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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변의 변] 굶거나 구걸하거나, 불법취업하거나 소송을 포기하거나 - 장서연 변호사

공감의 목소리/공변의 변

by 비회원 2010.03.30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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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전화를 받았다. 2002년경에 난민인정신청을 하였지만 법무부로부터 난민인정불허통지를 받고 난민소송을 하고 있는 A였다. 요즘 살기가 너무 힘들다며 일을 할 수 있도록 대통령에게 탄원서를 쓰고 싶다고 하였다. 현재 A와 같은 난민신청자들은 법적으로 취업할 수 있는 자격이 없다. 다만, 난민인정절차가 종결될 때까지 임시로 체류할 수 있는 비자(G-1비자)를 주고 있으며, 이를 3개월마다 갱신하여야 한다. 그런데 법무부에서의 난민인정절차가 짧게는 2년에서 길게는 5년 이상 걸리고, 법원에서의 사법절차기간까지 고려하면 난민인정절차만 최소한 수년이 더 걸린다.

 

이 기간 동안 난민신청자들은 국내에 체류할 수 있지만 취업할 수 없다. 어떠한 생계비지원도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 수 있는가. A는 한국에 유학 온 파키스탄 여성과 결혼하여 아이 둘도 있다. ‘대통령에게 탄원서 써도 별로 소용없어요.’라고 말하는 나에게 A가 ‘그러면 나는 어떻게 살아요?’라고 묻는데, 나는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당신은 굶거나 구걸하거나 불법으로 취업할 수밖에 없어요.’라고 말해야 하나. 문제는 난민신청자는 불법으로 취업하기도 힘들다는 것이다. A는 신분증도 없다. A의 신분을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공문서는 난민신청접수증이다. 당연히 구직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다행히 2009년에 법이 개정되어 난민신청자도 합법적으로 취업할 수 있는 길이 열리긴 하였다. 난민신청자가 난민인정을 신청한 후 1년이 경과하도록 난민인정여부가 결정되지 않은 경우, 법무부장관으로부터 취업허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런데 한국정부는 시행령 부칙규정으로 영 시행 전에 난민신청을 한 난민신청자의 경우에는 위 1년이라는 기간의 기산점을 이 영 시행일부터 기산한다고 규정하여, 이미 수년 동안 난민신청자의 신분으로 있던 사람들도 사실상 2010년 6월부터 취업허가신청이 가능하도록 1년의 유예기간을 두었다. 그리고 나서 이 1년의 유예기간동안 적체해 있던 난민사건들을 대부분 처리해버렸다.

 

한국이 난민협약을 가입한 1994년부터 2009년 말까지 난민인정불허건수가 총 1409명인데, 이중 994명이 2009년에 불허결정을 받았다. 물론 2009년에 법무부의 난민인정건수도 55명(이의신청단계 포함)으로 예년에 비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예전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인력과 절차로 한 해에만 994명의 불허결정을 쏟아냈다는 것은 사실상 취업허가신청이 가능한 2010년 6월이 되기 전에 묵혀두었던 난민사건들을 졸속으로 처리하고자 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장기심사로 인한 난민신청자들의 고통에 무관심하던 법무부에게 신속한 난민인정결정에 대한 효과적인 동기부여가 난민신청자들의 취업허가에 대한 경계심이었다는 점이 씁쓸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법무부의 난민인정불허결정에 불복하는 난민소송 건수도 크게 증가하였다. 그리고 법무부는 난민인정여부에 대한 불허결정을 이미 내렸기 때문에 사법절차에 있는 난민신청자들의 경우 취업허가를 해 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취업허가를 위한 난민절차의 악용이나 소송절차의 남용에 대한 우려를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남용방지책으로 사법절차에 있는 모든 난민신청자들에 대하여 어떠한 합법적인 생계수단도 마련해 주지 않은 채 방치하는 것은 너무 잔인한 방법이다. 이는 선의의 난민신청자들에게까지 굶거나 구걸하거나 불법으로 취업하라고 강요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소송을 포기하고 돌아가라고 강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글_장서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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