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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과 함께한 여행

공감이 하는 일/자원활동가 이야기

by 비회원 2010.09.13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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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가장 먼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가장 먼 여행이 있습니다.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입니다."


                                - "처음처럼" 신영복 (공감 기부 신청 카드 속 글)-


공감과 함께 한 6개월의 짧았던 시간은 인생에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먼 여행길이었습니다. 대학에서 책을 통해 배운 사회정의와 인권이라는 개념들이 머리에서 슬그머니 가슴으로 내려오던 그 때 공감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내가 사는 이 사회의 현실과 부딪혀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이미 세상의 발이 되어 사람들의 가슴 속 온기를 퍼트리는 분들의 삶과 만났습니다. 


첫 오리엔테이션... 나와 비슷한 열정으로 이곳에 모인 청춘들이 있었습니다. "노동3권을 달라~! 추노, 환경파괴로 인해 녹고 있는 빙하 위에 북금곰-죽음의 트리플 악셀, 누구를 위하여 기준을 메기나 (그리고 차별을 정당화하는가), 빈곤에 고통받는 아이들을 무엇으로 키우시겠습니까?"

우리들의 첫 만남에서 꺼낸 노동 환경 차별 빈곤 등에 대한 문제의식들 이었습니다. 술잔에 드리운 그림자가, 깊어가는 밤과 함께 기울어질 때쯤 현장에서 발로 일하시는 변호사님들과의 이야기는 사뭇 진지해지고 있었고, 세상의 향한 나의 호기심은 점점 커져가고 있었습니다.


 

공감에 발을 들인 첫날, 태어나서 처음 들어본 사할린이란 곳에 우리의 조상들과 형제, 자매들이 살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해방이 되어도 돌아오지 못하고 남의 땅에 억울하게 남겨질 수 밖에 없었던 "비틀어진 역사"에 희생된 우리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그곳에 살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일부 고국에 돌아온 분들에게도 그 동안에 격은 고통에 대한 보상과 위로는 커녕 국가는 여전히 그분들을 차갑게 외면하고 있었습니다. "사람과 삶에 충실한 제도를 통해 과거에 상처에 사과하는 것은 여전히 오늘날의 과제"라는 마음으로 그 분들의 고통을 함께 하고 과거의 상처를 보듬고자 하는 공감의 변호사님이 계셨습니다. 고국의 정착을 위한 지원금 외에도 그 분들에게 건강보조비를 지급해야 함을 주장하는 소송을 도와드렸습니다. 그 분들의 고통에 작은 위로라도 되어주길 희망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어느날 1년 이상을 같은 공장에서 일하고도 퇴직금을 받지 못한 외국인 노동자가 찾아왔습니다. 문제는 외국인 근로자법이 가지고 있었던 구조적인 모순 때문이었습니다.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은 부당한 차별 속에서도 자신들의 억울함을 호소할 곳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항상 이민국을 피해 살아야 하는 도망자가 되기도 했습니다. 근로기준법의 엄연히 존재하는 선진 한국의 노동현장이지만, 공장주의 임금착취와 부당한 대우는  외국인노동자들에게 흔히 격어야 하는 일이였습니다. 변호사님과 함께 그분들이 누려야할 정당한 권리와 현행 제도의 문제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당장에 외국인 근로자들의 억울함을 해결해 주기엔 너무나 많은 문제들이 산재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분들의 삶의 애환을 좀 더 이해하고 함께 고민할 수 있었던 소중한 기회였습니다.

   

내 주변에서 일하는 다른 인턴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습니다. 점심을 같이 먹고 휴식을 하는 동안 담소를 나누며 그들 또한 뜻 밖에 현실과 직면하고 나와 비슷한 당혹감과 고민을 갖게 되었음을 알았습니다. 현대판 씨받이, 성매매, 인신매매... 내 머릿속엔 이미 지난 일들처럼 느껴지는 단어들이지만 한국에 온 이주여성들에게는 오늘날의 현실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한국남자와 결혼을 하고 아이까지 나았건만 영문도 모른 체 낳은 아이 얼굴도 한번 못보고 쫓겨나야 했던 어머니의 마음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아픔이었습니다. 또한 가축처럼 사고 팔리며 자신의 성을 바쳐야 했던 이주여성들의 이야기는 더욱 나의 맘을 아프게 했습니다. 범죄의 피해자이면서도 정당한 보호와 대우를 받지 못하고 또 다른 죄인 취급을 받아야 했던 그들의 억울한 호소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변호사님들과 그러한 아픔과 안타까움을 공감하며 비로소 '공감'의 일원이 되어가고 있음을 느꼈습니다. 


또 하루는 파룬궁에 대한 국가적 탄압 때문에 중국에 돌아갈 것을 거부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우리는 죽어가는 사람을 그냥 지나치는 것이 못할 짓이라면, 사람을 사지로 내모는 일 또한 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한 목소리로 이야기 했습니다. 그들은 살기위해 난민이 되어야만 했습니다. 종교든 인종이든 정치적 이유이든 부당한 이유로 박해를 받는 사람들을 그 폭력으로부터 구해야할 도덕적 의무가 있으며, 국가는 최소한 그들을 그 폭력으로 다시 밀어 넣지는 말아야할 인도적인 의무가 있습니다. 우리가 그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국가는 그들을 쉽게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다른 인턴들은 변호사님과 함께 그들의 생과 사를 함께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에 대한 국가의 무관심에 대항한 싸움은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한사람만이라고 구할 수 있다면 하는 맘으로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공감과 함께한 여행에 단연 기억에 남는 것은 군형법 92조에 대한 헌법재판소에서의 멋진 공개변론 현장입니다. '동성애는 비정상적이며 군대의 건전성을 저해한다'라고 주장하던 국방부 측 변호사의 주장이 아직도 귓가를 맴돕니다. 여전히 우리사회의 한 쪽은 다름을 인정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사랑하는 아름다운 인간의 자연스러운 행위를 하면서도 누군가로 부터는 비정상적인 행위, 사회나 조직에 해악을 끼치는 행위로 취급받아야 했습니다. 남녀의 평등이 상식으로 자리잡은 우리사회에서 동성애자들은 여전히 차별의 정당한 대상이었습니다. 군대에서 그리고 사회 속에서 그들을 차별하는 일상의 폭력을 향한 긴 싸움에 공감의 변호사님과 함께 할 수 있었습니다. 동성애자들의 억울함을 함께하고 우리 사회의 다름에 대한 비좁은 이해의 창을 바라보며 고민했던 소중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이 모두가 공감에서 한 긴 여행 속 기억들의 편린입니다. 서로가 함께 웃고 울었던 수많은 일들의 일부일 뿐입니다. 나는 사람을 사랑하고 정의를 위해 살아야 한다고 배웠지만. 또 한편으로는 사람을 믿는 것은 어리석은 순진함이며 남을 누르고 더 잘 살아야 인간으로서의 능력을 다 하는 것이라고도 배웠습니다. 무엇이 진실인지 고민하며 살아왔지만 그것은 결국 우리 스스로에게 남겨진 삶의 모습에 대한 선택일 뿐이라는 것을 공감에서의 긴 여행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앞으로 우리가 어떠한 세상이 만들어 갈 것인가를 결정하게 된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나는 공감과 그 선택을 같이 했습니다. 세상에 첫발을 내 딛는 순간 세상과의 첫 키스를 공감과 한 것입니다. 사람을 사랑하고,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살아야하고, 언젠가는 정의가 승리한다는 믿음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그 분들과 함께 그러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한배를 탔습니다.


아직 여행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긴 여행, 머리에서 가슴 그리고 가슴에서 발까지의 여행을 언제나 공감과 함께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피어나는 희망을 볼 때마다 공감과 했던 첫 키스의 추억이 생각날 것 같습니다. ^^

이강원 11기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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