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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이 권하는 책]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

공감의 목소리/공감이권하는책,영화

by 비회원 2011.02.10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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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TV 드라마를 좋아한다. 토론 프로그램은? 토론을 보느니 차라리 막장 드라마를 참고 본다. 혹 지지하는 패널이 코너에 몰리기라도 하면 오밤중에 답답증이 울컥 치솟아 잠 못 이룰 것이 두려워 관심 있는 주제일 때조차도 결국 채널을 돌리고 만다. 그런데 점점 토론 프로그램이 보고 싶어진다. 법을 도구로 사회를 바꾸자는 미션을 가진 공감에서 일하는 동안 직접 토론에 나서야할 기회가 생기는데 토론에 나가서 다른 주장과 평행선을 달리고 말거나, 얼굴 붉히는 경험을 한 후로는 어떻게 해야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설득할 수 있을지 고민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차에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 라는 이 책의 제목은 섹시하게 나를 잡아끌었다.   

 
저자는 지난 200년 동안의 논쟁을 통해 핵심적인 반동적 명제인 “역효과 명제, 무용 명제, 위험 명제”를 추적하고, 그 주창자들이 어떻게 주장과 그 표현에서 특정한 패턴들을 따랐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책을 집필했다고 밝힌다. 또한 위 세 가지 명제가 어떻게 반동적인 레토릭을 구사했는지 논증하기 위해 프랑스혁명, 보통선거권의 확대, 복지국가의 등장이라는 역사적 사건들을 명제에 엮어 풀어낸다.

 

  “오히려 정반대의 결과를 낳을 것이다”_역효과 명제
역효과 명제란 자유를 얻으려는 시도는 사회를 노예 상태로 떨어뜨릴 것이며, 민주주의를 추구하면 과두정치나 전제정치를 만들어낼 것이고, 사회복지 프로그램들은 빈곤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늘게 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풍선효과가 연상되었다. 성구매자와 성매매알선자에 대한 강력한 단속을 요구할 때마다 성매매에 대한 단속은 오히려 온라인 성매매를 활성화시킬 것이라는 반박이 제기되었다. 언론과 많은 남성들이 이 주장에 편승했다.

 

  “그래봐야 기존의 체계가 바뀌지 않을 것이다”_무용명제
무용명제는 보통선거권이 도입된다고 해도 그것이 기존의 지배형태를 바꿀 수 없다는 확신을 형성했다고 한다. 또한 무용명제는 변화의 가능성이나 변화를 위한 노력을 거부하고 조롱하는 점에서 파괴력이 크다고 지적한다. 무용명제가 잘 드러난 것으로 2차 세계대전 이후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선 동유럽에서 널리 알려진 농담이 소개되었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차이가 뭘까? 자본주의에서는 인간이 인간을 착취한다. 그리고 사회주의에서는 그와 정반대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많은 이들이 쉬 빠지는 정치 허무주의의가 바로 이 무용명제로부터 비롯된다. ‘뭘 해도 바뀌지 않을 것이다’라는 체념은 “그놈이 그놈”이라는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만나 투표 무용론으로 이어져, 결국 정치는 생활의 기반에서 유리되어 권력 다툼의 장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렇게 하면 우리의 자유와 민주주의가 위태로워질 것이다”_위험명제
위험명제를 소개하기 위해 제임스 버틀러의 1914년 논문일부가 인용되었다. “1831년 당시 ‘민주주의’라는 단어는 오늘날 ‘사회주의’라는 단어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와 비슷했다. 그것은 막연히 공포스러운 어떤 것, 격변을 일으키고 지배적인 어떤 것을 의미하는 말로 받아들여졌다. 민주주의가 실현되면 왕과 귀족은 사라지고, 과거의 것임을 드러내주는 모든 종류의 표지도 싹 쓸려나간다는 것이었다.” 당시 노동계급과 가난한 사람들에게까지 투표권을 확대하는 것은 곧 직접 또는 강탈적인 과세를 통해 부자들의 재산을 빼앗는 다수파와 정부를 만들어낼 것이라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었다고 한다. 이는 최근 우리사회의 미네르바 사건을 비롯한 촛불집회 이후 심화된 인터넷에 대한 통제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인터넷 상 표현의 자유를 허용하면 명예훼손, 사생활 침해가 만연할 것이며, 나아가 기업의 업무 방해, 공무집행방해로까지 이어져 국가기강(공익)이 흔들릴 것이라는 주장이 바로 이 위험명제에 기반하고 있다.       

저자가 풀이하는 세 가지 반동명제에 대한 역사적 논증을 뒤쫓다 보면 우리사회에서 맞닥뜨리는 반동적 주장들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반동적인 명제들을 만났을 때 이건 아닌데 싶으면서도 쉬 반박이 어려워 성내고 돌아앉으며 무시하고 말 때가 많았다. 막막하고 막연해서 더 이상 대화를 어떻게 이어나가야할지 길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은 뒤 성과라면 반동적 주장을 대면했을 때의 막막함과 답답함이 당연한 귀결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반동주의자들의 주장 각각이 진보주의적 짝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역효과 명제
반동: 계획된 행동은 비참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진보: 계획된 행동을 취하지 않으면 비참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위험 명제
반동: 새로운 개혁은 옛 개혁을 위험에 빠뜨릴 것이다.
진보: 신-구 개혁은 서로가 서로를 강화시켜 줄 것이다.
 •무용 명제
반동: 계획된 행동은 사회질서의 항구적이고 구조적인 성격을 바꾸려 한다. 따라서 그것은 전혀 효과가 없고 무용하다.
진보: 계획된 행동은 이미 ‘굴러가고 있는’ 강력한 역사의 힘에 의해 뒷받침된다. 거기에 맞서는 것은 아주 쓸데없는 짓이다.

 

저자는 양쪽 진영의 명제들이 모두 함께 공상적이고 매우 극단적인 진술임을 드러냄으로써 이와 같은 비타협적인 레토릭으로는 대화가 불가능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나아가 공적인 담론이 보다 ‘민주주의 친화적’이 되기 위해서는, 참여자들이 다른 참여자들의 주장에 비추어 , 토론 과정에서 얻게 되는 새로운 정보를 통해 처음 가졌던 생각을 수정할 용의가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200년간 양 진영의 대화는 ‘귀머거리의 대화’였다고, 총과 칼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내전을 계속한 것’이었을 뿐이라고 지적한다. 과거 살육적이고 비타협적인 담론에서 보다 ‘민주주의 친화적’인 대화로 가기 위해서는 사실상 대화와 논의가 불가능하도록 설계된 고안물인 반동 명제들에 대해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덕분에 반동 명제를 만났을 때의 답답함은 해소가 되었다. 왜 대화가 안되었는지, 대화가 안될 수밖에 없는 수사 구조를 알게 된 것은 큰 성과이다. 그렇지만 그 다음은, ‘설득’은 어떻게?

 

글_ 소라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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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2.10 15:01
    그다음 설득은 어떻게? 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은 민주주의적인 의사결정에 있죠..
    바로 다수결(선거)입니다. 보수와 진보가 서로를 이해하거나 설득할 필요는 없죠.. 자신의 정책을 국민의 다수결로 평가받으면 되니깐요.. 그게 민주주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