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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눈물을 흘린다

공감의 목소리/공변의 일상

by 비회원 2011. 3. 4.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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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눈물이 많다.

어렸을 때도 심하지는 않았지만 울보였던 것 같고.

영화, 드라마, 소설을 읽다가도 찔끔거릴 때가 많고.

사람과 대화를 나눌 때도 뭔가 통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면 눈에 눈물이 고인다.

 

공감에서 일하면서 말을 잇기 어려울 정도로 눈물이 줄줄 흘러내린 적이 세 번 있다.

 

처음은 인도 미조람주 아이졸에서.

버마 내 한국기업의 가스개발이 이루어지면서 군대가 마을에 주둔하게 되고

토지 등 재산이 강제수용되고, 강제노동이 이루어지고,

주민들은 버마-인도 국경지역까지 도망쳐서 기초적인 의식주조차 구하기 어려운 난민촌의 난민으로 전락했다.

첫날은 어른들을 인터뷰하고 둘째 날 아이들을 인터뷰했다.

어린 나이에도 강제노동에 시달리고 부모나 주민들이 군인들에게 폭행당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함께 갔던 한 활동가가 물었다. (나는 왠지 잘못된 질문이라는 느낌이 있었다.)

“이곳에도 한국 드라마가 유행인 것 같은데 어떤 드라마가 가장 재밌니?”

돌아 온 대답.

“텔레비전이라는 것을 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데요...”

울컥. 아이들에게 눈물을 보이지 않기 위해 잠시 밖으로 나가야했다.

가져간 것은 없고 필통 속에 있던 펜을 모두 나눠줬다.

 

두 번째는 필리핀 마닐라 인근 까비떼 경제특구.

한 한국기업이 노동조합을 만들고 단체협상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을 모두 해고했다.

필리핀 대법원에서도 그 노동조합의 합법성을 인정했지만 회사는 단체협상에 임하지 않았고 이에 항의하자 작업장 무단이탈 등의 사유로 100여명에 대한 집단해고를 감행했다.

회사 앞 농성장이 있었는데 하루는 밤에 여성 두 명이 지키고 있었다.

괴한이 들이닥쳤고 손발을 묶고 입을 틀어막고 경제특구 밖에 시궁창에 이들을 쳐 넣었다.

회사 측을 대리하는 변호사가 그 회사의 경비용역을 따낸 지 며칠 되지 않았고 이들이 버려진 곳 바로 건너편은 그 변호사가 운영하여 경비업체 건물이었다.

함께 갔던 한 변호사가 물었다.

“그렇게 버려졌을 때 무슨 생각이 들었나요.”

(나는 그들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과연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고민했다고 말할 줄 알았다.)

납치됐던 두 분 모두 같은 이야기를 했다.

“이제 농성장은 누가 지키나. 농성장에 빨리 다시 돌아가서 농성장을 지켜야 하는데...”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고, ‘사람’이 아니라 ‘사안’을 바라보고 있었던 내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세 번째는 2009년 용산 참사가 있었던 다음 날.

출근하는 버스에서 철거민 사망 소식을 접했다. 이건 정말 아니다. 정말.

다른 공감 구성원과 단체들이 대책회의를 하고 있는 곳을 찾았다.

공감 변호사 3명이 역할 분담하여 체포된 철거민들을 접견하고 조사를 참관했다.

저녁.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시신을 보려는 유가족들을 경찰이 가로막고 있다고.

경찰은 검찰 지시가 있었다고 하고 검찰을 지시내린 바 없다고 하고.

경찰과 실랑이를 하고 검찰에 계속 전화하고.

새벽 1시 유가족과 함께 영안실을 들어갔다... 그리고 새벽 4시 다른 유가족과 함께 다시 영안실로...

다음날 대한변협 인권위원회가 있었다.

인권위원으로 회의에 참석했는데 조금 늦게 도착하니 용산 사태가 안건으로 올라 열띤 논의가 이어지고 있었다.

불법행위에 대해 인권위가 어떤 일을 한다는 것이 좀... 재개발 정책에 대한 점검은 필요하다... 나중에 좀 더 논의하자...

한 마디 해야 할 것 같았다.

“사람이 죽었습니다... 유가족들로 하여금 죽은 가족의 시신조차 못 보게 하는 것은 정말 아니지 않나요...”

어른이 되고 나서 여러 사람 앞에서 그렇게 울어 본 적은 처음이었다.

 

전화가 온다.

60세가 넘은 어르신.

옵션거래를 했는데 이러저러한 부당한 경우를 당하고 하소연할 곳이 없어 공감에 전화한다.

돈은 없고 상대방은 대기업이고 대형로펌 변호사 3명이 있다.

공감에도 기준이 있어서 공익성과 경제사정을 검토하여 지원 여부가 결정된다고 안내한다.

마지막 실오라기 같은 희망은 가지고 공감에 전화한 것이고

지원기준에 해당하는지는 알아보고 분신해서 죽더라도 죽어야겠다고 이야기한다.

내용을 보내주시면 검토하고 연락드리겠다고 이야기하고

혹시 다음에 연락하실 때는 저에게 연락하라고 하고 이름과 변호사 신분을 밝힌다.

그리고...

이 어르신, 갑자기 엉엉 울기 시작한다.

변호사와 직접 통화한 것이 감격스럽다고, 직접 통화해줘서 고맙다고...

 

뭔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됐다. 언론은 연일 검찰의 로스쿨생 임용에 대한 사법연수생들의 집단반발을 다룬다. 잘못된 의제 설정(agenda setting)에 정부는 손 놓고, 언론은 덩달아 춤추고, 우리는 멍하니 있다. 어르신의 눈물, 나는 그것이 법과 사람에 대한 의제 설정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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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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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3.06 12:16
    또 다시 학기가 시작되었고, 또 다시 저는 달릴 준비를 하며 얼마나 달려야 하나 언제쯤은 쉬어줘야 버텨낼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로 황망해졌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런 눈물을 흘릴 수 있는 변호사가 되는 길이라면 이 막막한 터널도 기꺼이 감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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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3.23 00:14
    공감 인턴 하는 중에 저 어르신 같은 분들이 정말 많으셔서.. 많이 놀랐고 참..어찌해야 할지 죄송스러운 마음만 가득했지요.. 그래도 대한민국에 공감같은 곳이 있어서 참 다행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