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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회] 이주와 난민 - 황필규 변호사, 이호택 대표

공감이 하는 일/공감 인권법 캠프

by 비회원 2010.03.11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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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안의 이방인

 “Have you been in jail?"
 
2001년 9.11 사건 이후에 미국 입국 심사가 까다로워졌음은 겪어본 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다. 몇 해 전, 이민 간 가족을 만나기 위해 미국 어느 공항의 입국 심사를 통과하던 필자는 이유 없이 고초를 겪어야 했다. 당시는 지금과 같이 무비자로 미국을 방문할 수 없던 때라 유학 비자를 통해 입국 절차를 밟았다. 주한 美대사관이 공시한 법령에 따르면, 한 번 유학 비자를 발급 받아 방문한 뒤 미국 외 지역에서 5개월 이상 체류한 이는 새로이 비자를 받아야 했다. 하지만 입국 심사관의 질문은 당혹스러웠다. 그는 왜 비자를 또 발급 받았냐며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잠시 후 거구의 경관 둘이 나타나 밀폐된 사무실로 이끌었고 그들로부터 한참 동안 심문을 받아야만 했다. 경관은 전과가 있느냐는 질문까지 주저하지 않았다. 그렇게 몇 시간이 지체되는 동안 마중 나온 가족이 사정도 모른 채 애를 태우며 기다렸음은 물론이다. 

법치주의를 부르짖는 나라, 미국에서 그 법을 집행하는 관리들이 자국 법령도 제대로 모른 채 근거 없이 사람을 억류한다는 것은 지금이나 당시에나 매우 충격적인 일이었다. 특히 그들이 은연중에 내비친 인종차별적 태도와 그에 대해 무력할 수밖에 없었던 스스로의 처지는 가슴 깊이 상처로 남았다. 문제는 이러한 현실이 미국에서 뿐 아니라 우리가 사는 이 땅에도 별 다를 바 없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땅에서 숱한 외국인들이 겪어야 하는 설움은 한국인으로서 미국 땅을 디디며 겪어야 했던 설움 그 이상이다. 이호택 ‘피난처’ 대표와 황필규 공감 변호사의 강의는 그러한 현실을 보다 명확히 인식하게 해 주었다.  



국내의 외국인, 그 중에서도 난민은 돌아갈 곳 없이 설움과 괴로움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다. 난민은 그가 속한 사회의 구조적 원인으로 개인․집단․국가 등에 의해 기본적 인권의 지속적․조직적 침해를 겪는 이들을 말한다. 이들은 국가의 보호 범위 밖에 있거나 해당국 자체의 박해로 인해 타국으로 망명을 택한다. 이 대표에 따르면 1992년 우리나라가 세계 난민협약에 가입한 이래 1994년부터 2,500명에 달하는 외국인이 난민 인정을 신청했지만 그 중 난민으로 인정된 건 작년까지 150명이 채 되지 않는다. 2008년 12월 19일 출입국관리법의 난민조항이 개정되어 시행일인 작년 6월 20일로부터 1년이 지나도록 난민 인정 결정이 지체되면 취업허가를 내주도록 했지만, 당국은 그간 밀려있던 난민 신청 1,100여 건을 작년 한 해 동안 처리하는 모순적인 태도를 보였다. 결정된 1,100여 건의 신청 중 난민 지위를 인정받은 건 인도적 지위를 포함해 50여 건에 그쳤다. UN 보호 하에 있는 세계 난민 약 3000만 명 중에 1000만 명 정도가 난민 지위를 인정받는 것에 비하면 국내 난민 인정 건수는 그 10만분의 1에 해당하는 셈이다.

이는 국내의 난민 인정 기준이 매우 엄격하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난민 문제에서 중요한 건 그가 과거에 박해를 받았다는 사실에 대한 입증보다도 향후 계속해서 박해를 받을 가능성을 예측하는 것이다. 현재 국제적 기준은 단 10%의 박해 가능성만으로도 난민의 지위를 인정하고 보호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국제적 기준에 비추어 볼 때 국내의 난민 인정 기준이 지나치게 엄격함은 물론, 그 검토 방향부터 새롭게 설정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인정 절차상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대상자 인터뷰의 주체, 방법, 기간, 시기 등을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 난민으로 결정되기 전까지 일체의 지원이 없는 점 역시 보완이 필요하다. 





황 변호사는 난민 뿐 아닌 국내의 외국인 전반에 대해 근본적인 법적․제도적 개선과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일례로 외국인 범죄가 급증했다는 언론의 보도에서 구체적인 통계 자료에 근거한 비교 분석적 기사는 찾아볼 수 없다. 실제 외국인 범죄는 전체 범죄 중 약 1%를 차지한다. 그럼에도 위와 같은 언론의 태도는 비단 기자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외국인을 바라보는 인식의 단면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불법 체류자 단속에 나선 경찰과 출입국 관리원이 당사자들을 구금하고 휴대폰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면서 정작 ‘도박죄’에 관한 압수수색 영장을 소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에서 자국의 법령조차 제대로 모른 채 외국인을 몇 시간 동안 억류하는 미국 입국 심사관의 경우보다 나은 점을 찾기란 어렵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기본권의 주체를 인간으로 두고 있는 반면 우리 헌법은 기본권의 주체를 인간이 아닌 국민으로 규정한다. 비록 근래에 헌법재판소에서 외국인을 기본권의 주체로 인정했지만 기본권의 종류를 구분, 자유권적 기본권에 한해 외국인을 주체로 인정하는 데 그칠 뿐이다. 이러한 헌재의 태도는 근로의 권리에 이르러 근로의 자리(일자리)는 사회권적 기본권으로, 근로의 조건은 자유권적 기본권으로 분리해 적용하는 웃지 못 할 판례를 남기기도 했다.



외국인에 대한 국가배상에서도 국가배상 상호주의를 규정한 국가는 한국과 일본뿐이다. 범죄피해자 구조는 자유권적 기본권의 문제로 여겨짐에도 문제가 더욱 심각한 실정이다. 재한외국인처우기본법에는 기본권이 보장되는 외국인의 범위를 ‘국내에 합법적으로 체류하고 있는 자’로 제한한다. 인신보호법에는 모든 구금에 대한 구제 청구가 가능하다고 하면서 그 주체로서 ‘출입국관리법에 따라 보호된 자’를 배제하고 있다. 작년 발표에서 OECD 국가 중 최저 합계출산율을 나타내 향후 인구 고령화와 노동력 부족을 심각하게 우려해야 하는 현실임에도 다문화가정에 대한 제도적 지원은 여전히 열악하다. 방문취업(H2) 비자를 소지한 외국인도 고국에 있는 가족을 데리고 올 수 없으며 오직 한국인과 가정을 이룬 경우에만 허용된다. 한국인과 혼인해 가정을 이뤄도 국적 취득 전에 한국인 배우자가 신원 보증을 철회하면 불법 체류자로 전락하고 만다. 이처럼 국내의 외국인에 대한 법적․제도적 현주소는 당사자인 외국인들에게 결코 유리하지 않은 실정이다. 

프랑스의 정치학자이자 법학자인 알렉시스 토크빌은 한 사회의 발전가능성을 사회구성원 간의 개성과 평등, 다양성에 대한 존중에서 찾았다. 한국 사회는 더 이상 하나의 민족으로만 이루어진 사회가 아니다. 우리 사회 내의 기피 업종이나 단순 노무직부터 연구직에 이르기까지 상당수의 해외 인력이 자리 잡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국에 이주를 희망하는 외국인들, 특히 아시아권으로부터의 이주민이 늘면서 다문화가정도 계속해서 늘어나는 추세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우리 사회가 발전가능성을 찾기 위해서는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문화가 시급하다. 다양성을 보장하는 문화로 향하는 첩경은 인권이 그 자체로서 축소되거나 침해되어서는 안 될 최우선의 가치임을 인식하는 것이다. 인권은 문자 그대로 인간의 권리로서 인간이라면 그것을 향유하는 주체에 어떠한 구분이 있을 수 없다. 보편적 가치로서의 인권을 ‘우리’와 ‘이방인’의 구분 없이 적용할 때 비로소 그 의식의 토대 위에 다양성을 꽃 피울 수 있지 않을까.
 

글_김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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