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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대한민국 88만원 세대 - 『88만원세대』(우석훈,박권일)

공감의 목소리/공변의 일상

by 공감이 2008.02.02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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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가 국민소득 2만 달러 시대에 이른 오늘날 성장에 더 박차를 가하자는 데에 무슨 문제가 있느냐며 경쟁력을 운운한다면 그 지표가 과연 누구의 소득을 대변하는 것인지 되물어야 할 것이다. 지금의 20대는 상위 5%의 소수를 제외하고는 안정적인 직업을 갖지 못하고 나머지는 이미 800만 인구를 넘어선 비정규직의 삶을 살게 될 운명에 처해있다. 비정규직 평균 임금 119만원에 20대 급여의 평균비율 74%를 곱하면 88만원 정도가 된다고 한다. 이 비극의 원인은 신자유주의라고 말하면 정답일까? 그건 전부가 아니다.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수준의 한 특정 세대에 대한 착취를 기반으로 한국 경제가 작동하고 있다는 데 원인이 있다. 억지로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것은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다. 규모 위주의 정책이야말로 획일화와 세대 착취 현상을 악화시킨 원인 한복판에 있기 때문이다.

20대가 88만원에서 119만 원 사이를 평생 받게 되리라고 적힌 표지 날개에 뒤이어 1장의 앞머리는 16세 소녀의 동거 선언이 장식한다. “엄마, 나 그 사람하고 ‘동거’하기로 했어.” 다음 순서는 쉽게 상상이 간다. 저자 우석훈, 박권일의 표현대로 ‘집안망신’에서 ‘미친년’에 이르기까지 최악의 단어들이 난무하고 집안의 평화는 급격히 악화될 것이 뻔하다. 프랑스 사회에선 아주 다른 상황이 전개되리라고 저자는 이어간다. 어린 나이의 독립이 걱정은 되겠지만 함께 자녀의 미래를 고민하는 대신 저주를 퍼붓는 부모의 모습은 상상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왜 이런 차이가 빚어지는가? 이 뒤에 경제적인 맥락이 놓여 있다. 18세에서 20세의 청소년들에게 실질적 동거의 권리가 주어지지 않은 유일한 OECD 국가인 한국에서 이들은 사회의 약자다. 우선 살 곳이 있어야 독립을 한다. 미국처럼 사립대학 중심의 집중된 교육시스템을 가진 한국이지만 미국과 달리 사회적 간접자본은 형성되어 있지 않다. 알바 시장은 한가한 시간대에 나가 있으라고 하는 ‘꺾기’ 등 불법적 관행이 난무한다.

그러나 평생 엄두 내기도 힘든 주택비로 인해 주거권도 갖지 못하지, 고액의 등록금이 무서워도 고졸로 남으면 노동조건은 더 끔찍하게 악화될 것이 뻔하니 진학을 포기할 순 없는데 국가의 고등교육 지원액은 전혀 없는 것과 다를 바 없고 등록금 융자를 받자니 졸업 후 고소득이 보장되는 직장을 기대할 수 있는 경제 상황은 더욱이 아니지, 10대에게 투표권이 주어져 있지 않은 현 상황에서 알바 시장의 개선은 꿈도 꿀 수 없고 나이 지긋한 정치인 어르신들이 스스로 정책에 포함시켜주길 기대할 수도 없지- 이런 가운데 10대 시절만이 아니라 20대 초반에 독립해 동거한다는 것마저 대한민국에서 평균의 인생을 포기하는 결심이 될 수 있다. 성욕이 왕성한 시기인 16세-18세 사이 성생활이 가능한 사회가 디자인되어 있지 않은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고 법적으로 성인이 된 20대 초반의 섹스 마저 미래와 안정성을 보장 받지 못한 상태에서는 불안을 피할 수 없기에 가슴 아픈 기억으로 종지부를 찍기 십상이란 것이다. 10대의 동거권이 부재할 수밖에 없는 한국 사회의 요건들은 개인적 불행뿐 아니라 무엇보다 이곳의 시스템이 사회적 약자에게 얼마나 꽉 막혀 있는지를 설명하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젊은 세대의 몫을 이전 세대가 너무 많이 써버리는 것으로부터 지켜내기 위한 조치를 선진국 진입의 문턱에서 취해주지 않았고, 손쉽게 평생 일자리를 구했던 이전 세대 및 같은 세대 내 소수의 독식이 날로 심각해져 가는 가운데 이들은 보호와 지도를 받아야 할 존재라는 미명 아래 관리되고 획일화와 무한경쟁의 늪 속에서 몸부림치고 있다.

워싱턴 컨센서스로 상징되는 신자유주의는 오늘날 어느 나라도 피해가지 못하는 시대적 제약 같은 것이지만 그래도 한국처럼 아무런 안전장치와 조치 없이 비바람 속을 달리는 나라는 없다. 자본주의를 그대로 내버려두면 소수에 의한 독과점화가 걷잡을 수 없이 진행되어 몸집 큰 몇 개의 기업들만 살아남는다는 속성은 역사가 체험한 바로, 공룡멸종의 비극을 피하기 위해 미국도 유럽도 정부나 지방자치체 차원에서 조치를 취해왔다. 한국도 김대중 정부 때까지는 그런 장치를 적게든 많게든 죽 시도해 왔다. 박정희는 중소기업에 대해 보호주의적인 정책을 펼친 대통령이었고 전두환은 과외를 금지시켰고 김대중은 벤처기업 열풍에 앞장섰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때는 그 유사한 것조차 없었다고 저자는 비판한다. 미국모델 쪽으로 완전히 선회한 데다 그가 펼친 승자독식의 논리는 수도권 집중, 교육의 획일화, 대기업에 유리하고 독점화에 대한 아무런 안전핀도 고안해두지 않은 정책들로 이어졌다. 국민의 목소리에도 요지부동인 태도는 FTA 밀실협상에서도 유지되었다. 국민들이 대통령을 뽑는 것 이외에 국정의 중요사안에 대해 결정적 영향을 줄 수 없게 되어 있는 한국의 헌법 시스템에서 다음 정부의 독주 또한 막을 수 없을 것이다. 정상적 환경영향평가와 원로 경제학자, 환경학자들의 경고도 무시하고 내달리는 대운하 건설계획을 볼 때 이명박 당선자에게서 다른 태도를 기대하긴 어려우니 다음 정부에서도 악화일로를 달리는 것 외에 여지가 없어 보인다. 두려운 것은 ‘잠김 효과’라고 한다. 한번 결정 내린 사항을 미래에 더는 되돌릴 수 없게 되는 무서운 시점을 가리키는 용어다. 지난 세월 동안 기적적인 경제성장률을 보이며 정신 없이 몸뚱이를 불려온 한국 경제에서 결국 희생양으로 기능한 오늘날의 20대라는 현상은 지금도 이미 사교육시장이라는 인질경제에 사로잡혀 있는 10대들의 미래에 한층 더 파괴적인 모습으로 이어질 것이다. 중요한 것은 성장률이 아니라 성장패턴이다. 저자의 표현을 따르면 비경제적 요소들을 어떻게 성장과 잘 조화시키느냐의 문제라는 것이다.

현 정부가 몇 년에 걸쳐 추진해온 정책들로 한국사회의 연공서열제와 자정작용은 파괴되었다고 분석되고 있다. 수도권과 대기업 중심의 경제 정책이 높여가는 진입장벽은 안정된 체계 안에 이미 자리잡고 있는 유신세대나 386 세대가 아닌 젊은 세대를 향해 아귀지옥의 문을 열어젖힌다. 현재의 20대는 정치적으로도 별 의미를 갖지 못하는 집단으로 마치 덩어리와 같이 취급되어 한없이 재생산되는 쇼비니즘과 사치 마케팅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유통경제에서 한국은 거대 프랜차이징 업체에 의한 지역경제 파괴를 막기 위해 프랑스가 까르푸를 도시 외곽에만 설치하도록 제한하는 것과 같은 장치가 전혀 고안되어 있지 않고 있고 그렇다고 스웨덴과 같이 노동조합이 20대와 힘을 합쳐 직업나누기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품질경쟁력에 가격경쟁력까지 포기한 스타벅스와 같은 프랜차이징이 왜 잘 나가는지 경제학이 설명할 길은 없지만 20대 사이에는 같은 세대 사장이 운영하는 자영업 커피점보다 스타벅스를 선호하는 문화가 지배적인데, 이 역시 마케팅의 승리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만 단결력이 약한 20대에게서 세대와 지역간의 협력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까지 한국의 20대의 특성을 정의 내리려고 시도해왔다. 월드컵 시기에 맹목적으로 불거진 민족주의나 무식한 대학생, 보수화 등이 다양하게 거론되었다. 현상을 역사와 경제라는 맥락에서 분석하는 가운데 저자에게서는 차라리 그들을 향한 이해의 시선이 묻어난다. 20대가 왜 이 지경이 되었는가를 두고 몰아세우는 대신 그들을 지옥 속으로 밀어 넣은 것이 누구냐고 묻는다. 20대의 의식 없음을 질타해온 홍세화 또한 추천사를 통해 우석훈의 글이 20대를 이해하게 하는 열쇠를 제공했다고 고백한다. 저자는 20대의 삶을 패자부활전 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기에 상대적 승자마저도 살아남는 대신 죽음의 시기를 조금 늦출 수 있을 뿐인 개미지옥에 비교한다. 그러나 생존이 걸린 경쟁에서는 피부터 튄다. 상위 5% 이외의 대다수를 소외시키는 사회가 오래 버틸 수 없다는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지만 문제는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풀어나갈 주체가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사자들에겐 힘이 없고 직접적으로 이해가 얽히지 않은 기성세대는 무관심하며 사태를 악화시킨 정부는 방관한다. 이전 어느 세대도 경험하지 못했던 수준의 승자독식 논리의 포로로 살아온 20대가 단결력을 갖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KTX 20대 여승무원들의 정규직화 싸움은 기성세대를 상대로 한 싸움의 비극과 의의를 동시에 가로 새긴다. 한국 사회의 시스템이 파괴해온 단결력을 20대 자신의 힘으로 창조해내야 한다. 주로 20대에 집중된 비정규직 중의 비정규직으로 내몰린 방송국 작가 시장을 가진 우리 한국인의 눈에 저 건너 대륙의 미국에서 노예계약에 반발한 파업을 2개월 이상 지속하면서 연말의 골든 글로브 시상식까지 취소 시켜버린 작가들의 의지와 이들에 대한 3분의 2 이상의 미국인들과 헐리우드 스타들의 적극적인 연대는 무언가 뜨겁고도 답답한 걸 느끼게 한다. 우리도 할 수 있을까, 생각을 뒤따르는 입맛은 늘 씁쓸해도 죽는 순간까지도 희망을 놓을 순 없는 게 인간 아닌지.

일례로 알바의 임금 수준을 결정하는 법정 최저임금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에서부터 다양한 질문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데서 저자의 역량과 경험이 발휘되는 한편, 그게 큰 예산을 요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왜 실행되지 않고 있으며 앞으로도 실현되기 어려운가를 짚어 보이는 데서는 한국 사회구조의 답답한 구조적, 문화적 모순들이 되풀이되어 드러난다. 한국은 한 사회를 발전시키는 중요한 사회적 자본이라고 일컬어지는 세대간, 세대 내의 신뢰마저 붕괴된 상태 같다. 지하철을 가득 채운 혐오와 무섭게 관용을 잃어가는 우리의 모습은 서울을 점점 제정신으로 살기 벅찬 도시로 만들어가고 있다. 저자는 우선 인간에 대한 예의를 회복해야 한다고 말한다. 경제, 경제 하지만 실제로 경제학자의 형편이 나아진 것도 아닌 이 땅, 구체적인 자원과 분석을 바탕으로 한 숙고와 행동이 필요한 순간이다. 생태경제학에서 말하는 공진화(co-evolution)를 위해서는 개인과 시스템, 기성세대 차원에서의 변화와 양보를 위한 합의가 필요하다. 젊은 세대 쪽에서는 돌연변이로 등장해 사회를 다음 단계로 진화시키기 위한 창조적인 힘을 내부에서 찾고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앞으로의 5년이 한국 사회의 미래를 크게 좌우할 것이다. 미국형은커녕 중남미형 사회로 벌써 깊은 발을 내디딘 한국에서 “20대와 다음 세대가 당면하게 될 경제적 운명을 어떻게 풀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저자는 고민의 흔적들로 빼곡한 글을 맺는다.

- 5기 인턴 유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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