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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회] 영화로 본 인권과 법 - 정정훈 변호사

공감이 하는 일/공감 인권법 캠프

by 비회원 2010. 3. 11.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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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 정의 ?


정정훈 변호사님이 강의에 앞서 문제 두개를 주셨다. 그 중 ‘내기 골프’ 사건은 작년 로스쿨 면접을 준비하다가 나도 본적이 있는 문제였다. 그 동안 비슷한 문제들과 ‘모범답안’을 보면서 나는 항상 정답을 찾으려고 했고 내가 정답을 맞추지 못하는 것은 법적 지식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럴수가, 정변호사님은 엇갈린 두 판결 중 “정답은 없다”고 하시는 게 아닌가...

 


법적 판단을 시험문제의 ‘정답’을 찾는 것처럼 대했던 내 태도는 법과 정의의 관계에 대한 무비판적인 시각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법이 곧 정의라면, 즉 법이 “정의(正義)”를 완벽히 “정의(正意)”한다면 법조문에 비추어 사실관계를 분석해 논리적인 결정을 하면 될 뿐이다. 마치 공식과 논리력만 있으면 쉽게 풀리는 수학문제처럼.

 


하지만 법은 정의를 지향할 뿐 온전한 정의가 될 수는 없는 것 같다. 법이라는 간결한 언어로 “정의”를 완벽히 서술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법을 어떻게 해석하냐에 따라 “정답”은 달라진다. 법적판단은 “해석투쟁”이고 여기에 “정답은 없다”는 말씀도 그런 의미가 아니었을까.





영화 속에서 본 법의 한계

 

강의에서는 영화를 통해 법과 정의가 일치하지 않는 순간들을 살펴보았다. 우선, 법은 “폭력”으로 변할 가능성을 안고 있다(다크나이트). 법이 권력의 도구로 전락해 “법의 지배”가 아닌 “법을 통한 지배”가 이루어 진다면 법은 정의가 아닌 불의가 된다. 또한, 법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할 때(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혹은 근본적 문제가 아닌 현상과 싸울 때(괴물), 소수자를 낙인화 할 때(너는 내 운명), 설득과 대화의 과정을 거치지 않을 때에도(복수는 나의 것) 마찬가지이다.

 


문제는 이런 순간이 영화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이런 경우를 주위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예를들어 이주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빈곤의 해소이지만, 법은 이주노동자의 단속과 처벌에만 온 힘을 다한다. 영화는 현실에 만연한 법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을 뿐이다.






인권은 약자의 목소리를 듣는 것...

 
그렇다면 이렇게 불완전한 법으로 어떻게 인권을 지켜낼 수 있을까? 정정훈 변호사님의 강의에서 유독 자주 들렸던 “관계”, “대화”, “교류”, “목소리” 등의 단어에서 그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인(仁)이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이며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곧 인권”이라는 것이다.

 


공자는 “법률은 법률이기 때문에 올바른 게 아니라 그것이 인간과 인간의 관계를 사랑으로 충만한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올바른 것”이라고 했다. 이는 “법전 사이의 부사, 형용사를 보라”고 하신 정변호사님의 말씀과도 일맥상통한다. 무미건조한 법조문의 틀에서 벗어나 그 너머에서 사람을 발견할 때 비로소 법은 “사랑의 논리화”에 가까워지지 않을까.

 


마찬가지로, 당사자의 목소리를 배제한 채 당위적이고 이론적인 “정의”에서 출발한 인권은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이 될 수도 있다. 한 예로, 성매매 여성의 인권보호를 위한 에이즈 강제검진 철폐 주장에 대해 정작 당사자들은 “우리의 의견은 듣지도 않고 누구의 인권을 위한다는 거냐”며 항의했다고 한다.

 


결국 법과 인권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으로부터 출발하는 사고와 약자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자세라는

생각이 든다. 정변호사님이 당부하신 “상식과 가치관의 계속된 확장” 역시 이론과 학문 뿐만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과의 끊임없는 교류와 소통을 통해서 이뤄져야 할 것 같다.

 


다음은 강의자료 중에서 발견한 “아름다운 판결문”이다. 강의의 핵심을 찌르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혼자 보기엔 아까울 정도로 감동적이다. 혹시 안 보셨다면 꼭 한 번 읽기를 권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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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세심하고 사려 깊은 사람도 세상사 모두를 예상하고 대비할 수 는 없는 법이다. 가장 사려 깊고 조심스럽게 만들어진 법도 세상사 모든 사안에서 명확한 정의의 지침을 제공하기는 어려운 법이다. 법은 장래 발생 가능한 다양한 사안을 예상하고 미리 만들어두는 일종의 기성복 같은 것이어서 아무리 다양한 치수의 옷을 만들어 두어도 예상을 넘어 팔이 더 길거나 짧은 사람이 나오게 된다. 미리 만들어 둔 옷 치수에 맞지 않다고 하여 당신의 팔이 너무 길거나 짧은 것은 당신의 잘못이니 당신에게 줄 옷은 없다고 말할 것인가? 아니면 다소 번거롭더라도 옷의 길이를 조금 늘이거나 줄여 수선해 줄 것인가? 우리는 입법부가 만든 법률을 최종적으로 해석하고 집행하는 법원이 어느 정도 수선의 의무와 권한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의회가 만든 법률을 법원이 제멋대로 수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법률이 의도된 본래의 의미를 갖도록 보완하는 것이고 대한민국헌법이 예정하고 있는 우리 헌법체제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가을 들녘에는 황금물결이 일고, 집집마다 감나무엔 빨간 감이 익어 간다. 가을걷이에 나선 농부의 입가엔 노랫가락이 흘러나오고, 바라보는 아낙의 얼굴엔 웃음꽃이 폈다. 홀로 사는 칠십 노인을 집에서 쫓아내 달라고 요구하는 원고의 소장에서는 찬바람이 일고, 엄동설한에 길가에 나앉을 노인을 상상하는 이들의 눈가엔 물기가 맺힌다.

 


우리 모두는 차가운 머리만을 가진 사회보다 차가운 머리와 따뜻한 가슴을 함께 가진 사회에서 살기 원하기 때문에 법의 해석과 집행도 차가운 머리만이 아니라 따뜻한 가슴도 함께 갖고 하여야 한다고 믿는다. 이 사건에서 따뜻한 가슴만이 피고들의 편에 서있는 것이 아니라 차가운 머리도 그들의 편에 함께 서있다는 것이 우리의 견해이다.”

(대전고등법원 2006. 11. 1. 선고 2006나1846 판결)

 

글_박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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