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회의가 있어서 가게 되었습니다. 저희 사무실에서 국가인권위원회에 가자면, 거리는 짧되 대중교통은 잘 연결이 안 되어 저는 종종 운동하는 셈 치고 그 길을 걸어다닙니다. 인사동 초입을 지나, 조계사를 지나, 종각을 지나, 청계천을 지나 가는 길은 서울 시내 관광 코스이기도 하지요. 풍경을 보면서, 지나가는 사람들도 보면서 가는 그 길은 마음의 여유를 가져다주는 길이기도 합니다. 특히 가는 길목에 만나는 청계천은 저와 특별한 인연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지난 2005년 서울시는 3,867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예산을 쏟아부어 청계천을 복원하였습니다. 복원된 청계천은 수많은 시민들과 외국인들이 찾는 관광명소가 되었지요. 그러나 이처럼 많은 이들이 찾는 청계천에 장애인들은 쉽사리 갈 수가 없었습니다. 청계천 양쪽의 천변보도는 휠체어를 타고 다닐 수가 없었고, 11킬로미터가 넘는 전구간에 휠체어 드나들 수 있는 경사로는 양 변 모두 합쳐 7개에 불과하였으며, 조형물과 다리 등으로 장애인들이 걱정없이 지나다니기에는 어려움이 너무 많았습니다.
지체장애인 3명과 시각장애인 2명이 2006년 4월 장애인의 날을 기하여 복원된 청계천이 장애인들은 접근할 수 없는 차별천이라는 이유로 서울시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그 사건을 제가 대리하여 소송을 진행하였습니다. 국내외 자료들을 찾고, 청계천을 몇 번을 오가며 실측조사를 하였으며, 시민들을 대상으로 탄원서도 많이 받았습니다. 이처럼 지리한 소송 끝에 결국 우리 측이 패소하였지요.
하지만 전체 장애인을 대신하여 제기하였던 이 소송에서 원고들이 바랐던 것은 서울시로부터 손해배상금 몇푼이 아니었습니다. 장애인들도 비장애인들처럼 아무런 제약 없이, 아무런 걱정 없이 공공시설을 이용하고 싶었을 뿐이었습니다. 또한 애초에 계획 때부터 교통약자들이 참여하여 교통약자들이 편히 이용할 수 있는 도시계획이 이루어지길 바랬을 뿐이었습니다.
청계천 소송에서 패소한 이후, 청계천변 보도는 휠체어 장애인도 이용이 가능하도록 넓어졌습니다. 청계천의 삼일교 및 황학교 두 곳에 엘리베이터도 설치가 되었습니다. 소송이 진행 중일 때에는 향후 도시계획 심의 때 교통약자들의 의견통로도 만들겠다고 하였는데 그 부분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 오랜만에 본 널찍한 천변보도는 저의 마음을 훈훈하게 해주었습니다.^^
소송은 졌고, 장애인 당사자들이 원하는 만큼의 성과를 얻지는 못했지만, 소송을 통해 그러한 변화가 있었던 것입니다. 장애인들의 이동권 투쟁으로 광화문 대로에도 횡단보도가 생겼습니다. 그 덕택에 비장애인인 저도 광화문 대로를 편히 건널 수 있습니다. 서울역 지하차도에 있는 경사로는 비장애인들이 훨씬 더 많이 이용합니다. 이처럼 장애인 등을 고려한 시설(‘유니버설 디자인’이라고 하더군요.)이 만들어지면 비장애인도 훨씬 편해진다는 사실을 비장애인들은 왜 미리 알지 못할까요.^^;
글 - 염형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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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영역
예전에 경험하셨던 장애인 체험행사를 도시개발과 관련한 부서의 직원들이 반드시 사전에 참여하는 방안으로 마련된다면 좀 더 개선된 장애인 배려의 공공시설물들이 만들어 질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