정성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는 것처럼 아름다운 것은 없다.”고 말했다.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삶을 위해 노력한다는 것은 정말 보람되지만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 쉽지 않은 길을 걸으며 아름다운 삶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있다. 자신의 일에 소명의식을 가지고 장애인들을 위한 삶을 살고 있는 황규인 기부자를 만나러 그의 일터인 교남소망의 집을 방문했다.

# 장애인들의 삶터 “교남 소망의 집"

황규인 기부자는 장애인들의 삶의 터를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교남소망의 집의 원장으로 일하고 있다. 우리의 첫 방문에 시설에 대한 소개를 시작하는 그의 모습에서 따뜻한 마음과 애정이 묻어났다.

“처음에는 여성들의 복지와 교육을 위한 일을 하는 곳이었어요. 80년도에 들어서면서는 여성의 사회진출의 폭이 넓어지면서 저희 같은 사회복지시설에서 여성을 교육할 필요성이 줄어들었고, 새로운 사회복지사업을 추진하게 되었습니다. 때 마침 UN의 권고로 장애인들에 대한 법이 만들어지고 있어서 장애인복지를 위한 사회시설로 전환하게 된 거예요. 당시만 해도 장애인복지사업을 하는 곳이 거의 없었거든요. 그래서 교남의 장애인복지 역사가 우리나라의 장애인복지의 역사라고 보면 될 거예요. 하드웨어적인 측면에서부터 이념적인 부분까지 그대로 딛고 왔다고 보시면 됩니다.”

1982년부터 시작된 교남소망의 집은 정신 장애인들을 위한 사회복지시설이다. 이곳에 입소한 장애인들은 삶을 살고 배우며 사회로 나갈 준비를 한다. 누구보다 가까운 곳에서 장애인의 인권을 위해 일한 황규인 기부자. 30년 가까이 한 곳에서 열정적으로 일하고 있는 그가 교남 소망의 집에서 일을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졌다.

“저는 유치원교사로 일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교회 권사님의 권유로 교남소망의 집에 오게 된 거죠. 금전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유치원교사로 일할 때가 더 나았어요. 돈을 생각했다면 하지 말았어야 했죠.(웃음) 아무튼 그렇게 81년 말부터 행정 업무를 시작했죠. 그때는 모든 게 충격이었어요. 그렇게 시작한 일에서 제가 전공한 유아교육이 이 곳 장애인들을 지도하는데 적합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아이들이 신체는 커져있어도 정신연령이 1살에서 4살이니까 영·유아기더라고요. 그래서 길을 바꾸었어도 잘해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선택은 저의 의지였지만, 처음부터 어떤 소명의식을 가지고 시작한 것은 아니었어요.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 것이 제 소명이었던 것 같아요.”

# 장애인이기 이전에 사람입니다.

1981년 장애인의 날이 선포된 이후 지난 30년간 장애인에 대한 복지가 개선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사회에 존재하는 장애인에 대한 불편한 부정적 인식은 많이 바뀌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가진 인식의 틀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에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모습은 다르지만 서로 같다’라는 생각을 하고 접근을 해야 하는데 ‘장애인은 우리와 다르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거든요. 그게 바뀌어야 해요. 장애인들도 장애인이기 이전에 큰 틀에서 사람이기 때문에 문화생활도 필요하고, 가정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야 해요.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장애인을 볼 때 사람이라는 부분을 작게 바라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장애인인데 왜 그렇게 해요? 장애인인데 그렇게 해도 되나요?’ 라는 질문을 하게 되는 거죠.”

황규인 기부자는 “장애인에 대한 법과 제도의 개선에 있어서도 장애 유형에 따라서 접근하는 방법을 달리 해야 한다”고 말한다.

“사회가 발전을 하면서 현재의 장애인 복지는 80년대에 비해 크게 성장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장애인에 대한 관점을 바꾸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지역사회에 장애인들이 일반인들과 같이 어울려 살아가면서 부딪치게 되는 것들을 보면서 참 아직은 힘들다는 생각을 했어요. ‘장애인은 이런 사람이야’ 라는 생각이 바뀌지 않으니까 물론 법이나 제도는 좋아지고 있지만 인식의 변화 없이 법이나 제도의 개선은 한계가 있거든요. 특히 장애인들도 장애에 따라 다르게 접근해야하는데 단순하게 법하나만으로 모든 장애를 틀 안에 매몰 시키는 것은 문제라고 생각해요.”

일반적으로 우리는 지적장애와 자폐성장애, 정상적 사고가 가능했던 신체적 장애를 정신장애라는 큰 틀에서 접근 하고 있다. 하지만 그 접근에 있어서 서로 다른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는 그 차이에 따른 법이나 제도적 접근이 달라야 할 것이다.

최근 영화 ‘도가니’와 관련해 사회복지사업법과 관련 제도를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도가니’를 통해 장애인과 사회복지 단체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 보다 높아진 이 때, 사회복지시설을 운영하는 그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최근 ‘도가니 법’과 관련된 사회이슈 등을 보면서 법적인 해결책만으로는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도가니문제는 도가니와 관련해서 법적으로 해결할 부분이 있는 것이죠. 하지만 가장 좋은 해결책은 장애인들이 집에서 살고 이웃에서 같이 살아가는 거예요. 그래서 장애인들이 사회 속으로 들어가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장애인의 인권 보호를 위한 울타리

장애인들의 울타리인 교남소망의 집을 운영하고 있는 황규인 기부자. 그는 공감을 ‘인권을 위한 울타리’라고 말한다. 기부자와 공감은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었을까?

“처음부터 공감을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에요. 2002년이었나? 저희 시설에서 지내는 장애인 중 한 명이 월급을 받아왔어요. 그래서 그 돈을 가장 객관적으로 투명하게 관리하고 쓸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중 변호사를 찾게 되었어요. 수임료를 줄 수 없는 상황이어서 자원봉사 변호사를 찾고 있었고요. 아름다운재단을 알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공익변호사 파견 사업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도움을 요청했어요. 그 때 파견되셨던 분이 염형국 변호사님이고, 그 분을 통해서 공감을 알게 되었죠. 그 때부터 현재까지 공감과, 염변호사님이 도움을 주고 계세요.
장애인 인권에 대해 늘 자문이 필요하거든요.”

교남소망의 집도 기부를 받는 입장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받고 있는 봉급에 대해 사회 한 사람으로서 어딘가에 기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황규인 기부자. 그는 염형국 변호사에게 도움을 받은 감사한 마음과 공감이 기부자가 없어서 멈추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기부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장애인뿐만 아니라 이주노동, 아동 등 다방면에 구석구석 사회제도의 큰 틀에서 인권을 바라보고, 정말 법이 필요하고 보호가 필요한 곳에 공감이 있는 게 참 고맙고 든든해요. 공감의 활동이 더 확대되었으면 좋겠어요.(웃음)”

몇 년 전 한 검색사이트의 설문조사에서 장애인들은 특별한 시설을 통해 보호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꽤 다수를 차지한 것을 본적이 있다. 하지만 황규인 기부자와의 인터뷰를 통해서 아직 우리 사회는 장애인들을 보호한다는 미명하에 그들을 따로 보호시킴으로써 오히려 그들을 우리와 멀어지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선시대에는 장애인들이 삶 속에 함께 지내왔다고 한다. 오늘날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이분법적인 사고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 되물어 본다. 물론 보호를 필요로 하는 장애인들도 존재한다. 하지만 그들을 위한 시설과 제도보다 가장 중요한건 기본적으로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인식이 바뀌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곳에 들어온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행정적으로 퇴소를 하게 되도 그 관계를 지속하고 있는 황규인 기부자. 그 모습에서 그가 가진 장애인들에 대한 사랑과 공감에 대한 소명의식을 느낄 수 있었다.

“마음을 뺏기지 않는 세상... 돈이 없어도 살면서 정신적으로는 마음을 뺏기지 않는 세상이었으면 좋겠어요. 가난하다고 해서 마음까지 피폐해지면 안되잖아요.”

소중한 인터뷰를 허락해주신 황규인 기부자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글 _ 이인환 (공감 14기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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