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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변의 미국생활기 37] 나를 일깨우는 ‘불편함’

공감의 목소리/공변의 일상

by goodcountry 2010. 6. 8.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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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연구실에 나와 이것저것 검색하다 보니 어느덧 점심시간이다. 연구실에서 같이 점심을 같이 먹을 사람을 찾아보지만 쉬이 찾아지지 않는다. 고시 공부를 할 때도 그랬지만, 혼자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는 건 여전히 꺼려지는 일 중의 하나이다. 미국에 와서 혼자 점심을 먹을 상황이 종종 발생하는 건 내가 만나서 점심을 같이 먹을 사람이 그만큼 적기 때문이다.

미국에 온지 10개월이 지나고 한국에 돌아갈 날이 2달도 채 남지 않았다. 그간 미국에서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큰 일 없이 10개월을 지냈다. 큰 사고도, 큰 걱정거리도, 큰 즐거움도, 멋진 일화도 없이 지냈던 것은 ‘불편함’을 거부하고 ‘편안함’을 추구하는 본능적인 안전욕구가 너무도 잘 작동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지나온 열달 동안 낯선 환경과 다른 언어 사용 때문에 심히 불편하였다. 그러한 불편함을 견디기 싫어서 가능한 낯선 환경을 피하고, 영어를 써야하는 상황에 접하지 않으려고 그러한 것들을 본능적으로 거부했다. 한편으로는 불편함을 거부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것들에 대한 배움의 욕구가 잘 충족되지 않아 스스로에 대한 불만이 늘 있었던 것 같다.


한국에서는 사람을 만나는 게 큰 즐거움 중의 하나였는데 미국에 와서는 큰 용기를 내서 해야 할 불편함 중의 하나로 바뀌게 되었다. 한국에선 ‘공익변호사’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당당하게 누구와도 만나서 이야기할 수 있고 그러한 만남으로 인해 많이 배우기도 하였다. 하지만 미국에선 기본적이고 사소한 것들도 알지 못하고, 의사소통도 잘 되지 않는 ‘바보’였다. 미국 현지인들과, 연구실에 함께 있는 세계 각지로부터 온 방문연구원들과 얘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낯선 것들에 대한 불편함, ‘바보’로 느껴지는 상황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 때문에 잘 되지 않았다. 짧은 기간이나마 낯선 땅에서 이방인으로 지내다 보니 고국을 떠나 이곳에서 자리를 잡고 열심히 살고 계시는 교포들이 참으로 존경스러워졌다.


또한 한국에선 낯선 길을 산책하는 걸 참 좋아했는데, 미국에선 감히 해서는 안되는 일이 되어버렸다. 미국 주택가에는 ‘수상한 자가 돌아다니면 즉시 신고한다.’는 표지판, ‘개인 땅이므로 침입을 금지한다.’는 표지판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일반 시민이 이용할 수 있는 산책길이 아닌 주택가 근처의 길을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며 얼쩡대다가는 경찰이 출동하여 수갑을 채우기 딱 알맞다.


내가 그러한 불편함을 무릅쓰고 새로운 것들에 대해 도전하고 그것으로부터 얻어지는 작은 성과에 기뻐했던 건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들이 존재하였기 때문이었다. 은행을 이용하려면 어쩔 수 없이 은행창구에 가서 직원과 얘기를 해야 했고, 공익법 단체 탐방을 하려면 그쪽 실무자와 연락해서 일정을 잡고 그들과 만나 공감을 소개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야했다. 애들을 미국학교에 보내려면 학교 사무실에 가서 직원에게 물어보고 서류를 작성해야 했고, 겨울이 되었는데 히터가 돌아가지 않아서 전기회사에 전화를 해서 수리기사의 방문일정을 잡고 히터가 돌아가도록 해야만 했다. 캠프힐이라는 장애인 공동체에서 자원활동을 했던 건 그에 대한 의무감이 컸기 때문이었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우리 세 아이들은 이제 한국 학교보다 미국학교에 다니기를 원한다. 첫째의 미국학교에 대한 적응은 놀라울 정도로 빨랐고, ABC도 모르고 온 둘째와 셋째도 처음엔 영어공부하기 싫다고 울고불고 하더니 둘째는 이제 영어로 일기를 쓰겠다고 하고 셋째는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며 영어로 노래를 하며 혼자 놀고 있는 수준에 이르렀으니 역시 큰 발전이 있었다. 이 모두가 낯선 환경, 낯선 언어에 대한 불편함을 참고 견디어냈기 때문이다.

이처럼 낯선 것에 대한 불편함을 참고 견디어내면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불편함'은 이렇듯 잦아드는 나를 일깨운다. '불편함'을 멀리하는 '편안함 속의 불편함'을 지속할 것인가, 아니면 '불편함'을 가까이하는 '불편함 속의 편안함'을 따를 것인가. 늘 그렇듯 문제는 나 자신이다.


ps. 고백하건대, 겨울에 히터가 돌아가지 않아도 왠만하면 그냥 지내려고 하다가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아파트 사무실을 찾아가고 전기회사에 전화를 했었다. 여름에도 밤이면 한기가 엄습해오는 이곳에서 히터를 고치지 않았더라면 어찌 겨울을 지냈을고^^;


다음글: [염변의 미국생활기 38] Lake Roosevelt(루스벨트 호수)에서의 잊지 못할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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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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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6.10 10:19
    ㅎㅎ
    아내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 생긴다잖아요`~ ㅎㅎ

    남은 시간 잘 계시다 귀국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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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6.17 01:14
      신 선생님 댓글 덕분에 얘들 엄마가 그 얘길 얼마나 많이 하는지 몰라요^^; 감사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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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6.11 20:12
    하하. 마지막 줄 압권이예요! ㅎㅎ 난감해하시는 염변호사님 표정이 상상이 되네요 ㅋㅋ
    그나저나 코파는(?) 경주 넘 귀여운걸요?ㅠ_ㅠ ㅋㅋㅋㅋ 엄마 미소로 보게 되네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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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06.17 01:16
      보윤~ 블로그에서 만나서 반가워요. 방학 땐 뭐하고 지내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