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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0회 인권법캠프 후기]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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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장애인이 차별받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이 질문에 ‘No’를 답하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장애인도 비장애인처럼 버스를 타고 다닐 수 있게 저상버스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 장애인도 비장애인처럼 기업에 취직하여 그들과 같은 경제/사회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에 당신은 (아마도) 동의할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주변에 장애인인 지인, 친구 등이 있을 수도 있으며, '진심으로' 그들의 어려움을 덜어주는 다양한 사회 제도가 마련되면 좋겠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은 특정한 상황을 가정해보자. 당신의 장애인 동료 중 한 명이 당신을 연인으로서 사랑하며, 당신을 좋아한다는 의사를 비쳤다. 하지만 문제는 당신이 그에게 크게 관심이 없다는 사실이다. 이때 당신은 '도덕적 의무'라는 이름으로 장애인을 차별하지 않고 고백을 받아주어야 할까? 굳이 깊이 생각해보지 않아도 이 질문은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낄 것이다.

세상의 질서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의무, 권리, 법으로 불리기도 하는 '규칙'이며 다른 하나는 탁월함, 감성적 쾌감, 아름다움으로 지칭되기도 하는 '재미'이다. 위에서 사례로 들었던 장애인의 이동권, 장애인고용의무제도는 모두 권리, 제도와 같은 ‘규칙’이다. 반면, 우정이나 사랑은 그런 규칙이 작용하는 게임이 아님을 우리는 안다. 개인의 고유한 탁월성, 우월함, 보고 있으면 쾌가 느껴지는 느낌, 아름다움으로부터 ‘재미’가 있어야 관계는 지속할 수 있다. "나는 180cm가 넘고, 목소리는 중저음이고, 몸이 좋으며 지적인 덕이 있는 남자라야만 손을 잡고 싶고, 안고 싶고, 만남이 설렌다."고 말하는 사람의 취향과 욕망을 부정하고, “장애인의 고백을 받아주라”고 종용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런 점에서 만약 가칭 ‘사랑차별금지법’이 "모든 국민이 타인의 사랑과 관심, 환대를 받음에 있어 겪는 차별을 금지하고 차별받는 사람과의 권익을 효과적으로 구제함으로써 모든 국민의 완전한 사회참여 및 평등한 삶의 질을 구현함“을 목적으로 제정된다고 한들, 그래서 학교 차원에서 "모든 고등학교 학생이라면 일정 시간 이상 장애인과 여가를 보내야 한다"고 교육부장관이 그 구체적 내용을 고시로 정한다고 한들, 그러한 조치가 비장애인의 욕망을 통제할 수는 없으며, 설령 그것이 가능하다손 친들, 당사자인 장애인이 그것을 반길 리는 전혀 없다. (오히려 모욕적일 것이다.) 왜냐하면 '사랑차별금지법'은 인간 개체성을 '차별적으로' 보기보다는 인간을 ‘추상화’하여 규정(장애인도 모두 같은 인간이다! 라고 하면서)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라는 고유한 인간이 지닌 개체성과 서사를 무시하고, 그저 "우린 똑같이 존엄을 가진 인간이지? 그러니까 사랑/우정에서도 차별하면 안 돼!"라고 법으로 정해보았자 사적인 영역에서의 인간관계는 상대방으로부터 느끼는 흥미나 재미가 담보되지 않는 상황에서 규칙이나 의무, 법으로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장애인들의 사랑과 우정의 장벽이 조금이나마 낮아질 수 있을까? 바로 'Empowerment' 관점이 필요할 때인 것 같다. 모든 인간이라면 갖고 있을 탁월성(우월성, 매력, 재미)에 주목해야 한다는 점이다. 김원영 변호사에 따르면 굳이 평등주의적 잣대를 들이대지 않더라도, 사람마다 그들이 고유하게 가진 서사가 있다. 그리고 그 탁월성을 펼칠 수 있는 장(field)이 필요한 것이다. 김원영 변호사는 무용 워크숍의 개인적 경험을 말씀해주셨다. 장애인을 대상으로 인권 교육(추상적 규칙, 법적 권리)을 하기 전에, 먼저 함께 출 수 있는 동작과 무용부터 교육한 것이다. 무용 강사는 이용자마다 고유하게 가진 춤 선의 아름다움을 ‘호크 아이’처럼 발견하였다. 개체만이 갖는 고유한 탁월성에 먼저 주목을 한 방법이다.
 
하지만 이런 의문이 들 수 있다. '정말로 눈을 샅샅이 비비며 찾아보았는데도, 그 탁월성을 못 찾으면 어떡하지?' 이는 실제로 김원영 변호사의 저서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을 읽으며 내가 가졌던 의문이기도 하였다. 마치 ‘모든 인간은 존엄하다’는 명제가 당위일 수는 있으나 사실의 차원에서는 거짓일 수도 있는 것처럼... 그런 사람들의 경우 타 국가에서 시행되고 있는 '제도'(예컨대 성매매나 성봉사)를 예외적으로 도입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에 대한 김원영 변호사의 답은 다음과 같았다. "대부분의 사람은 탁월성/우월성을 각자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말로 아무리 샅샅이 봐도 매력이 없는 사람이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여기서 무엇인가를 더 하려는 노력(예컨대 성매매, 성 봉사)은 적어도 우리 논의/맥락 아래에서는 적절한 해결책은 아니다.  없으니까 뭘 하자는 방식이 아니라, 없으면 그냥 없는 것이 나을 수 있다.”  

 
비록 이번 강연에서 다루었던 이슈는 장애인의 이야기이지만, 어쩌면 동시에 사회적으로 비주류에 속한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한 것 같다. 가난한 환경, 아름답지 않은 외모, 낮은 사회성, 학력, 학벌 등등... 사회적 주류와 비주류를 상세한 항목으로 따져보았을 때, 아무런 소수자에게도 속하지 않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상처가 없는 삶이 어디 쉬운가. 모두가 저마다의 역경과 역린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놓고 탁월성을 발견할 수 있는 환경을 우리가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은 충분히 건설적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던 풀꽃과 세상에 대한 나태주 시인의 시각을 적극적으로 수용해볼 필요가 있는 것 아닐까?

글_김동섭(캠프 참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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