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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문위 칼럼] 85호 크레인과 법-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 박래군 활동가

공감의 목소리/공감통신

by 비회원 2011.07.12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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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이틀 남았다. 2차 희망버스가 얼마나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을 향해 갈지 아직은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지만, 2차 희망버스는 출발할 것이다.

거기 한 사람이 있다. 아니 그 사람과 함께 하는 많은 이들이 있다. 35미터 높이의 크레인에서 6개월 넘도록 버티고 있는 그 사람. <소금꽃나무>의 주인공 김진숙이다. 그는 손만 대도 쩍쩍 손이 달라붙는 그 한겨울에 그곳에 올랐다. 모두가 쇳덩이로 이루어진 겨우 몸 하나 누일 만한 공간밖에 없는 그 크레인에서 그는 스마트폰으로 세상과 소통하며 버텨왔다. 그의 동료였던 김주익이 129일 만에 목을 맨 그 곳에서 방물 토마토도 키우고, 치커리도 키우며 살고 있다.

그게 사람이 사는 것일까? 이제는 전기마저 끊긴 곳이다. 밥이며, 속옷가지들마저 철저한 검열을 받아야 겨우 올릴 수 있는 곳에서, 벼락과 천둥과 비바람을 고스란히 이겨내며 거기서 살고 있다. 등짝에는 소금꽃나무가 피어나는 가장들과 그 가족들의 일상을 위해서, 더 이상은 자본가들의 폭력에 억울하게 내쫓기는 설움을 끝내기 위해서다.
2차 희망버스가 내려가는 날이 가까워오니 그곳은 더욱 살벌해졌다. 공장 담장에는 이미 윤형 철조망이 둘러쳐져 있고, 용역들과 경찰이 철통같은 경계를 서고 있다. 크레인 밑에는 에어매트와 그물이 설치되어 있다. 언제고 침탈이 있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지금의 상황으로 봐서는 무지막지한 한진 자본을 이길 힘도 없어 보인다. 공권력과 법은 이미 한진의 노예로 전락했다. 심이어 한진중공업 회장은 국회 청문회에 출석 요구를 받자 출국해버렸어도 그를 강제하지 않는다.

법은 그곳에서 더는 희망이 아니다. 법은 철저하게 가진 자들의 편이다. 단체협약을 어기고 정리해고를 단행했던 회사 측에 어떤 책임도 묻지 않은 채 그들의 손만 들어주는 거수기가 되었다. 그래서 정리해고 다음날 174억 원의 배당금을 나누어 갖는 돈 잔치를 벌였음에도 법원은 그 정리해고가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가 있다고 인정하고, 잘못된 정리해고에 저항하는 노동자들에게 불법 딱지를 붙이고 있다. 불법 점거이니 하루에 백만 원씩 내라고도 하고, 강제로라도 퇴거하라고 승인한다. ‘집행’이란 두 글자가 선연한 조끼를 입고 저항하는 노동자들을 거침없이 끌어낸 집달관들과 그 집행자들, 용역이 아무리 폭력을 휘둘러 늙은 노동자들을 짓밟아도 눈을 감아 버린 경찰은 1차 희망버스에 나섰던 이들에게 출두요구서를 발부한다. 매일 경찰특공대가 투입할 것 같은 긴장을 유발하고 있다. 그는 6개월도 넘도록 쇠파이프를 놓지 못하고 잠들었고, 지난 6월 11일 1차 희망버스가 다녀간 이후는 사시미 같은 신경줄 땜에 한 잠도 제대로 잠을 못 이루었다고 하지 않는가. 그리고 특공대가 진압하러 오면 그곳에서 뛰어내리겠다고 한다. 위험천만한 일촉즉발의 긴장이 너무 힘들다. 

합법과 불법의 경계는 분명하다. 자본이 하면 모두 합법이고, 노동자가 하면 불법이다. 그러므로 노동자와 연대하는 것도 모두 불법이다. 법이란 이름으로 누구도 볼 수 있게 폭력을, 거침없는 폭력을 휘두른다. 그것은 한진만이 아니다. 유성기업에서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노동이 가당키나 한 것인가. 노동은 불온하다. 노동자는 노예다. 노예기 인간의 꿈을 꾸었으니 법은 그 꿈을 꾼 노동자를 단죄한다. 어떤 불만도 없이 노동만 하라고 한다. 김진숙은 2003년 김주익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의 장례식 추모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민주노조하지 말 걸 그랬습니다. 노예가 품었던 인간의 꿈, 그 꿈을 포기해서 김주익 동지가, 그 천금 같은 사람이 되돌아올 수 있다면, 그 억센 어깨를, 그 순박하던 웃음을 단 한번이라도 좋으니 다시 볼 수만 있다면, 그렇게라도 하고 싶습니다.”

헌법재판소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속에 사유재산제를 포함하는 시장경제를 포함시켜 유권해석을 내렸던 1990년 이후 노동자들의 정당한 항의는 늘 회사의 영업을 방해하는 불법행위였다.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소유권 사상으로 무장하고 있는 법원은 합법적인 파업이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몰리고 몰린 노동자들의 파업 때마다 사적폭력집단인 용역의 살천스러운 폭력이 기승을 부린다. 그런 폭력으로 만신창이가 된 노동자들을 경찰은 역시 폭력으로 연행하고, 검찰은 기소하고, 법원은 검찰의 기소대로 중형을 선고한다. 그뿐인가. 회사는 노조에 수십억에서 수백억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면 법원은 이를 그대로 인정한다. 그러면 노조와 노조원들은 조합비와 임금마저 압류 당한다. 집안은 파탄 나고, 가정은 깨져 나가고, 노동운동을 한 것을 원망하면서 목을 매는 노동자들이 줄을 잇는다. 이게 법인가. 법은 왜 존재하는가. 아예 법이 없으면 더 나을 것이 아닌가. 법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권리, 노예 상태의 노동자의 신세를 끝내기 위한 김진숙의 노력과 희생이 가엽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하지만 주저앉을 수는 없지 않은가. 지금 희망은 연대밖에 없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한진중공업과 85호 크레인으로 접근을 막으려 발버둥치는 한진자본과 공권력과 법에 맞서서 김진숙을 지키고, 한진 노동자들을 지키는 일은 2차 희망버스를 타는 일이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한진중공업으로 가는 일이다. 이미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도보로 매일 43킬로미터를 걸어서 내려가고 있다. 아마도 2차 희망버스 다음에는 더 큰 연대를 만들어야 하지만 지금은 희망버스를 타는 일이 우선이다.

법이 외면한 인간의 꿈, 인간의 권리를 위해서. 희망의 버스에 같이 올라타자. 같이 내려가 김진숙을 지지하고, 한진중 노동자들의 정당함을 입증시키자. 아마 거기서부터 법의 정의와 법의 가치, 인권의 가치가 새로 시작될 것이다. 가장 처참하게 무시된 현실에서 인권의 꽃은 더욱 빛을 발해왔던 역사를 믿자.

글_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상임이사/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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