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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라에서 딸 키울 수 있나요?” <장애인 성폭력 사건 쟁점 토론회 후기>

공감이 하는 일/자원활동가 이야기

by 비회원 2010.11.02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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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작가 공지영이 자신의 트위터에 쓴 글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한 지적장애여학생을 16명의 남학생이 학교 화장실에서 집단 성폭행한 사건에서 가해자 전원이 ‘불구속 처분’을 받은 것을 두고 한 말이지요. 불구속 이유는? 바로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않았기 때문’이랍니다 가해자들이 아무리 미성년자라고 해도 말이지, 제3자가 보기에도 이렇게 말도 안되는 처분이 어떻게 가능했던 걸까요.


지난 10월 21일(목) 국회의사당 소회의실에서 열린 <장애인 성폭력사건 쟁점 토론회>에서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었습니다. 변호사, 판사, 연구자뿐만 아니라 실제 피해여성을 상담하는 활동가들이 참석해, 현장에서 느끼는 한계를 어떻게 법으로 풀어갈 것인지에 대해 토론했습니다. 법을 현실에 적용시키기에, 현실에는 법이 들어올 수 없는 사각지대가 너무 많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했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장애인 성폭력사건은 특수한 장애의 성질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수사과정에서 제대로 피해의 실상을 평가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장애인 성폭력사건에서 논란이 되고 있고, 따라서 이번 토론회에서 쟁점이 된 것은, 위의 대전 여중생 사건처럼 피해자가 지적장애인일 경우였습니다. 황지성 장애여성 공감 상담소장님의 말에 따르면, 실제로 상담을 받으러 오는 80-90%의 피해자가 지적장애여성이라고 합니다. 이 경우 피해자의 피해 사실을 입증하기가 매우 어렵고, 이에 따라 가해자의 처벌 또한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생기게 됩니다.



 김정혜 <공감> 펠로우님의 분석에 따르면, 그러한 요인에는 첫째, 피해자가 
 “항거불능 상태” 판정을 받는 것이 사실상 힘들다는 것이었습니다. 상황에 대
 한 맥락적 이해로 항거불능 판정을 내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피해자의 성경
 험, 일반학교 진학, 폭행이나 협박의 여부 등 개별적인 사실에 주목한다는 것
 입니다. 

 항거불능 부정 판정을 받았을 때에는, 피해자가 얼마나 항거했느냐에 따라 
 가  해자 처벌이 달라진다고 합니다. 이는 그렇다면 또 다른 딜레마를 낳게 됩
 니 다. “사건 당시에 저항을 함으로써 더 큰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
 서도, 이러한 법적 요구 때문에 저항을 하라고 교육할 것인지 고민하게 된
 다”는 한 참석자의 말이 바로 그것입니다. 


둘째,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 문제 또한 지적해주셨습니다. 특히, 육하원칙 또는 팔하원칙을 강조하는 절차 하에서는, 피해자의 진술이 신빙성을 가지기가 어렵게 된다는 말이 와닿았습니다. 예를 들어, 지적장애인의 진술에서 일관적인 피해 횟수, 피해 날짜 등을 끌어내기는 상당히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실제로 가해자가 3번의 범죄 사실을 자백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의 언어로는 증명이 불가능하여 가해자의 혐의가 인정되지 않은 사건이 있었다고 합니다. 3번의 범행 중 1번의 사실은 피해자의 임신으로 증명이 되었지만, 나머지 2번은 증명되지 못한 것이지요.

장애여성의 진술을 위해서 진술녹화 시스템이나 절차보조인이나 상담소의 참고인 의견서 작성 등의 제도가 마련되어 있지만, 이 또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진술조서 작성에 어려움을 겪는 장애여성을 위해 글이 아닌 말로 사건 진술을 할 수 있게 진술녹화를 도입했지만, 이는 단지 진술조서를 작성하는 것을 카메라로 녹화하는 수준에 머무른다는 것입니다. 또한 상담소에서 참고인의견서를 작성했을지라도, 이를 권위 있는 의견서로 보기보다 정치적 의견으로 간주해버리는 경우도 발생한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법 체계 그 자체에서도 상담소의 활동가님들은 제약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먼저, 피해자 입증책임 하에서 장애여성은 또 다시 피해를 입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초점을 가해자에게 맞추고, 왜 그 피해자를 골랐고, 어떤 상황이 그러한 폭력을 가능하게 했는가를 밝혀야한다는 것입니다.

합의와 양형 문제에 있어서도 실제로 큰 고민이 있었습니다. 피해자가 가해자와 합의를 하면, 가해자는 형사처벌을 받지 않게 됩니다. 하지만, 이 합의가 과연 피해자의 의사에 의한 것인지 불분명하다는 것입니다. 이는 비단 장애인성폭력 사건에만 해당하는 딜레마는 아닐 것입니다. 돈과 처벌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는 것인데, 어떻게 돈이 면죄부가 될 수 있는 것일까요? 판사의 재량으로 합의와 관계없이 형사 처벌을 내리는 경우가 있다고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차원에서 이뤄지는 판단이기 때문에 더 고민해볼 문제인 것 같습니다.

토론회에 참석하는 동안 줄곧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바로 영화 <오아시스>에서의 수사 장면이었습니다. 영화에서 지적장애여성은 사랑에 기반하여 성행위를 하였지만, 수사과정에서 가족이고 경찰이고 모두 “너는 지적장애여성이니까 성폭행을 당한 것이겠거니”라고 판단했습니다. 말을 자유자재로 하지 못하는 여성은 강간범으로 몰리는 남자를 보며 괴로움에 몸부림칩니다.


영화와 달리 우리가 토론회에서 고민했던 문제는, 장애인 성폭력 사건에서 분명 동의가 아닌 위계, 위력에 의한 강간인 점을 어떻게 입증할 것인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비록 다른 사안일지라도, 궁극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피해자와의 소통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생활의 많은 부분이 오른손을 쓰는 일반인들 편의에 맞춰져 구성되어 있는 것처럼, 수사 과정과 법체계마저 다수의 편의에 맞춰져 있는 것입니다.

한 참가자는 항거불능 판단이 잘 이뤄지지 않는 이유에 대해, 지적장애여성이 외부세계와 관계맺는 방식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누구나 소통에 대한 갈망이 있습니다. 이는 지적장애여성 또한 다르지 않기에, 이들은 심지어 자신의 몸을 소통의 매개로 삼기도 한다고 합니다. 성행위에 대한 인지여부나 협박을 떠나서, 분명 피해여성이 성폭행에 항거할 수 없게 하는 요소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 주장에 대한 공감과 더불어 제게는 또 하나의 고민할 거리가 생겼습니다. 이러한 요소, 어찌보면 비실체적이고 주관적일 수 있는, 하지만 분명히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요소를 어떻게 논리적이고 명확한 언어로 수사과정에서 명쾌하게 전달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참석했던 여러 관계자님들의 말처럼, 직접 수사과정에 참여하는 분들이 토론회에 참석하지 못해 아쉬웠지만, 법률가들과 실제 활동가들이 모여 탁상공론이 아닌 실제적인 대안을 고민한다는 점에서 참으로 유익한, 하지만 대안모색이 쉽지 않다는 점에서 답답한 시간이었습니다.


글_ 12기 인턴 반승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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