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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로 순환선

공감의 목소리/공변의 일상

by 비회원 2010.12.20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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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로 순환선' 안 풍경은 언제나 다르다. 잠을 자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적게나마 책을 읽는 사람도 있다. 요즘에는 술을 마시고 인사불성이 된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다. 꼬마도 있고 노인도 있다. 학생도 있고 직장인도 있다. 출근을 위해 ‘을지로 순환선’을 탄 사람도 있고 친구를 만나러 부지런히 가는 사람도 있다. 저마다 다른 외양과 목적으로 ‘을지로 순환선’에 타고 내린다. 시선을 돌려 한 바퀴 휙 둘러 본다. 이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그리고 그들의 얼굴에 드리워진 그늘과 자조 섞인 기대를 살피고 있는 나는 어떤 사람일까. ‘을지로 순환선’은 숨막히게 복잡하면서도 사람 냄새 나는 이 도시를 그대로 담아 놓은 곳이다.

 

‘을지로 순환선’을 그린 사람이 있다. 최호철, >그는 일러스트레이터다. 아니 만화가다. 아니 화가다. 에라 모르겠다. 그냥 그림 그리는 사람이라고 해두자. 만화가면 어떻고 회화가면 어떤가. 그의 그림은 만화면서도 회화고 동시에 일러스트레이션이다. 그는 그런 구분을 없애버린 사람이다. 구분은 사라졌지만 알맹이는 남았다. 사람! 그의 작품에서는 사람 냄새가 난다. 최호철, 나는 그 사람이 누군지 모른다. 하지만 그의 작품집 ‘을지로 순환선’을 보고 그를 아주 가깝게 느꼈다. 그림에서 온기가 느껴지는 건 왜일까. 동시에 그림에 슬픔이 묻어나는 건 왜일까. 왠지 그와는 무슨 이야기를 나눠도 통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소주만 있다면.

 

‘을지로 순환선’은 최호철이 그린 그림이다. 지하철 2호선의 한 칸이 그대로 그림이 되었다. 아마도 ‘구의’와 ‘건대입구’ 사이인 것 같다. ‘구로디지털단지’ 근처인 것도 같다. 아닌가, 켜켜이 쌓인 집들을 보니 난곡 혹은 봉천, 어쩌면 아현인 것도 같다. 지하를 뚫고 나온 전철은 복잡한 바깥 풍경과 어울려 보다 현실적인 공간으로 바뀐다. 종교를 설파하는 사람도 보이고 시선을 돌려 창 밖을 보는 소녀도 있다. 그리고 그런 소녀를 내려 보는 엄마도 있다. 침을 튀기며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는 설교자와 달리 창 밖을 보는 소녀의 표정은 심드렁하다. 그리고 소녀를 내려 보는 엄마의 표정에는 애잔함이 묻어 있다. 소녀의 맞은 편에는 초라한 행색의 행인이 있고 그 옆에는 행인을 슬그머니 피하는 처녀가 있다. 자세히 보면 피부색이 다른 사람도, 구걸을 하는 사람도 보인다. 너무나 익숙한 풍경, 이 시간 ‘을지로 순환선’의 풍경이다. 이렇게 설명하면 ‘그게 그림이냐, 사진이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의 그림이 ‘현실의 모방’이 아닌 이유는 의도적으로 왜곡되고 집약된 표현에서 거대 ‘괴물’ 도시와 그 속에서 아둥바둥 살아가는 사람들을 마음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은 풍경이 아니라 삶인 것이다. 그리고 삶이 그림으로 투영될 수 있는 것은 그에게 사람들에 대한 짙은 애정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의 그림을 보면서 마음이 따뜻해졌다면, 동시에 마음 한 켠이 아려 왔다면 같은 심정으로 그림을 그리는 그와 조우했기 때문이리라.

 

작품집에 실린 또 다른 작품을 살펴 보자. ‘우산 장수’, 이제 막 그친 비가 반가울 법도 한데 전철 역 출구에서 마주치는 풍경에 만감이 교차한다. 통 안 가득히 꽂혀 있는 우산들, 그리고 고개를 푹 숙인 우산장수. 최호철은 이렇게 설명한다. “아직 꾸물꾸물 구름이 있으니 기왕 나온 거 다음 비를 기다려 보자” 이 작품은 그의 다른 작품들과 달리 간결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고개를 숙이는 바람에 가리워진 우산 장수의 표정은 보이지 않아도 다 보인다. 같은 경험과 생각을 한 번이라도 해 본 사람이라면 우산 장수가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다 알 수 있다. 그런 우산 장수를 보는 우리들의 표정도 다를 바 없다. 갑자기 마음을 들킨 기분이다. 아마도 최철호는 사람들의 마음을 꽤 뚫어 보는 재주가 있나 보다. 마음만이 아니다. 우리가 주변에서 겪을 수 있는 삼라만상의 경험과 인물이 기껏해야 약 육 십 점 가까이 되는 작품 속에 다 들어가 있다. 민중작가인 최호철의 그림은 정치적이라기 보다는 대중적이다. 

 

물론 애정이 듬뿍 담긴 그의 시선은 가끔은 억지스럽다. 도시에 산다고 다 불행한 것은 아니며 다 서민인 것도 아니다. 동정을 받는다고 느낄 때 사람들은 자존심이 상하기 마련이다. 지나친 애정은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왜 그렇게 애정이 많은 건지 훗날 그에게 묻고 싶다.

 

‘을지로 순환선’에 실린 그의 작품들은 모두 느낌이 비슷하다. 그렇다고 해서 지루하거나 답습적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개성이 넘친다. 낙관은 없지만 모든 작품에 ‘최호철 작’이라고 쓰여 있다. 이중섭이 높게 평가되는 이유는 누가 봐도 한 눈에 그의 작품을 알아 볼 수 있기 때문이라던데, 그런 이유에서라면 최호철 역시 높게 평가되어야 마땅하다. 물론 여백의 미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의 작품집에 실망을 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가 그린 것은 산수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대끼며 아득바득 살아가는 도시, 정확하게는 도시 속 삶이다. 만약 그가 산수를 그렸다면 그렇게 복잡하게 그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긴 산수를 그리는 그를 상상하기는 어렵다.

 

 

 

글_ 윤지영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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