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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1회 인권법캠프 후기] 인권변호사란 무엇인가

공감이 하는 일/공감 인권법 캠프

by shin~ 2020. 2. 20.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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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변호사는 인권 변호사로 불려야 마땅하다. 누군가의 권리를 법으로 대변하는 것이 변호사의 업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변호사 중에서 인권 변호사를 따로 구분해내어 그들에게 각별한 경외 혹은 기대를 보낸다. 왜일까?
 
인권 변호사는 다른 법조인보다 ‘정치적’이다. 이번 캠프에서 얻은 가장 와 닿는 설명이다. 사회의 모든 산물은 정치를 따라 나뉜다. “정치는 사회적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라지 않는가. 법은 그 도도한 흐름을 표상하여 시민을 규율하는 제도이다.
따라서 이미 견고한 제도와 그로부터 비롯된 관습을 오롯이 집행하고자 한다면, 나는 아마도 그를 인권 변호사라고 부르지는 않을 것이다. 기존 흐름의 결함과 부당함을 조명하고 어떻게든 ‘법적 가능성’을 찾아 물길을 바꾸려 애쓰는 사람이 인권 변호사 아닐까. 그런 사람은 필연적으로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정치적 구심점은 인권 변호사에게 필수이다. 법의 세계는 사회적으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장서연 변호사가 진행한 ‘빈곤과 복지’ 강의에서 이를 직감했다. 우리는 ‘불평등의 사회적 원인과 대안, 실행할 수 있는 첫걸음은 무엇인가’라는, 거대한 주제를 두고 토론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거의 모든 참가자가 정책에 드는 비용을 염려했다는 것이다. 이해가는 측면은 있지만 우리는 되물어야만 한다. 정부는 사회 문제를 공동체적으로 다루어 나가는 근거인가? 아니면 시장 원칙과 효율성의 기치 아래에 있는 이해 당사자 중 하나인가? 둘 중 어느 입장을 택하는지는 다분히 정치적 선택이다. 그러나 후자를 택하고서 불평등을 해소하려 드는 것은 이길 수 없는 싸움을 시작하는 것과 같다. 당신이 반노동, 반정치를 외치는 신자유주의와 이를 정당화하는 능력주의 모두를 받아들인다면, 어떻게 약자의 연대와 그 가능성을 믿을 수 있겠는가? 금전과 동일시되는 효율성 개념 앞에서 그 어떤 법적 창발성을 포착해낼 수 있겠는가? 정치적 연원을 제대로 고민하지 않는다면, 인권 변호사 역시 기능인에 그치고 말 것이다.
따라서 인권 변호사는 신념을 가지고 구조를 겨냥하는, 법으로 정치하는 사람이라고 하겠다.
 
산업 재해로 하루에 3명이 죽는다. “떨어지고 으깨지고 꺾이고 터져서” 죽는다. 시대가 바뀌었다는데 별다른 변화가 없다. 이를 방치하는 사회와 바이러스에 신속히 대처하는 사회가 같다는 게 기이하다. 노동자의 죽음은 이미 일상이기에 당연한 탓일까? 누군가 많이 죽기야 하지만 그것이 나의 죽음은 아니기에 괜찮은 걸까? 인권 변호사로서 이 난맥상에 맞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인권 변호사는 무엇인지 나름대로 재정의 해보며 이런 얄팍한 생각이나마 해볼 수 있었던, 두고두고 곱씹을 거리를 안겨주는 이틀이었다.

글_이민재(캠프 참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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