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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찾으려다 현실과 싸우게 되다 - 공익제보자들의 고단한 싸움에 관하여

공감이 하는 일/자원활동가 이야기

by 비회원 2009.10.22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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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에 와서 두 번째로 맡은 케이스는 그 두께만으로도 가슴에 ‘쿵’ 하고 무게감이 느껴지던 서류 뭉치, 그리고 그 종이들을 가득 채운 옴의 공식과 물리학 법칙으로 내게 기억된다. 아인슈타인 할아버지의 얼굴이 아무리 친근해도 그 분이 얼마나 천재인지 결코 이해할 수 없을 만큼 과학에 문외한인 나는, 그 케이스를 맡은 2주 내내 방대한 양과 어려운 자료들에 대해 친구들에게 엄살을 부려댔다.


케이스가 어려워서도 힘들었지만 한편 또 다른 이유로 마음이 짓눌렸다. 서류뭉치 속의 공식들 뒤에 숨겨져 있는 어떤 절박한 목소리와, 그 목소리를 짓누르는 거대한 현실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한 직원이 있다. 그는 30년간 일해 온 직장이 어쩌면 혈세 수백억을 낭비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에 열심히 연구해 문제를 지적하지만, 회사는 그를 무시할 뿐만 아니라 위협하기까지 한다. 거대한 설비 공사가 사적으로나 공적으로도 해로우리라는 확신을 가진 직원은 회사 안팎으로 문제제기를 계속한다. 정부를 비롯한 연구소와 기관들이 직원의 문제제기를 옹호하지만 회사는 결국 그를 해고하고 거금의 손해배상청구를 하기에 이른다.


직장을 잃은 한 개인에 불과한 직원. 그럼에도 거대한 재력과 회사의 ‘똑똑한’ 자문위원들, 더불어 실재하는 권력을 상대해야 하는, 마치 골리앗을 앞에 둔 다윗과 같은 그의 처지를 준비 서면만으로도 훤히 볼 수 있었다. 그의 문제제기가 얼마나 타당한지는 정확히 알 수 없어도, 수만 인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어떤 의구심을 풀기 위해 그가 홀로 증명하고 반박해야 하는 ‘비밀들’이 얼마나 많을지, 또 그 비밀을 둘러싼 주체들이 얼마나 강한 힘을 가지고 그를 압박하고 공격할지가 생생히 느껴져 가슴이 콱 막혔다.


두 번째 케이스를 정신없고 어설프게 마친 지 몇 주 후 사무실로 아주머니 한 분께서 찾아오셨다. 보험사 대리점과 구청 간 계약상의 비리를 파헤치고 문제제기를 했다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대리점 계약을 해지당하고 그 동안의 수당도 받지 못하셨다는 그 분. 사실 이런 문제제기를 하기 전에는 우수 직원에도 여러 번 뽑히셨단다. 이미 2년쯤 지속해온 회사와의 대립에 지친 아주머니의 얼굴에는 분노와 어둠이 지나가더니 이내 눈물이 맺혔다. 내 가슴은 한 번 더 콱 막혔다. 


직장에서 받은 표창들이 보여주듯, 문제를 제기하기 전 두 분은 모두 모범적인 성실함을 인정받아오셨다. 다만, 회사가 원한 성실함은 오직 ‘주어진 일을 완수하는’ 선에 그치는 것이었나 보다. 사소하지만 명백한 오류를 발견했을 두 분은 아마도 철저한 성실함을 곧이곧대로 밀고 나갔고, 그 오류에 대한 의구심은 더 심층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를 건드렸을 것이다. 그 분들이 회사의 ‘상식적인 이익’을 위해 제기한 문제들은 회사의 ‘숨은’ 이익과 충돌했을 것이고, 회사는 불필요하게 성실한 직원의 입을 막아야 할 필요를 느껴 직원을 압박하고 쫒아내는 것은 물론, 그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던 것일까.


진실이 무엇인지, 또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은 숨은 내막이 과연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내 머릿속에는 영화 [마이클 클레이튼]과 [에린 브로코비치]의 줄거리가 떠올랐다. 일상으로 삐져나온 잘못 하나를 건드렸다가 모순적인 구조의 물결에 휩쓸리게 된 어떤 주인공들의 이야기. 그 익숙한 이야기가 재현되고 있었다.


타당하지는 않더라도, 직장이 공적으로 수행하는 활동에 대해 합리적인 문제를 제기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의견을 개진하는 것은 가능할뿐더러 오히려 권장할만한 일이라 생각된다. 사회생활을 한 이들이 가장 뼈저리게 체득한다는 사실, ‘가만히 있는 것이 이득’이라는 것, 무관심한 것과 모르는 것이 제일 낫다는 유혹을 뿌리치고 용기를 낸 분들이 있지만 회사에서는 이들을 프락치 또는 불순하고 욕심과 반감에 찬 명예훼손자로 비난한다. 무식하고 아는 것도 없으면서 나선다며 공개적으로 이들을 손가락질하는 것이다. 제보자들은 보상까지는 아니더라도 사회와 회사에 도움이 될 만한 사실을 지적했다는 자부심 정도는 있었을 텐데, 오히려 이들은 하루 만에 현실 그 자체와 싸워야 한다. 외부에서 쏟아지는 공격들과 생활고, 더불어 공적인 책임과 가족들의 삶 모두의 무게가 갑자기 그가 지고 싸워야 할 현실의 무게로 한순간 내려앉는다. 한 번 시작된 이런 현실과의 싸움은 수년간 지속되는 것이 보통이다.


이제 막 시작된 싸움들을 마주하게 되니 이와 같은 소송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떻게 마무리될는지 쉽사리 예상 되지 않는다. 아마도 공익제보자들이 무릅쓴 용기에 대해 현실적으로 인정을 받고 그로 인한 보상을 받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기고 지고를 떠나서, 그들이 싸우는 의미는 어둠을 밝히는 촛불처럼 어딘가 아직 알 수 없는 곳이 ‘있다’고 밝히는 것에 있지 않을까 싶다. 어둠 속에 무엇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또 그 자체로 뭔가를 채워 넣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엷게 떨리면서도 사람들에게 진실이 무엇인지를 질문하게 만들 수 있는 힘. 촛불 하나하나가 결국 바람에 꺼지더라도 사람들은 떠오른 의문에 대해 질문하기 시작할 것이다. 이런 과정 속에서 숨겨진 진실이 드러나고 그것이 정말 ‘모두의 이익’으로 이어질 때 첫 불을 밝힌 공익제보자들이 웃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막힌 가슴을 다시 한 번 쓸어내려 본다.

글_10기 인턴 박정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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