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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여성 인권 실태 조사 - 중국 연길 출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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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북한을...



지난 8월 탈북여성 인권 실태 조사팀과 함께 중국·북한 국경지역을 다녀왔다. 탈북여성들을 만나 남한에서의 정착과정을 중심으로 심층 인터뷰를 진행해오던 연구자들은 그들의 삶 속에 탈북 당시의 경험이 무겁게 자리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고 탈북여성을 더 깊이 이해하고자 인터뷰 과정에서 주요하게 언급되는 중국 연길 지역과 두만강 국경지역을 다녀오기로 했다. 평소 탈북여성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차에 그 소식을 듣고 함께 가겠다며 덜컥 따라 나섰다.


[사진1] 연길 번화가, 간판에 한글과 한문이 병기되어 있다. 간판 색은 붉은 색이 주종을 이루고 있었다.


길림성에 있는 연길은 전체 약 210만 인구 중 80만 정도가 조선족으로 이루어졌다. 그래서인지 연길 시내의 모든 간판은 한문과 한글로 병행 표기 되어 있었고, 웬만한 식당이나 상가에서는 한국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백두산(장백산) 관광을 위한 베이스켐프로서의 지리적 위치 때문에 연길은 관광수입이 지역 경제 수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고 한다. 보통 관광객들은 연길 시내 호텔에 투숙한 후에 새벽에 2~3시간 동안 차로 이동하여 백두산 관광을 마치고 다시 연길로 돌아와 북한 음식점에서 저녁을 먹는다고 한다. 중국·북한 국경 지역에 인접한 도시라는 점 때문에 북한 이탈자들에게도 연길은 중요한 곳이다. 탈북자들은 연길을 통해 내륙의 오지나 제3국으로 이동해 나가고, 농촌 오지에 있던 탈북여성들은 돈을 벌기 위해 연길로 나온다.


[사진2] 연길 서시장, 우리나라 남대문 시장 같은 곳으로 재래시장과 현대 시장이 함께 공존하는 곳


탈북 여성의 인터뷰 속에서 ‘연길’은 몇 달치 월급을 주지 않은 채 공안에 신고하는 악덕 상인, 시골 오지의 한족 남성에게 결혼을 알선하는 브로커가 있는 곳, 또는 공안 단속을 피해 숨어 지내는 어두컴컴한 골방이 있는 곳과 같이 부정적이고 어두운 이미지로 등장한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만난 연길은 아직 시골 냄새·사람 냄새가 나는 순박한 곳이었고, 북한·중국·남한의 사회정치경제를 고민하는 사려 깊은 곳이었고, 경제 발전과 소비에 대한 기대로 흥분이 깃들어 있는 곳이었다. 연길에 거주하는 조선족 대부분이 북한에 가까운 친인척을 두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연길과 북한은 마음의 길도 가까웠다. 90년대 북한 식량난이 심각했을 때에는 민간 차원의 북한 지원이 활발했었고 현재에도 북한과 자유로이 왕래하고 있었다. 북한 서적을 읽는 것조차 불온시 되는 사회에서 살아온 나에게 그들의 일상적 가까움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사진3] 백두산 천지, 날이 맑게 개어 천지의 신령스런 모습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우리의 첫번째 여정은 연길에서 출발하여 백두산 천지를 거쳐 두만강 상류의 중국·북한 국경지역을 훑는 것이었다. 비포장도로인데다 폭우까지 쏟아져 국경지역의 도로 상태는 최악이었다. 나의 예상과 달리 두만강은 너무나도 아담하고 소박했다. 어른 걸음으로 열 걸음 정도만 첨벙 첨벙 건너면 쉬 넘어갈 수 있는 폭이었다. 실천을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침엽수림이 끝도 한도 없이 펼쳐져 있었다. 두만강을 건너 침엽수림을 뚫고 몇날 며칠을 걸어 인가를 찾아 나아가는 탈북 여성을 상상해볼 수 있었다. 주위엔 인가가 드물어 우리 일행도 결국 밥 사먹을 곳을 찾지 못해 점심과 저녁을 연이어 굶어야할 정도였다.


사진4: 두만강 상류 개울, 중국 변쪽으로 갓 두른 철조망이 보인다.


대여섯시간의 여정 동안 중국 공안을 세차례나 만났다. 현지인의 말에 따르면 국경 경계가 삼엄해졌다고 한다. 두만강 중국쪽 변으로는 철조망이 설치되어 있었다. 예전에는 없었던 것으로 1년 전에 설치된 것이라고 한다. 또한 비포장 길 곳곳에서는 군인들의 도로 포장 공사가 한창이었다. 탈북 이슈가 국제사회에 문제가 되면서 중국이 국경통제를 강화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직접 느낄 수 있었다. 이러한 변화가 북한 사람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가늠하기 먹먹했다.



<사진5: 도문 국경 지역 사진>


두 번째 여정은 중국과 북한의 공식적 국경이 있는 곳으로 두만강 하류지역에 있는 '도문'이었다. 두만강 위 다리를 사이에 두고 중국과 북한이 마주하고 있었다. 둘러보는 동안 다리 위로 트럭이 지나다니고, 보따리 장수가 돌아오고 사업가가 넘나들고 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국경’하면 남한과 북한 사이의 지뢰밭와 서로에게 겨눈 총구로 갈라진 38선이 먼저 떠오르는 내게 중국과 북한 사이의 가볍다 못해 허술해 보이는 경계는 낯설었다. 연길에서 만난 이들은 아직도 식량난으로 굶어 죽는 북한사람들의 처지를 가슴 깊이 아파 하고 있었다.

반면 북한 지원에 소극적인 남한 정부와 분란만 일으키는 남한 시민단체의 현지활동에 대하여는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한 현지인의 "그럼에도 불구하고"론이 가슴속에 깊이 와 박힌다. "북한의 정치가 어떠하든, 군사 활동이 어떠하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경제가 개방될 수 있도록, 그래서 북한 인민들이 제대로 먹고 살 수 있도록 지속적인 접촉과 지원을 하는 자세가 무엇보다 절실하다“는 그 선생님의 ‘그럼에도 불구하고’ 론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북한을...’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것, 한동안 나의 화두가 될 것이다.


글_소라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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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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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9.10 22:25
    마지막 도문 사진에서 다리 너머 보이는 것이 바로 북한 시가지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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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9.10 23:14
    좀더 자세한 글이랑, 사진 또 올려주시는 거죠?? 궁금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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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9.11 00:33
    바로 저 너머 가깝게 보이는 곳이 북한이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경계를 넘기위해 생사를 거는 사람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요..
    저도 고민해볼게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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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9.11 13:54
    아,,소변호사님 출장후기 기대하고 있었는데..
    너무 잘 봤어요.

    우리에겐 참 먼 북한이,
    다른 나라 중국에겐 참 가깝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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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09.13 00:43
    출장 다녀오시면서 화두를 하나 가져오셨네요~^^
    조사에 동행한 변호사님의 열의도 느껴지고요.
    북한 주민의 인권실태 파악과 보호에 많은 노력 부탁드려요~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