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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남은 쌍용차 해고 노동자 46명의 복직을 위하여 _ 윤지영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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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년 전이다. 쌍용자동차에서 일하던 직원 2,700여 명이 정리해고를 당했다. 정리해고에 저항하던 노조는 공장 문을 걸어 잠그고 70일 넘게 파업을 벌였고, 결국 경찰의 진압으로 해산했다. ‘쌍용자동차 사태’라고 부를 정도로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된 사건이었다.


  그 사이 많은 일이 있었다. 대주주였던 중국 상하이차그룹이 사태가 발생하기 직전 기술을 빼돌리고 법정관리를 신청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법정관리를 신청하기에 앞서 대규모 회계 조작을 했다는 사실도 법원 판결로 확정되었다. 그러나 양승태 대법원은 회계 조작과 정리해고는 무관하다고 판결했다. 항소심과는 다른 판단이었다. 법원 행정처와 청와대와의 협상 전략을 정리한 문건에서 이 대법원 판결이 언급되었다는 점은 한참 후에 밝혀졌다.


  끝까지 파업에 동참한 조합원들 상당수가 투옥되었고, 회사와 경찰이 각각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의 소의 피고가 되었다. 소가는 백억 원이 넘는다. 그리고 해고 노동자와 그 가족 16명이 자살을 택했다. 병사, 돌연사한 사람들까지 합하면 30명에 이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고 노동자들은 거리에서 싸움을 이어 나갔다. 9년이 지난 2018. 9. 21. 마침내 쌍용자동차(주), 기업노조, 해고 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인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그리고 경제사회노동위원회는 끝까지 남은 해고 노동자 119명(60%는 2018년 말까지 복직, 40%는 2019년 말까지 복직)을 전원 복직시키기로 합의했다. 해고 노동자들의 싸움과 사회적 공감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언론과 시민사회는 이 합의를 ‘사회적 합의’라 불렀다. ‘사회적 합의’라고는 하지만 엄연히 법적 구속력을 가지는 법률관계였다. 법적 구속력에 따라 회사는 71명의 해고 노동자에 대해서는 2018년 말까지 복직을 완료시켰다. 남은 46명도 10년간의 긴 싸움을 끝내고 출근을 준비했다. 타지에 갔다가 회사 근처에 다시 집을 구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하던 일을 정리한 사람도 있었다. 여기에는 김득중 현 쌍차지부 지부장과 10년 전 쌍차지부 지부장이었던 한상균도 포함된다. 전,현 지부장으로서 다른 노동자들을 먼저 복직시키고 마지막에 복직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런데 열흘 전인 성탄절 전야에 이들에게 갑작스런 비보가 날아들었다. 회사와 기업노조가 복직을 기다리는 46명의 휴직을 무기한 연장하는 합의를 한 것이다. 당사자도 모르게 진행된 일이었다. 교섭의 한계를 벗어나는 합의였고, 사회적 합의에 반하는 합의였다. 회사와 기업노조는 경영상 어려움을 이야기했지만 임금의 70%를 휴업수당으로 지급하겠다는 것을 보면 단지 돈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10년 넘게 해고자 신분이었던 이들로서는 휴업수당만으로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해결하기도 어렵지만, 금전적이 어려움을 떠나 기한 없이 일을 하지 못하게 되는 불안정한 지위가 사실 큰 불이익이다. 회사와 기업노조는 겨우 버텨왔던 이들에게 마지막 확인사살을 가하는 격이었다.


  공감은 10년 전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을 지원한 바 있다. 이번에도 공감은 법률의견서를 작성했고, 조만간 금속노조 법률원과 함께 해고노동자들을 대리하여 부당휴직에 대한 구제 신청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윤보다 인간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글_윤지영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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