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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약서의 본색 - 양심과 표현의 자유 제한을 통한 사회정치적 효과

공감이 하는 일/자원활동가 이야기

by 공감이 2011.07.26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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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면 죽는다? 말하고 죽으련다.

16세기 나폴리의 한 수도원에 코페르니쿠스의 《천체의 회전에 관해》라는 책을 읽고, 태양중심설이 진리라고 확신한 사람이 있었다. 도미니크회 수도사였던 그가 이단의 논리라 금지한 이론을 공부하니 주변 사람들은 그를 철저히 감시했고 그는 130여 차례나 교회법을 어긴 것으로 고발당했다. 그는 수도원을 탈출했고 여러 나라들을 떠돌다가 프랑스 등지에서 강의를 했는데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되는 것은 모두 의심의 대상입니다’라는 기조아래 기존 학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펼쳐 젊은 학생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그 즈음 1572년 8월 23일부터 24일에 걸쳐 약 3,000명의 위그노 교도들이 학살당하는 사건이 있었는데 그는 이 장면을 목격하고 무척 두려워했지만 결코 교회와 타협하지 않았다. 결국 종교지도자들은 그를 이단자로 재판하고 6년 동안 수감시켰는데 목숨을 지키기 위해 생각을 바꾸라고 찾아온 도미니크회 수도원장에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취소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결국 그는 1600년 2월 17일 수십만의 군중이 보는 앞에서 화형식을 당했다. 쇠사슬에 묵힌 채 장작불에 타면서 그가 외친 마지막 말은 ‘우주는 무한하며, 무한한 수의 세계가 있다!’였다. 그의 이름은 지오다노 브루노(Giordano Bruno, 1548~1600)이다.

지구중심설 하면 떠오르는 인물은 갈릴레이 갈릴레오일 것이다. 그가 10대일 때 위그노 대학살이 있었고, 태양중심설의 확신을 가지고 연구할 무렵엔 브루노의 화형식이 있었다. 1633년 6월 22일 그의 나이 69세 되는 해에 갈릴레오는 종교재판소로부터 사형을 언도 받았는데 교회는 그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었고 그는 그 기회를 잡았다. ‘교회를 진리로 인정하고 가르치는 모든 것을 믿으며, 그에 반하는 태양 중심설과는 결별하고, 앞으로 이러한 내용의 것을 말로나 문서로 발표하지 않을 것을 약속합니다.’ 이 선서문을 낭독하고 풀려나오면서 한 말이 우리에게 익숙한 ‘그래도 지구는 움직인다!’이다.

교회가 준비한 선언문을 낭독하지 않아 화형식에 처해진 브루노의 죽음은 갈릴레오에게 어떤 의미를 남겼을까.


카이스트, 학교 측이 원하는 규정준수란…?

올해 초 카이스트 관련한 기사를 보면 경영철학이 교육철학을 대신할 때 얼마나 비극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그 중에서도 사실상 학생들의 정치활동을 제한하는 서약서에 관해 논란이 있었는데, 카이스트에 입학하는 신입생들은 “본인은 카이스트 재학 중 학칙 및 제 규정을 성실히 준수하고 교내외 활동에 있어서 학교의 승인을 받지 않은 집단행위 등 학생 본분에 어긋난 행동으로 우리학교의 명예를 손상했을 경우 어떠한 조치도 감수할 것을 보증인 연서하에 서약한다.”는 내용의 서약서를 작성해야 한다고 한다.

학교 측에서는 “학생활동을 제한하기 위함이 아니라 기관의 규정을 준수한다는 서약서”라면서, “임의로 학생을 제재할 수는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지만 (머니 투데이 기사 참조) 지난 2008년 촛불집회 당시 ‘카이스트 참가단’으로 참석한 학생은 이 서약서에 근거해 위신 손상을 이유로 징계 경고를 받고 주기적으로 감시를 받았다고 하며, 2009년 말에는 한 학생이 한 인터넷 포털에 ‘카이스트 서남표 총장과 학교의 횡포를 고발합니다.’라는 글을 올렸다가 학교 측으로부터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당했다고 한다(노컷뉴스 기사 참조). 임의로 학생을 제재할 수는 없다고 하지만 사실상 임의로 학생을 제재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이른바 ‘사상범’이라는 것

이러한 정치활동을 제재하는 근원을 따라가 보면 일제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는 반제국주의 혁명운동의 정신을 압살하기 위해 1936년 ‘사상범보호관찰령’을 시행한다. ‘사상범’이 일본정신을 체득하여 반제국주의 사상을 버리고 일상생활에서도 철저한 황국 신민이 되지 않는다면 형기가 끝나더라도 보호관찰 대상이 되어 항시적으로 감시하는 것이었다.

이처럼 일제시대에 민족 해방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사용된 제도가 한국에 법의 모습으로 부활한 것은 박정희 정권 시기에 국회에서 날치기 통과된 ‘사회안전법’이다. 사상범에게 전향을 강제하고 활동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사용된 이 법은 1998년 공식적으로 폐지되었으나 이 법의 대체물인 준법서약제가 새로이 문제가 되었다. 당시 박상천 전 법무부장관은, 사상을 바꾸라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현행 법률을 지키겠다는 뜻을 확인하는 절차일 뿐이라며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그러나 많은 인권 운동가들은 법을 어긴다면 처벌을 할 일이지 미리 법을 준수하겠다는 의사를 강요할 수는 없으며, 이러한 서약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를 석방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양심과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반발하였다. 현재 준법서약서는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존중하겠다며 폐지되었으나 해외에 체류 중인 ‘반체제’인사들은 제외하고 있어 여전히 문제적이라고 할 수 있다(연합뉴스 참조).

이렇게 ‘조직’이 구성원들을 향해 어떠한 사상과 태도를 금지함으로써 다른 사상과 태도를 사실상 내면화하도록 하는 서약서가 하나 더 있다. 외국인 귀화 심사 시 ‘자유민주주의체제 인정 서약서’ 제출을 의무화하겠다고 법무부가 2011년 업무계획으로 발표한 것이다. 국내에 거주하는 이주민들이 100만 명을 넘어섰고 이 중 많은 이주민들이 베트남, 중국, 북한 등 사회주의체제 국가 출신이다(한겨레 기사 참조). 이 중에서 결혼이주민과 그 자녀들이 30만 명 정도이고, 이 중 88%가 결혼이주여성이다. 천안함, 연평도 사건 등으로 급속히 퍼진 안보위기의 대응책으로 마련된 제도라는 점에서 정부의 사회주의체제 출신들에 대한 불안을 엿볼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체제 국가의 시민들은 사회주의 사상을 가지지 못하는 것인가? 한 국가의 국민으로서 그 국가의 법을 준수할 의무와 책임을 논하는 것과 어떠한 사상을 가질 것인지를 강제하는 것은 전혀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그들이 정말로 약속 받고 싶은 것은…?

이러한 서약서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다. 하나는, 구성원의 자격과 조건이 해당 구성원 사이에서 논의를 거쳐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혹은 교회나 학교)의 권력으로 결정된다는 점이다(지금도 일부 여중․여고에서 행해지는 순결서약식은, 혼전순결을 지키는 여성이 규범적이고 ‘가치’있는 여성이라고 주입시킨다). 자유, 민주주의, 국가에서 말이다.

다른 하나는, 처벌의 본보기를 통해 국가의 명령을 내재화하게 되는 효과이다. 이안지영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연구활동가는 “이러한 서약서를 신설하겠다고 공표함으로써 발생할 한국 사회 내부의 사회정치적 효과”에 대해 언급하였는데, 이는 구성원이 되기 위해 더욱 적극적으로 명령을 내재화하는 한편, 구성원으로 남기 위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주체적 종속의 기제를 경계해야 할 것이라는 점을 시사해준다.

갈릴레오는 위그노 대학살을 지켜보며 교회의 권위에 도전하는 그 어떤 것도 용납하지 않는 교회의 무자비함을 배웠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비록 자연과학적 진실을 밝히는 부분에 관한 내용임에 불과해도 그것이 교회의 권위와 직결되는 한 예외란 없다는 것을 브루노의 화형식을 통해 확인했을 것이다.


역사, 그리고 기억.

종교재판 이후 갈릴레오는 교회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네덜란드에서 책을 출판해가며 연구활동을 이어갔다. 꾸준히 이어진 그의 연구활동을 통해 그의 진의가 무엇이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갈릴레오의 선언문 낭독이 브루노의 화형식 처형보다 더 유명한 것은, 브루노의 화형식 처형이 갈릴레오의 학자로서의 업적과는 별개로 권력이 삭제하고 싶은 역사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널리 회자되어 전해지고 기억하게 놔둘 수 없는 없애야 할 역사. 그렇기 때문에 역사는, 기억은, 그를 매개하는 언어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상에 제약이 많은 나라, 문제의식을 가져야 하는 지점은 여기이다.

글_연화(11기 인턴, 언니네트워크 편집팀 활동가)


[참고문헌]

손영운. 2006. 『청소년을 위한 서양과학사』. 두리미디어. 서울.
백춘현. 2010. “수행 모순 원리와 담론 윤리”. 「도덕윤리과교육연구」.
노컷뉴스. 2011. “[단독] ‘잇단 자살’ 카이스트에 눈가리고 입막는 ‘서약서’ 있다”. 4월 12일자 http://goo.gl/CaJyi
머니투데이. 2011. “카이스트 서약서, 대부분의 대학이 쓴다고?”. 4월 12일자 http://goo.gl/Vlldr
연합뉴스. 2003. “준법서약제 폐지 `반쪽짜리" 논란”. 7월 9일자 http://goo.gl/lpg7G
한겨레. 2011.“[왜냐면] 귀화 외국인에 대한 ‘서약서’ 강요/이안지영”. 1월 5일자 http://goo.gl/S4rJv

[이미지 출처]

1. http://www.gettyimageskorea.com
2. 노컷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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