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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자 인터뷰]나눔, 사람사랑의 실천 - 박정길 기부자

기부회원 이야기

by 비회원 2011.11.08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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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훈훈하다’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면 ‘날씨나 온도가 견디기 좋을 만큼 덥다’ 혹은 ‘마음을 부드럽게 녹여 주는 따스함이 있다.’ 라고 나온다. 딱 그런 날이었다. 하늘도 바람도 거리도 단풍도 그러했고 그날 만난 박정길 기부자는 더욱 그랬다. 큰 키에 선한 인상, 더군다나 공감이 한 살일 때부터 인연을 맺은, 마음까지 훈훈한 진짜 ‘훈남’과의 인터뷰가 시작됐다.


기부를 마음에 담다

박정길 기부자는 공감의 초창기 시절부터 인연을 맺었다.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았던 공감이란 단체에 ‘특별히’ 기부를 결심하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이제 사회의 일원이 됐다는 생각에 기부를 하게 되었다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사실 막연한 생각으로 실천으로는 옮기지 못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신문을 읽다가 아름다운 재단이라는 문구가 눈에 띄더라고요. 아름다운 재단이라는 이름이 좋았어요.(웃음) 그래서 홈페이지를 들어가 보게 됐는데 그 안에 여러 가지 분야가 있더라고요. 사실 큰돈도 아닌데 어디에서 시작해야 될지 고민이 됐어요. 그때가 아마 공감이 처음 시작할 때였을 거예요. 변호사 분들이 상근으로 일한다는 걸 알고 많이 놀랐어요. 사법고시 합격이라는 게 정말 힘든 일이고 신분의 수직적 상승을 이룰 수 있는 굉장히 큰 관문을 통과한 거잖아요. 그런데도 사회를 위해 봉사하겠다고 나서는 그 분들을 보니 저도 그런 사람들과 같이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분들이 너무 존경스럽더라고요. 그래서 공감을 선택하게 됐죠. 요즘도 가끔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는데 점점 더 영역도 다양해지고 기사도 많아지고 괜히 좋더라고요. 잘 골랐단 생각이 들어요.”
  

더불어 공감의 한 살 시절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공감을 후원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궁금했다. 그의 기부는 가족에게 영향을 받았다. 장모님에서부터 그의 친척 형까지 그를 기부하도록 이끌었다.

 “지금은 장모님이시죠. 연애시절에 영향을 받았어요. 월드비전을 통해 결식아동을 후원하고 계시거든요. 편지도 오고 사진도 오잖아요. 그런 정기물 오는 걸 보면서 저도 기부라는 게 하고 싶었죠. 기부를 시작한 주말에 아내(그땐 여자 친구였어요)에게 이야기하니 잘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저희 친척 형 얘긴데 그 집에 가면 벽에 한 10명 정도 되는 후원아동의 사진이 걸려있어요. 제가 형수보고 너무 대단하다고 하자 형수는 오히려 부끄러워하더라고요. 그런 모습들이 기부하는 저 스스로를 대견하게도 하고 쑥스럽게도 하죠.”

 더불어 TV에서 우연히 보게 된 공감의 활동도 그의 후원에 큰 힘이 되었다. 공감은 항상 기부자로 하여금 공감을 떠나지 못하게 하는 일들을 한다고 이야기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소라미 변호사에요. TV속에서 흑인 이주여성을 위해 인권변론을 하고 계셨는데 제 기분이 너무 좋았어요. 인상도 좋으시고 너무 존경스러웠죠. 아내랑 처제에게 내가 기부하는 곳이 바로 저기라고 얘기하면서 혼자 신나했어요. 그렇게 공감이 저를 항상 잡아 주시더라고요. 그래서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어요.”


장애를 바라보다

소라미 변호사의 인권변론이 인상 깊었다는 대답에 기부자가 특별히 관심을 갖고 있는 인권 분야를 물어보았다. 그는 공감의 활동영역 모두에 관심이 있지만 특히 장애가 있는 사람들에게 마음이 간다고 말했다. 학창시절, 미국에서의 경험은 그에게 장애 인권에 관심 갖게 했다고 한다.

“제가 대학교 4학년 때 미국에 간적이 있어요. 스키장에서 대학생 인턴 활동을 하는 거였는데 장애인들도 스키를 타러 오더라고요. 심지어 지방 소규모 도시라 인구수가 많지 않은데도 여느 길거리에서 장애인을 너무 쉽게 만날 수 있는 거예요. 이 나라는 선진국인데 왜 이렇게 장애인이 많을까 생각했어요. 병을 잘 못 고치나 이런 생각도 들었죠.”

한국에 돌아온 후에도 기부자는 장애 인권에 대해 고민했다고 한다. 그 문제에 대하여 사촌 형과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를 통하여 고민에 대한 답변을 얻었다.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우리나라에도 장애인은 많지만 밖으로 나올 여건이 안 될 뿐이라는 것.

“생각해보니까 그렇더라고요. 정말 많아요. 일가친척 중에 아마 한 두 분씩은 다 있지 않나요. 근데 밖으로 나올 여건이 안 되는 거예요. 미국에서의 경험인데 장애인이 버스를 탈 때면 시간이 지체되기 마련이잖아요. 근데 바쁜 출퇴근 시간이어도 다 이해를 해요. 아무도 불평을 안 하고 버스 기사분이 안전장치도 직접 매주고. 이건 진짜 인식의 차이가 큰 거거든요. 우리나라는 하다못해 점자 블록도 엉망으로 돼있죠. 얼마 전 기사를 보니까 점자 블록은 시력이 약한 사람 눈에 잘 띄어야 되는데 미관을 위해 보도블록이랑 같은 색깔로 한 경우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서울시의 도시경쟁력이 좋아졌다고는 해도 그런 근원적은 부분에서 많이 소외되어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 아팠어요. 그래서 저는 ‘장애’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있을 때 공감이 도와주시면 좋겠어요.”
 


아이를 위한 세상을 꿈꾸다

장애 인권에 관심이 많은 기부자를 보고 있으니 그가 꿈꾸는 세상이 궁금해졌다. 그리고 그런 그를 살게 하는 힘은 어디에 있을까. 이 물음에 기부자는 환한 미소를 보였다. 현재 9주된 으뜸이(태명)가 그를 살게 하는 힘이라고.

 “병원에 다니면서 어떻게 하면 아이를 잘 낳을 수 있을까 어떤 아빠가 될까 늘 고민하죠. 전 굉장히 자식을 사랑하는 아빠가 되고 싶어요. 부모가 자기를 사랑한다는 것을 아는 아이로 키우고 싶죠.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그 마음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아빠가 됐으면 좋겠어요. 지금 현재, 저를 살게 하는 힘은 으뜸이고 그런 으뜸이가 잘 살 수 있는 세상이 되면 좋겠어요.”

 
아이 얘기를 하며 미소 짓는 기부자의 얼굴이 빛났다. 으뜸이도 아빠를 닮아 사랑을 아는 사람으로 자라나겠지. 인터뷰 내내 기부자에게서 느꼈던 겸손하고 따뜻한 마음은 곧 태어날 아이에게도 분명히 전해질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분명 좋은 아빠가 될 거고 그의 아이 역시 ‘사랑’을 아는 아이로 자랄 것이다.

 박정길 기부자는 인터뷰를 마치면서 공감의 인턴들에게도 격려를 잊지 않았다. 단언컨대 공감에서의 경험이 자양분이 돼서 더 크게 성장할 것이라는 그의 말에서 공감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다. ‘사람사랑’이라는 말을 좋아한다는 그에게 있어서 나눔의 의미도 ‘사람사랑의 실천’ 이라고. 사람이 사랑받는 세상이 더 빨리 오길 기대해 본다.


글_ 남효영(공감 14기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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