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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변의 변] 노숙인쉼터는 우리의 이웃이 될 수 있는가 - 차혜령 변호사

공감의 목소리/공변의 변

by 비회원 2009. 7. 6.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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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노숙인쉼터가 하나 있다. 쉼터에 있는 아저씨들은 대개 IMF 사태 이후 가정과 직장에서 떨어져 나와 길거리 노숙(露宿)을 하기도 하고 이곳저곳 시설을 떠돌기도 하다가 사회복귀 마지막 단계라고 하는 이 쉼터에 들어왔다. 아저씨들은 쉼터에서 먹고 자며 매일 일을 하러 나가고, 일하여 번 돈을 꼬박꼬박 가족에게 부치거나 저축을 한다. 저축한 돈이 200만 원 남짓이고 3개월 이상 계속 일자리가 있으면, 서울특별시와 대한주택공사에서 제공하는 단신계층용 매입임대주택의 입주신청을 할 자격이 된다. 이 때문에 아저씨들은 먹여주고 재워주는 이 쉼터를 발판삼아, 쉼터를 벗어나기 위해, 그리고 자립하기 위해 벌이가 되는 일을 찾아 나선다. 쉼터에는 5년, 10년씩 노숙인보호사업을 해 온 사회복지사들이 있어 아저씨들에게 금전 관리, 건강과 의료, 심리 상담 등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쉼터가 제공하는 숙식만으로 충분히 만족하는 아저씨들이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아저씨들은 ‘여기가 마지막이다’라는 생각으로 오랜 홈리스 생활을 청산하고 다시 사회로 복귀하고자 안간힘을 쓴다.



 이 쉼터를 좀더 넓고 쾌적한 시설로 옮기기 위해 적당한 건물을 찾던 중 한 건물을 발견하게 된다. 아저씨들에게 좀더 편한 잠자리를 제공할 수 있겠다 싶은 곳이다. 근처에는 여자중고등학교가 있고 주택들이 있고 근린생활시설이 있는 평온한 동네이다. 쉼터를 운영하는 재단은 그 건물을 사들이고 관할 구청장의 노유자시설(老幼者施設. 건축법상 사회복지시설은 노유자시설로 분류되어 있음)로의 용도변경 허가를 받고서 쉼터에 필요한 시설과 설비를 추가하는 공사를 모두 마치고 사용승인을 얻었다. 이제 사회복지시설 설치․운영신고만 하면 쉼터는 정상적인 운영을 할 수 있게 된다.


 


 자, 여기서 문제. 노숙인쉼터가 들어선다는 소식을 들은 근처의 학교 선생님들이 한 일은 무엇일까? (1)번, 학생들에게 한국 사회에서 홈리스가 급증하게 된 배경, 소수자로서의 홈리스의 실태, 홈리스를 돕는 비정부단체들을 설명하고, 조화로운 지역공동체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 토론한다. (2)번, 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전 학년 전 학급의 학생들에게 구청에 제출할 진정서 서명용지를 나누어주고 부모님 두 분에게 서명을 받아오라고 지시한다. 선생님들도 모두 합심해서 진정서에 서명을 한다. 진정서에는 ‘청소년들에게는 좋은 것만을 보고 배울 권리가 있으며 어른들에게는 좋은 교육환경을 제공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 학생들을 상대로 한 성폭력 사건이 발생할 가능성이 0.001%라도 있다면, 통학로에 위치한 노숙인쉼터가 운영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합니다.’라고 쓴다.



 다음 문제. 노유자시설로 용도변경을 허가하고 건물을 사용하라고 승인한 구청장이 쉼터의 사회복지시설설치운영신고서를 받은 후 한 일은 무엇일까? (1)번, 학교 측과 동네 주민들이 홈리스에 대한 편견을 깨뜨릴 수 있도록 쉼터가 하는 사업들을 소개하는 자리를 마련하고 아저씨들이 한 동네 주민으로 화합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한다. (2)번, 학교 선생님․학부모와 주민들 도합 6천명이나 반대 진정서를 내었으니 진정서의 서명이 위조되었는지, 진정서를 모은 경위가 어떠한지는 중요하지 않다. 쉼터 운영을 막아야 하므로 진정서를 접수한 지 3시간 만에 곧바로 신고서를 되돌려주고 신고 수리를 거부한다.



 문제가 너무 쉬운가? 정답은 모두 (2)번이다. 쉼터를 운영하는 재단을 대리하여 구청장의 신고수리 거부처분을 취소하기 위한 소송을 진행하면서, 나는 아저씨들이 우리의 이웃으로 살아가기 위한 길은 멀고도 험난하다는 것을 실감하였다. 구청장이 법원에 제출하는 준비서면에는 홈리스에 대한 편견, 특히 “노숙인이 여자청소년에 대한 잠재적인 성폭력범죄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노숙인쉼터의 설치, 운영을 허용할 수 없다”는 편견이 아무런 객관적 근거 없이 전시되었다. 구청장의 소송수행자인 사회복지 담당 공무원이 법정에서 행한 구술변론에는 그 편견이 날선 언어로 반복되었다. 과연 그런가? 중년 남성 수십 명이 가족과 떨어져 집단거주하고 있으면 그것만으로 청소년에 대한 성폭력 발생 가능성이 높아지는가? 쉼터는 동네 주민과 여학생들에게 그토록 위협적인 시설인가? 그 모든 말들은 단지 근거 없는 공포를 확산하고 사회적 약자에 불과한 아저씨들을 배제하기 위한 허언이 아닌가?



 다행히도, 법원은 구청장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전체 노숙인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등에서 비롯된 막연한 사고의 가능성에 기초하여 야기된 학교 측과 지역주민의 집단민원만으로 이 사건 사회복지시설의 설치․운영신고를 거부할 만한 정당한 이유가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다. 따라서 피고 구청장이 원고(쉼터 운영 법인)의 신고를 반려한 이 사건 처분은 정당한 이유 없이 이루어진 것으로서 위법하다.”고 판결하였다.



 여기까지는 해피엔딩이다. 마지막 문제가 남았다. 법원의 판결문을 받아든 구청장이 한 일은 무엇일까? (1)번, 법원에서 신고거부처분의 위법성을 확인하고 취소하였으니 판결을 받아들이고 쉼터에 신고필증을 교부한다. (2)번, 민원을 낸 학교 선생님, 학부모, 동네 주민들이 재판이 진행된 9개월 동안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신고거부는 적법한 것이니 고등법원에 항소한다.



 지금 나는, 다시 항소심 재판을 준비하고 있다.

글- 차혜령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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