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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전태일, 비정규직 노동자 (2009. 11)

공감이 하는 일/자원활동가 이야기

by 비회원 2009.12.09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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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같은 일터 같은 일, 그러나 다른 지위의 노동자
 
올해 7월, 소위 “비정규직 법”이라고 불리는 3가지 법률 -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파견 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노동위원회법의 개정과 시행 논란으로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가슴을 졸였다. 2007년 7월에 제정된 이법은, 회사가 2년 이상 비정규직을 고용할 경우 해당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해 주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리고 약속했던 2년이 지난 지금 비정규직법이 약속했던 취지와는 다르게 이용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명확한 해결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
 
오히려, 미디어 관련법에 대한 여야의 극렬한 대립으로 ‘비정규직법’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결국 정치권에서는 제대로 된 논의도 없이 국민들의 불신만 자초했고, 오늘도 여전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사회의 안전망 없이 정규직과 같은 일터에서 같은 업무를 하며 다른 대우를 받고 있다.
 
왜 같은 일터에서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을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누었을까? 같은 일을 하는 동료 노동자가 서로 다른 지위를 가지게 된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 정규직은 정해진 고용기간 없이, 하루 8시간 근무를 바탕으로 노동법의 보호를 받는 지위를 가진 자들이다. 노동법의 보호에는 고용 보호, 승급 보장, 사회 보험 적용 등이 포함된다. 즉, 고용주는 정규직 노동자에게 위와 같은 보호를 제공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하지만 비정규직을 고용한다면, 이러한 고민 없이 노동자를 사용할 수 있다.
 
역설적이게도 비정규직 고용자에게 이러한 일상적인 해고의 위협을 주면서, 그들과 같이 일하거나 혹은 그들을 관리 하는 중간 간부이상의 직급을 가진 사람들은 과거 87년 민주화를 외치며 독재에 대한 저항을 드러냈던 넥타이 부대이다. 이것이 신자유주의 물결에 의해 노동의 유연화와 함께 각박해진 우리 현실의 표상이다. 같은 직장에서 옆에 앉아 같은 일을 하는 동료이더라도, 다른 지위에 있는 정규직 노동자들이 항상 비정규직 노동자의 편인 것은 아니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비정규직의 경우 해고가 자유롭고 근로기준법을 준수하지 않아도 되기에, 효율성 측면에서 좋은 인력수급원이다. 게다가 정부도 노동 유연화 정책을 지원하기 때문에, 동일한 가치의 노동을 하지만 다른 지위에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는 급속히 팽창하게 된다.

 


2. 비정규직의 만연과 그 유형
 
그렇다면 우리 주변에 비정규직은 얼마나 있을까? 사실 우리 사회에서 “비정규직”이라는 명칭을 갖고 있는 직업은 없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흔히 보는 아파트 경비원 아저씨, 청소 용역 아주머니에서부터 대형 마트의 하청 업체 직원들까지 비정규직은 넘쳐난다. 정규직 외의 간접고용 형태인 파견과 용역, 직접고용 형태 중에서는 단시간 근로 및 계약, 임시직 그리고 특수 고용 등으로 근로하는 이들이 바로 비정규직 노동자이다. 2009년 8월에 통계청에서 실시한 경제활동조사 부가조사에 따르면 전체 임금 노동자 중에 51.9%가 비정규직으로 나타났다. 즉, 우리 사회에서 임금을 받고 일하는 노동자의 절반 이상이 비정규직으로 고용되어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불법적으로 이루어지는 파견은 고용 불안을 야기할 뿐 아니라, 비정규직 노동자의 상처를 더 아프게 하고 있다. 고용 계약은 도급이라 하더라도, 실질적으로는 노동자와 고용계약을 맺은 파견사업주가 아닌 사용사업주, 즉 파견된 근로지의 관리자로부터 지휘감독을 받기 때문이다. 기업에서는 이러한 불법 파견이 들통나는 것을 피하기 위해 편법을 쓰고 있다. 한 예로 자동차 생산라인에서는 로봇 및 칸막이를 이용한 구분선을 통하여 법망을 피하고 있다. 작업을 위해 움직이는 로봇 주위에 사각 펜스가 있는데, 이 로봇에서 일하면 비정규직 근로자는 정규직과 다른 생산에 참여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이 경우 로봇이 움직이는 한 일을 계속해야 하기에 과중한 업무에 시달려 육체적 문제까지 발생할 수 있다.
 
 
3. 아픔의 공감과 치유
 
전태일은 참담한 현실 앞에 눈을 감고 귀를 막는 한국사회에, 자신을 비롯한 노동자의 외침을 전하기 위해 분신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했다. 40년이 지난 현재, 대한민국은 말로는 국가의 격을 높이고 선진국 진입 준비를 한다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21세기 전태일을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보아야 한다. 위와 같이 비정규직이 만연한데 지금 내가 비정규직이 아니라고 그들의 아픔을 외면해도 괜찮을까? 나의 친구, 나의 가족이 비정규직이라면, 과연 그때도 귀를 닫을 수 있을까? 우리에게는 비정규직 고용자들의 아픔에 대한 공감이 필요하다.
 
이러한 공감을 통하여 보다 근본적으로 제도적 개선을 이끌어 내야 한다. 비정규직을 양산하지 않기 위하여 사유 제한을 하는 것도 한 예가 될 것이다. 비정규직은 원칙상 임시로 단기간에 쓰는 것이므로, 프로젝트 사업이나 계절적 특성에 의한 사업같이 비정규직을 쓸 수 있는 사유에 엄격한 제한을 두고 나머지 노동자는 정규직으로 고용하여 치유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더 자세한 내용은 녹취록을 참고하세요)
 

11월월례포럼녹취록.hwp


글_10기 인턴 장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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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12.09 17:40 신고
    월례포럼 후기 잘 읽었습니다~ 저도 그 자리에 있었는데....
    왜인지 모르게 새로운 내용들이 많네요. ^^ㅋㅋ
    '일'이라는 것, 또 일을 통해 먹고 산다는 것, 모두 중요한 건데도 불구하고
    사람을 경제적 가치로만 재단하는 기업들, 혹은 자본의 논리에 묻혀 지금까지 오게된 것 아닌가 싶어요. 다함께 고민해봐야할 문제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