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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회] 법과 젠더 후기1 - 이유정 변호사님

공감이 하는 일/공감 인권법 캠프

by 비회원 2011. 2. 22.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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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과 젠더 강연 후기> 


왜 법에서 여성을 말하는가? 강의를 처음 시작하며 이유정 변호사님께서 던진 화두였다. 세상 인구의 절반이 남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굳이 여성만을 중심으로 하는 “법여성학”의 존재를 논할 필요성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실제로 변호사님께서 여러 강연을 하시면서 받은 질문 중에는 어째서 법여성학은 존재하면서, 법“남성”학은 존재하지 않는가와 같은 질문이 있었다고 하셨다.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하여 강의는 법이 과연 객관적이고 공정하며, 비정치적인가에 대한 논의로 이어갔다. 학부시절부터 나에게 있어서 법이란 굉장히 객관적이며 누구에게도 치우치지 않는 어떤 하나의 기준과 같이 여겨졌다. 즉, 어떤 것이 법에 명시되어 있지 않은 것이라면 곧 그것이 무언가 중요하지 않거나 충분히 공정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강의를 듣다보니, 이러한 법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가 조금은 섣부른 판단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강의에 소개된 예를 들자면, 우리나라의 근로기준법 제2조 제1항에는 근로자란 직업의 종류와 관계없이 “임금을 목적으로” “사업이나 사업장에 근로를 제공하는 자”라고 명시되어 있다. 이는 대부분의 여성들이 수행하고 있는 가사노동에 대하여는 단 한마디도 언급하고 있음을 의미했다. 또한 노동법은 그 자체로 하루 평균 8시간을 직장에서 근무하는 남성 노동자에 맞도록 설계되어 있고, 가사와 육아 역시 소홀히 할 수 없는 여성 근로자와는 괴리가 있는 것이었다. 이처럼 법률은 외관상으론 아무 문제가 없는 듯 보이지만 법체계의 기반 자체가 남성의 경험을 토대로, 남성 중심적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여성주의의 관점에서 법현실을 바라보는 법여성학이 대두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이러한 남성 중심적 법체계에 대항하여 우리나라의 여성주의 법학은 여성의 경험을 중시하기 시작하며 천천히 발전해왔다. 변호사님께서는 기존의 법률이 여성들의 경험을 외면하고 남성 위주로 구성되어 왔기 때문에 여성의 경험을 드러내는 것이 바로 여성주의 법학 발전에 가장 핵심적인 촉매였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 상관관계를 뒷받침하기 위하여 직장내 성희롱 문제의 포문을 열었다는 “서울대 실험조교 사건”에 대하여 말씀해 주셨다. 이 사건은  실험조교인 여성에게 소속교수인 남성이 기술교육을 빙자하여 교육과 무관한 신체접촉을 반복하고, 산책데이트를 하자고 요구하면서 옷을 자신의 연구실에서 갈아입으면 된다고 말하거나, 조교의 땋은 머리를 잡아당기면서 시골처녀같다고 하거나, 단둘이서 입방식을 하자고 말하거나, 자신의 사무실로 불러 아래위를 훑어보는 등 지속적으로 성희롱을 하였다는 주장에 대한 사건이었고, 위 실험조교가 산책데이트를 분명한 의사로 거절하자 교수가 원고에게 당초에 한 조교재임용 약속을 어기고 재임용 추천을 하지 않자 실험조교가 소송을 제기한 사건이었다. 결국 법원은 이러한 교수의 성희롱 행위가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하여 피고 교수는 원고의 이러한 정신적 손해에 대해 5백만원의 손배해상책임이 있다고 판단하였다. 이는 우리나라 직장내성희롱에 대한 최초의 법적인 대응으로써 이후 성희롱에 대한 잇따른 문제제기와 법률의 제정을 촉발시킨 역사적 사건이었다. 이 사건에서 알 수 있듯, 여성의 경험 드러내기는 법체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번 강의에서는 위의 판결 말고도 세상을 바꾼 여러 가지 사건을 들을 수 있었다. 1988년에는 전화교환원에 대하여 43세로 정년을 제한한 것이 바로 근로기준법의 남녀평등 조항에 위한 것이라는 소송이 있었고, 결국 법원에서는 여성전용직렬인 전화교환원에 대하여 합리적인 이유 없이 정년을 제한한 것이라고 하여 남녀평등을 침해할 여지가 있다고 보아 위 규정을 무효 선언하였다. 그리고 1999년에는 그 유명한 군가산점 위헌 판결이 있었다. 이 판결에서는 특히 군가산점 제도에 대하여 엄격한 비례심사원칙을 적용하여 가산점제도의 위헌성을 이끌어냈다는 것에 의의가 있었다. 이 판결들 밖에도 호주제 위헌결정, 여성 종중회원에 대한 자격인정 등으로 인하여 우리 법체계에는 여성의 목소리가 조금씩 더 반영되어갔다. 판결 뿐만 아니라 여성을 고려하는 법제정 혹은 개정 작업도 활발히 이루어져, 1994년에는 성폭력범죄의처벌및피해자보호등에관한 법률이 제정되어 공중밀집장소에서의 성추행, 직계존속에 의한 성폭행을 고소할 수 있도록 하여 성폭력 범죄가 사적인 범죄가 아니라 국가에게 관여하고 처벌해야 할 문제라는 것을 분명히 하였다. 그리고 성매매방지및피해자보호등에관한법률의 제정, 6차례에 거친 남녀고용평등법의 개정, 가족법 개정 등 법체계에 상당한 변화가 있어 왔다.

최근 개그콘서트라는 어느 한 코미디 프로그램에서는 “남보원”이라는 개그 코너가 매우 인기를 끌었다. 이 코너에서는 여성에 비하여 남성이 오히려 역차별 당하는 것과 같은 상황을 개그로써 풀어내어 관객들을 폭소하게 만들었다. 더불어 각종 국가시험에서는 여성의 합격 률 남성의 합격률과 거의 대등해졌으며 골드미스, 여풍, 알파걸과 같은 용어도 유행이 되었다. 그만큼 이제는 여성의 지위가 상승하여 남녀평등을 주장하는 것이 구시대적으로 들릴 정도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제 법여성학이 자리할 곳이 없는가? 그러한 판단은 아직 시기상조일 것이다. 여전히 법은 객관적이고 공정하고 비정치적이지만은 않다. 그러한 법의 이미지는 만들어진 신화일 뿐이다. 그러므로 계속적으로 법의 주류와는 다른 관점으로 법을 바라보는 일이 언제나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만약 성희롱 피해자를 보호하는 법, 혹은 그 가해자를 처벌하는 법에 대해 “그런 법은 없는데요,”, 라며 법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였더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그러한 수용이 일반적으로 이루어진다면 법을 통해 바꿀 수 없는 것이 아무것도 없게 되는 결과가 초래되고 만다. 이유정 변호사님께서는 법조인은 무엇보다도 당사자의 주장과 경험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즉, 법조인은 언제나 차별적 상황에 귀를 기울이고, 이를 차별이라 선언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 이르러서도, 여성은 여전히 고용 및 여러 사회 상황 속에서 차별 취급을 당하며 가사노동과 직장생활 가운데에 어느 하나에만 전념할 수 없고 그 가운데에서 어정쩡한 자세를 취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다. 이러한 잔존하는 여성차별적 요소들을 양성화하고, 개선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바로 법조인
의 소명일 것이다.


글_ 4회 인권법캠프 참가자 김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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