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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에 대한 단상

공감의 목소리/공변의 일상

by goodcountry 2010.11.03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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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대구엘 다녀왔습니다. 대구대 사회복지학과의 아는 교수님께서 ‘사회복지와 인권’이라는 주제로 특강을 요청하셔서 가게 되었는데요. 주간반과 야간반에 각 사회복지정책론 과목이 개설되어 있는데 특강을 하는 날은 합반을 해서 주․야간 학생들이 함께 수업을 듣고, 그 시간도 주․야간 수업시간의 중간 쯤인 5시로 잡혀있었습니다.


KTX가 다닌 후로는 서울에서 대구까지는 2시간 밖에 걸리지 않는 가까운 곳이 되었지요. 대구대가 동대구역에서 1시간 이상 떨어진 경산에 있긴 했지만(대구대는 경북에 있고, 경북대는 대구에 있는 것도 재미있는 사실입니다.^^) 오전에 사무실에서 일을 보고, 오후에 가더라도 충분히 당일에 다녀올 수 있는 곳이 되었습니다. 사무실에 있다가 점심을 먹으러 밖으로 나가는 길에 사무실 사람들에게 얘길했더니 기차 타고 가을 나들이하러 간다고 부러워하더라구요. 기차에서 삶은 계란도 까먹고, 바깥 풍경도 보면서 즐겁게 다녀오라는 질투 섞인 당부도 들었습니다.


예전에야 미리 기차편을 예약하지 않으면 역에서 한참을 기다려야 했는데 요새는 실시간으로 차편이 있어서 굳이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저도 예약을 하지 않고 서울역에 나갔는데 바로 5분 후에 출발하는 기차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역방향이고 통로쪽인 건 감수해야했지요. 기차 안으로 들어가 제 좌석으로 가니 제 옆 좌석에는 중년의 아저씨가 차창의 블라인드를 내리고 눈을 내리감고 바로 낮잠을 주무실 태세였습니다. 저는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한 채 조용히 제 자리에 앉아 특강할 자료만 들여다 보아야 했습니다. 자료를 보다가 전화 한두 통 하고, 문자 몇 건을 보내고 나니 벌써 대전을 지나 대구에 가까워져 있었습니다. 블라인드가 처져 있지 않았더라도 차창 밖을 여유 있게 보지 못하였을 것이 KTX는 아시다시피 무지 빠른 속력으로 달려가고 계속해서 터널구간을 지났습니다. 2시 정각에 타서 동대구역에 3시51분에 내렸으니 2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고, 예정된 시간에서 단 5분만 지체되었습니다.


특강을 마치고, 담당 선생님께서 사주신 맛난 저녁도 얻어먹은 후 다시 동대구역에서 표를 사서 다시 KTX에 올라탔습니다. 출입문 입구에서 승무원 한분이 손님과 같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알고보니 그 손님은 시각장애인이었습니다. 그분이 대전에서 내리실 때에도 역시나 다른 승무원이 와서 보조를 해주더라구요. 승무원들이 참 친절하였습니다. 그날 신문을 보니 기륭전자 노조원들은 복직이 되었다는데, KTX 여승무원들의 복직소식은 아직도 들리지 않습니다. 서울로 돌아올 때는 차창 쪽이었지만 이미 밖은 어두워진지 오래였습니다. 신문을 한부 사서 꼼꼼히 읽고 나니 도착할 시간이더라구요.


이렇게 KTX를 타니 오후에 가도 대구에서 일을 보고 서울로 돌아올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KTX가 없었더라면 엄두를 내지 못했거나, 1박 2일을 잡고 내려갔어야 했겠지요. 과학기술의 발전 덕에 예전보다 훨씬 짧은 시간 내에 일을 처리할 수 있지만, 일하는 시간은 그대로이거나 오히려 늘었으므로 일의 강도는 훨씬 높아졌습니다. 보고 싶은 사람도 바로 달려가서 볼 수 있고, 소식도 이메일이나 핸드폰을 통해 바로바로 전할 수 있으니 더 좋아진 걸까요? 비둘기호나 통일호를 타고 다니던 시절에 기차 안에서 옆사람과 삶은 계란과 사이다를 나눠먹으며 정을 나누고, 만날 사람과의 재회의 시간을 기다리며 즐거워하던 애틋함은 없어졌습니다. 그리운 마음을 듬뿍 담아 예쁜 편지지를 골라 펜으로 정성스레 편지를 쓰고, 그 사람으로부터 언제쯤 답장이 올까 애태우고 기다리던 여백의 시간도 이제는 없어져 버렸지요.


문득 KTX가 조금만 천천히 달리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글 - 염형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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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12.22 14:53
    새로생긴 경춘선에 대해서도 사람들이 비슷한 말을 하더라구요. 빨라서 좋은데 낭만이 줄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