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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행복을 찾아가는 그 길목에서 - 고미경

공감의 목소리/공변의 일상

by 공감이 2007. 10. 20.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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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표 하나

       

   

아이들과
           행복을
                 찾아가는
                     그 길목에서

               

지하철 막차를 탔다. 지하철역에 세워둔 자전거를 타고 집에 가는 길, 자전거가 뭔가 이상하다. 체인이 삐걱거린다. 불안한 마음으로 페달을 밟아 언덕길을 오르는데..이런, 급기야는 우당탕 넘어지고 말았다. 하늘을 날아 땅바닥으로 곤두박질 친 나는 스물다섯이란 나이를 떠올리곤 잠시 망설이다 에라 모르겠다하며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고 말았다. 깜깜하고 쌀쌀한 가을밤, 가로등불빛 아래서 나는 그렇게, 넘어진 자전거를 벗 삼아 오랜만에, 서럽게 울었다. 

그런 때가 있는 것이다. 누구나.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진 느낌에 슬퍼질 때가. 한참을 주저앉아 있어도 다친데 없냐며 따뜻한 손길 내밀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구나 하고 서러워질 때가 있는 것이다. 눈물을 훔치며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활동하고 있는 푸른시민연대 놀토학교는 아이들이 이렇게 넘어져 울고 있을 때 손내밀어줄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고. 아픈 엉덩이와 까진 무릎팍에 눈물을 훔치더라도, 그럼에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길을 비춰주는 가로등 불빛이어야 한다고.

 

아이들은 많이들 운다. 엄마 아빠와 싸워서 울고, 엄마 아빠가 없어서 울고, 친구와 싸워서 울고, 친구가 없어서 울고, 남자친구와 헤어져서 울고, 몸이 아파서 울고, 사는 게 답답해서 운다. 또 아이들은 많이 웃는다. 이유가 있어서 웃고, 이유가 없어도 그저 깔깔댄다. 그리고 아이들은 꿈꾼다. 소설가, 만화가, 요리사, 배우, 선생님, 푸드스타일리스트, 자동차 디자이너. 우리가 함께하고 있는 아이들의 꿈이다.


나에게 청소년의 ‘인권’이라는 것은 아이들이 자신의 삶에서 중요한 것,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것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덜 울고, 더 많이 웃을 수 있는 권리, 마음껏 꿈꿀 수 있는 권리.


오늘은 놀토학교 학생의 한 어머니께 전화가 왔다. 잔뜩 화난 목소리로 전화하신 어머니께서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목소리로 말씀하신다. “애들이 놀토학교 가고부터 공부를 안 하는 것 같아요! 공부방도 자주 빠지고! 아무래도 이제 놀토학교 못 보내겠어요.” 나는 충격에 휩싸이고 말았다. 놀토학교는 단순히 노는 곳이 아니다. 아이들에게 사진, 연극이라는 문화를 매개로 자신을 표현하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법을, 진로탐색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들과 자신의 꿈을 이룰 수 방법과 과정을 찾아가는 곳이다. 뭔가 단단히 오해를 하고 계신거다. (사실 아이들이 사진전 준비를 하느라 학원에 빠지기도 하고 집에 하루 이틀 늦게 들어가긴 했다..)

 

놀토학교를 진행하며 답답한 것 중의 하나는 ‘공부’ 가 아이들의 삶에서 유일하게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강요하는 사회다. 물론 아이들이 자기 꿈을 위해서 인문계고등학교를 가야만 한다면 어느 정도 학교공부를 해야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공부 이외의 모든 일들에 대해서는 별다른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어른들을 보면 참 답답해진다.


오늘 학교에서 연극부 활동을 하고 있는 수연이와 통화를 하는데 목소리가 좋지 않다. 왜 그러냐고 묻자 고모와 싸웠다고 한다. 이유인 즉슨, 고모가 수연이 몰래 제주도 비행기표를 끊어놓았는데 그 날짜가 수연이의 연극공연 불과 며칠 전이었던 것이다. 수연이가 고모에게 연극 연습 때문에 여행을 갈 수 없다고 했다. 고모는 ‘그게 얼마짜리 표인데 취소를하냐, 공부가 중요하지 연극이 고등학교 가는데 무슨 도움이 되냐’ 며 무조건 제주도행을 강요하셨단다. 그 말이 수연이에게 얼마나 상처가 되었을까. 꿈꾸는 것조차 힘겨운 아이들이다.

 

한 아이는 앞으로 하고 싶은 일에 ‘평범한 회사원, 취미겸 부업 소설가’ 라고 적는다. 이미 소설가로 먹고살기가 힘들다는 것을 알아버린 걸까. 아마도 현실이 아이들을 일찍 철들게 만들었나보다. 할머니와 동생과 살며 너무 일찍 어른이 되어버린 이 녀석. 유독 잦은 감기에 걱정이 되어 전화를 하자 콜록콜록대며 “선생님도 날씨 추운데 감기 안 걸리게 조심하세요” 라고 되레 날 걱정해주는 녀석이 대견하기도하고 안쓰럽기도 하다.
 

이런 아이들에게 푸른시민연대가 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또한번 고민해본다. 사진, 연극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저소득, 한부모가정의 청소년과 함께하며 이들이 가진 삶의 고민을 함께 나누고, 함께 꿈꾸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좀 더 행복해 질 수 있을까 머리를 맞대보는 것이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똑똑한 아이가 칭찬 받는 이 사회에서 놀토학교는 특별한 곳이다. 이곳에 오는 아이들은 한 사람 한 사람 특별해진다. 학교에서는 그저 교실 한자리를 채우고 있는 평범한 학생일지 몰라도 놀토학교에서 아이들은 저마다의 색깔을 찾아간다. 요리솜씨, 글, 그림솜씨, 아름다운 미소, 엉뚱한 농담, 애니매이션에 대한 해박한 지식, 그리고 ‘존재 그 자체’ 만으로도 아이들 한명 한명은 주인공이 된다.


 

학교가 끝나면 학원을, 학원이 끝나면 독서실을 강요하는 이 사회에서 놀토학교는 너희들 안에 있는 생각들을, 그 오색찬란한 느낌들을 마음껏 표현해보라고, 온몸으로 이야기해보라고 한다. 어떻게든 남들보다 앞서야 잘 살 수 있다는 세상에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함께 어울려 살자고 한다. 어떤 꿈이라도 좋으니 마음껏 꿈꾸라 한다. 비현실적라고? 중학생이라면 조금은 비현실적인게 정상 아닌가?

 

 

사실, 아이들은 겉으로 표현하는 것보다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느끼고 깊이 생각한다.자꾸만 아이들안의 생각을 들여다보지 못하고, 아이들을 프로그램의 대상으로만 머물게 해서는 안 된다고 다짐하고 또 되새긴다. 아이들 스스로가 무언가를 기획하고 선택하고 결정하고 만들어가는 능력을 갖는 것이, 당당하게 삶의 주체로 서는 것이 아이들의 잃어버린 인권을 되찾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 능력은 이미 아이들 안에 있다. 어른들이 그것을 억누르고 있을 뿐.
 

아이들의 웃음 속에서 길 한복판에서 세게 넘어져도 일어날 수 있는 에너지가 느껴진다. 그리고 손 내밀어 줄 놀토학교 친구들도 옆에 보인다. 나는 그저 한줄기 가로등 불빛이 되어 툭툭 털고 일어나 씨익 웃으며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지켜보기만 하면 되나보다.


* 푸른시민연대는 지역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실천적인 행동으로 인권과 복지가 생활속에서 실현되고 나눔이 순환되는 지역공동체를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1994년에 만들어진 동대문구의 풀뿌리 시민단체입니다. 어머니 한글학교, 다문화센터 (이주노동자,결혼이민가정지원), 십시일반 (청소년멘토링,독거노인지원,놀토학교)를 통해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글_고미경 (푸른시민연대 놀토학교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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